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산미'라는 작은 사탕을 머금은 것처럼 삐죽삐죽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한다.
훌륭한 밸런스라고 소개해주신 원두는 '리브레 노서프라이즈'.
리브레, 자유
노서프라이즈, 놀랍지 않은
어딘가 이름에 부러운 구석이 있다.
간이 콩알만 한 사람은 이 커피만 못한가
심술을 부리고 싶어지는 이름이다.
무겁고 반질거리는 도자기 잔에 나온 커피가 영롱하다.
커피 색도 당연히 그 평범한 갈색인데 왠지 반짝이는 것 같다.
따뜻한 커피가 좋다.
(얼어) 죽더라도 차가운 걸 속에 부어야겠다는 나라에서
이 또한 일종의 심술이랄까.
몇십 년을 산 이 나라에 아직도 적응을 못해서 그럴 수도
그래도 잔 언저리에 피어나는 하얀 김을 보고 있노라면
그 누군가도 홀려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킬 수도
사진을 찍는다.
내 일상에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순간.
귀하게 대접받은 듯한 잔과 커피를 최대한 공들여 찍어본다.
나중에 이 향이 생각날 만큼 예쁘게, 사실은 누군가 부러워했으면 하고 더 예쁘게
한 모금 마신다.
따뜻한 커피의 첫 모금을 사랑한다. 미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마시는 것 같다.
따끈함에 중독된 듯 내리 몇 모금 마신다.
'초콜릿맛', '과일맛' 어렵게만 느껴졌던 핸드드립의 맛 표현들이 다행히 떠올라 준다.
한 모금을 머금고 어디서 들은 대로 천천히 입안에서 굴려보면
마치 '산미'라는 작은 사탕을 머금은 것처럼 삐죽삐죽 불쑥불쑥 입안이 소란하다.
이 카페는 보물같다.
카페가 쏟아지는 시대에 그래도 가끔 '보물같다'고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 카페를 만난다.
보통 그런 카페는 규모가 작은 편인데
그 작은 카페에 사장님의 철학이 흘러넘칠 때 처음 본 사장님을 존경하게 된다.
아까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사장님은 많은 말을 건네셨다.
한마디 한마디 이 공간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고 손님에게 최선의 것을 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지다.
무언가에 몰두했고 그 결과로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다면 인생 성공한 것 아닐까
사실 난 달콤한 아인슈페너를 생각하고 들어왔지만
내일이면 원두가 바뀐다는 사장님의 말을 듣고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가 식었다.
따끈한 커피의 좋은 점을 열개고 백개고 말할 수 있다 해도
식어버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사람을 괜히 속상하게 한다.
식어버린다. 글자도 미운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게 변하지 않는 온도를 갖는다면
내 마음은 조금 더 평안할까. 그런 세상은 아름답지 않을까.
커피 하나로 세상을 논하다니
4500원의 마법 같다.
다음에 왔을 때는 오늘처럼 진지하지 않기로 한다.
ISTJ 사람처럼 단순하게 한 모금 마시고 맛있다.
한 모금 마시고 따뜻하다. 하고 말기로 한다.
마지막 모금까지 산뜻한 '리브레 노서프라이즈' 커피를 마시며
생각을 멈추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