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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Sep 04. 2020

피할 수 없으니 즐기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살림 일기



결혼 전 밥솥도 못 돌리던 나는 이제 겨우 햇병아리 주부 신세는 간신히 탈출했지만,  

결혼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살림은 여전히 어렵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재미를 못 느끼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의미가 없지는 않다.

하기 싫은 마음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같은 크기로 공존해서 나를 자꾸만 힘들게 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으면서 괜한 자괴감만 느꼈다.

나의 기준은 친정엄마였다.

완벽주의자인 그녀가 나의 기준이었으니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겁먹어 손 털고 회피하기 바빴던 살림.

나의 이상이 높은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언제나 잘 해내지 못하는 현실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한꺼번에 잘하기보다 하나씩 살림에 재미부터 붙여 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챙기고 싶은 건 건강한 식사를 하면서도 식비로 나가는 지출을 조절하기. 계획을 잘 세우고 외식을 줄이면 될 것 같기도 했다.


늘 먹는 것을 먹고 식비 외에는 다른 지출이 없는 데에도 매달 나오는 신용카드값은 우리 부부를 억울하게 했다.

카드내역을 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일단 줄어들지 않는 지출의 주범은 찾을 필요도 없었다.

먹는 것 외에는 잘 쓰지도 않으니까.

식비를 줄여야 한다는 건 이미 몇 년 전부터 깨달았기에 그동안 가계부도 쓰며  한 달간 허리띠를 조여 보기도 했지만,

언제나 한 달이 지나면 실패했다. 늘 퐁당퐁당의 연속.

성공, 요요, 성공, 요요,,.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식비 40만 원 안으로 쓰고자 재테크 전에 짠 테크부터 해야겠다고 외치며 시작한 지 한 달만에 또다시 짠 테크 요요현상...

여러 번 반복하면서 깨달은 건 한 달 지출을  정해두는 건 부작용이 더 컸다. 지출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으면서 심리적인 압박은 커져갔다.

그래서 매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미 절약을 통해 모으고 불려 나가고 있는 주부 9단들의 생활을 보니 하루 단위, 주 단위, 월 단위로 정해진 금액 안에서 생활하며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사실 알면서도 나는 실천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 겁먹고 미루던 생활을 일단 해보기로 했다.


마침 책장 한구석에 식비 달력이 접혀있었다,

두 달 전 엄마의 방구석 돈 공부 책을 사고받은 사은품이었다,

엄마의 방구석 돈 공부의 저자이자 주부 유튜버인 안선우 작가 역시 식비 달력 사용하며 식비를 줄이고 6개월에 천만 원 모으기를 실천하고 그 과정을 유튜브로 남기는 것을 보았기에 나도 한번 해보리라.

작심삼일이면 3일마다 다시 마음먹는 걸로!


그렇게 8월 10일부터 시작한 식비 달력.

사용한 지 21일이 지났다.


성공했을까?


미리 말하자면, 하루 만원은 내게 무리였다.

아이들과 집에서만 지내는 요즘,

평일에는 5만 원으로도 충분했지만, 주말에는 가족 간의 모임이나 약속들 앞에서 식비 달력은 무색해졌다.

그래도 나에게 식비 달력은 큰 의미를 주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현금을 쓰니 돈의 단위가 피부로 느껴졌다. 왜 부자들이 다들 현금을 쓰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부끄럽지만, 그동안 동네 마트에 가면 기본으로 4만 원, 대형마트에 가면 기본 10만 원씩 써도 뒤돌아서면 먹을 것이 없었는데 동네 마트에서 이틀에 한 번씩 2만 원으로 장을 봐서 반찬을 만드면 훨씬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야채, 생선, 고기, 과일 골고루 먹으면서도 돈은 적게 쓰고 무엇보다 과자 소비가 많이 줄었다.

과자값이 크게 느껴졌다. 생각 없이 장바구니에 담던 것을 절제하게 되었다.(그렇다고 안 산다는 것은 아니다.)

지갑에서 돌아다니던 10원짜리 한 장도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던지... 10원 단위로 모자라서 지폐를 깰 때 기분은 지갑이 깨지는 기분이 들었다.

축산물 집에서는 삼천 원이 모자라서 고기를 뺄까 체크카드를 쓸까 고민하는 나를 보시고는 계산하시는 분이 먼저 '포인트가 3천 원이나 있네'라고 하셨을 때 얼마나 행복하던지... 넙죽 손을 부여잡을 뻔했다.

내가 이런 기분이 들게 될 줄이야!

돈의 단위가 피부로 느껴지니 식비 외로 나가던 지출들도 신중해지게 되었다.

10원 한 장 허투루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점.

그것이 나에게 가장 큰 소득이다.

부작용이 있다면, 다소 쪼잔해진다는 점.

소비가 갇혀있으니 마음의 여유도 줄어드는 것 같아서

융통성을 발휘하면서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소비 습관을 만들어가야는 생각이 든다.


소비패턴이 잡히면 절약과 지출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아야겠다.

무엇보다 불필요한 지출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작은 돈부터 소중히 여기면 큰돈들까지 나를 찾아 저절로 들어온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요즘.

그 과정들을 하나씩 기록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돈의 속성의 저자 김승호 님이

'작은 돈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라고 했나 보다.


성취욕이 높은 나에게 식비 달력은 살림에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지금 쓰는 이글이 거짓되지 않게 꾸준히 해보아야겠다.



습관 완성은 21일이라는데...

100일, 6개월, 1년 꾸준히 할 수 있기를.

제~~~ 발.

내가 나에게 간절하게 빌어본다.



돈의속성(김승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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