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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아파커플 Sep 17. 2023

네 곁에선 장점은 선명해지고 단점은 희미해져

내가 나를 표현한다면, 나는 밝고 쾌활하고, 애교 많고, 웃음도 많고, 진취적이고 도전적이지만, 동시에 예민하고, 까다롭고, 불안하고, 감정기복과 완벽주의가 심한 사람이야.

그런 내가 너를 만나는 시간들 동안 나의 밝고 좋고 긍정적인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 오히려 나의 장점인 성격들은 너를 통해 더 선명해지고 - 나 스스로를 갉아먹던 예민한 성격들이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어.


처음 너와 내가 사귀기로 했다는 소식을 네가 네 주변 친구들에게 전했을 때, 네 주변은 다 놀랐다고 했어. 어떻게 저렇게 안 어울리고, 다른 세상 사람에 사는 듯한 둘이 같이 만났다고. 나는 조금 더 도시적이고 뾰족한 느낌인데, 너는 조금 더 시골(?) 스타일이라고. 이런 말을 들으면 넌 늘 너의 친구들에게 버럭 하며 말했지. “아니, 우리 둘 다 서울 사람이라고 ㅋㅋ!“

그런데 이제는 우리를 보며 네 친구들이 닮았다고 해. 너무 다르던 둘의 그림체가 이제 동글동글 닮아졌다면서. 우리를 처음 보는 이들은 남매냐는 질문도 하곤 하지.


나는 널 만나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내 이미지가 시크하고, 함부로 못 건드리고, 차가운 도시 여자로 비치길 바랐어. 몸집도 작고 나이 어린 여자로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친절과 배려도 많이 받았지만 동시에 무시당하고 손해 본 몇 개의 기억들이 내 맘에 크게 자리한 거지. 그러다 보니 늙는 건 싫지만 그래도 빨리 더 나이 많은 어른이 되어서 사회생활이 쉬워지길 바란 거 같아. 그래서 무시당한다고 느끼면 내 속에서 급발진하고 작은 손해에도 부글부글 끓는 마음. 널 알기 전과 연애 초반에는 그 젊음의 끓는 피가 더 대단했지. 그런 나의 뜨거움이 상대방만 태우는 게 아니라 나 자신까지 태워버리는데도 나는 멈추기가 어려웠어. 정말 영화 ‘엘리멘탈’에서 불을 상징하는 여자 주인공 같았다니까.


그런데 내 곁에서 묵묵히 있어주는 너 덕분에 그 열기가 점점 가라앉더라. 그리고 ‘이게 그렇게 큰 문제였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네 곁에선.


아주 큰 위해를 가하는 손해가 아니면, 그냥 쿨하게 넘겨버리는 너를 보며, ‘아, 저렇게 살아도 살아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나는 올바르고 신뢰 있는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아. 내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되길 원해. 다음 세대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책임감이기도 해. 어린아이들을 가르쳐온 경험과 선생님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 때문이기도 할 거야.

그리고 나만 손해 보고 피해 보는 게 아니라 남들도 그럴 가능성이 있으면 이걸 최대한 막고자 해. 남들은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느냐 물을 수 있지만, 그게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학교에서, 집에서, 교회에서 배운 거니까 오히려 그렇게 살지 않는 게 난 더 어려운 사람이야.

근데 그 정도가 어떨 때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커질 때가 있어.

그때, 네가 내 중심을 잡아줘. 널 보며 나는 아주 크게, 또는 중대한 위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면 넘길 수 있는 여유를 배워. 손해 보는 듯해 보이는 게 바보 같은 행동이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내가 어떤 부분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도 더 객관적으로 보게 돼. 네가 알려주니까.

결국 나도 내 기준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에만 화르륵 화가 올라오는 걸 알게 되지. 그리고 그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거 - 순전히 내가 생각했을 때 옳고 그름이 기준인 거잖아?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내가 기준이 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요즘따라 성경 인물, 이삭이 대단하다고 느껴. 자기가 열심히 판 우물을 계속해서 뺏으려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냥 넘겨줘버려. 그리고 새로 우물을 파지. 더 이상 그들이 빼앗지 않고 그들이 지쳐 평화 조약을 맺을 때까지. 그가 우물을 여러 번 새로 팔 때마다 물이 터지는 걸 보고 적들이 두려움을 느꼈지. (고대 사회에서 우물을 파내는 건 굉장히 어렵고 행운이 필요한 일로 알고 있어.)

이삭에겐 그가 믿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있었어. 그리고 그의 맘 속에 있는 여유. 이 작은 걸 손해 보더라도 하나님이 또 다른 좋은 것을 채워주시리라는 믿음. 그리고 정말 믿음대로 되었지.


나의 장점은 더 선명하게, 단점은 점점 희미해지게 만들어주는 네 곁에서 나는 이제 이삭처럼 좀 더 여유 있고,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어. 상대가 공격하려고 달려오더라도 부드러움으로 그를 무장해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내면에는 장미의 가시 같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실크 같은 부드러움을 가진 사람. 외유내강. 심지가 굳은 사람. 마음이 단단한 사람.

그냥 멋지고 성숙한 사람을 표현하는 온갖 단어가 떠오르지? 그거 맞아. 네 맘 속에 떠오르는 그 단어들 맞아.


고마워. 나로 하여금 네 곁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픈 꿈을 꾸게 해 줘서. 그리고 도와줘서 고마워.

서로 돕는 우리를 하나님도 예뻐해 주시리라 믿어.

앞으로도 우리 예쁘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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