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랜선 상상 걷기 여행하기
런던은 쉴 새 없이 나를 매혹하고 자극하고 내게 극을 보여주고 이야기와 시를 들려준다. 두 다리로 부지런히 거리를 누비는 수고만 감내하면 아무것도 걸리적거릴 것 없다. 혼자 런던을 걷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큰 휴식이다.
-1928.5.31.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중에서
한 해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신음하는 전 세계, 이제는 미국이나 유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상황까지도 아주 심각하다. 프랑스는 지난 11월 하루 확진자 최고치가 5만 명에 육박하자 가장 먼저 한 달 간의 2차 전국 봉쇄령을 내렸고, 이어 영국도 11월 5일부터 한 달간 전국 락다운을 시행한 이후 변종 바이러스 출현으로 내부 락다운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고립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2월 초부터 하루 확진자 역대 최대치인 1000명을 돌파하자 지금까지 2.5단계냐, 3단계냐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다. 위기를 앞둔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위기 대응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락다운 직전까지 못 만날 친구들 잔뜩 만나고, 외국인들은 발 빠르게 국경을 빠져나가고, 평화로운 시골마을에 별장 두어 채쯤 가지고 있는 부자들은 서둘러 자리를 옮겨 조금 더 나은 질의 락다운을 준비하는 것처럼 말이다. 별장 같은 거 없는 소시민들은 늦기 전에 중고거래를 미친 듯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여기 한국에서 언제쯤 다시 런던에 갈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며 코로나 이전의 혹은 이후의 런던을 기억하고 상상해보며 이 위기를 극복해보고자 한다. 약 백 년 전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을 걷는 걸 좋아하여 그 내용을 일기에 적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 역시 런던을 걷는 걸 좋아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눈 뜨고 코베이는 처지가 될 수도 있는 도시지만,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매혹과 자극, 이야기와 시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내뱉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런던 토박이를 한 사람도 모르면 런던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상점과 극장을 벗어나 골목으로 접어들어 개인 주택이 늘어선 거리의 어느 집 문을 두드리지 못하면 런던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p.88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면 나는 곧장 피카딜리 라인 튜브를 타고 핀즈버리 파크역까지 내달린다. 커다란 짐가방을 손에 쥐가 나도록 꽉 붙잡지 않으면 가방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튜브를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굉장한 소음과 흔들림을 버텨내고 나면 1시간 반 정도 후 핀즈버리 파크 역에 도착한다. 하필이면 에스컬레이터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역.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려고 낑낑대고 있으면 높은 확률로 기꺼이 짐을 계단 위까지 함께 옮겨주는 친절한 런더너를 만날 수 있다. 역 밖으로 나오면 축구클럽 아스날의 커다란 리테일숍과 번쩍거리는 조명의 볼링장이 보인다. 핀즈버리 파크 역은 언더그라운드 라인 두 개가 지나가고, 시외로 나가는 내셔널 레일웨이 기차도 지나가는 요충지 같은 역이라서 언제나 바쁘다. 중심가인 1 존을 제외하고 런던에서 세 번째로 바쁜 역이라고 하니 그 정도가 짐작이 간다. 뺨에 닿는 찬 공기에 섞인 희미한 담배냄새가 이 곳이 런던임을 실감케 한다. 다시 짐가방을 꼭 쥐고 야무지게 걷기 시작한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그렇게 3분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굴다리를 지나야 하는데 런던에서 굴다리란 곧 노숙자들의 거취 장소이기도 하다. 점점 더 어둡고 추워지는 계절을 버티어야 할 그들을 위해 이불을 가져다주고 먹을 것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버스 정류장에는 이미 줄이 길다. 모두들 퇴근 후 집에 돌아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다. 그렇다. 이 곳은 런더너들의 주거지역이다. 이민자, 유학생, 함께 런던에 자리 잡은 젊은 커플, 가족, 싱글남녀들이 이미 어두워진 시간, 비니 모자를 푹 눌러쓰고 팔짱을 낀 채 집에 돌아가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있다.
나는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W7버스에 오른다. 오이스터 카드에서 1.5파운드가 빠져나간다. 짐가방이 무거우니까 버스의 2층으로 올라가지는 못하고 유모차나 휠체어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1층의 중간 좌석으로 향한다. 버스의 종점이자 기점인 핀즈버리 파크 역에서 이미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이 버스는 사람들을 밖으로 실어 나르는 버스가 아니라 집으로 데려다주는 버스이다. 구불거리는 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거대한 2층 버스 안에서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있었던 것 같은데, 비행기를 잠시 타고 내렸더니 순식간에 전혀 다른 세상에 와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여길 단 한 번도 떠난 적 없었던 것 같은 익숙함과 기시감을 동시에 느낀다. 문득 내가 없던 때에도 이 버스는 매일 같은 길을 지나다녔을 거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목적지인 크라우치 엔드 브로드웨이 정류장에 도착하여 나는 짐을 가지고 내린다. 이 곳에 살던 시절 매일 같이 장을 보던 슈퍼마켓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계탑도 그대로다. 역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더 깊은 주거지역으로 들어왔음이 느껴진다. 훨씬 차분한 분위기의 이 동네에서 슈퍼마켓은 교통카드 충전이나 담배, 스낵 거리를 사러 잽싸게 들리는 곳이 아닌 집에서 만들어 먹을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시간을 들여 쇼핑을 하는 곳이다.
크라우치 엔드 시계탑을 등에 지고 정면으로 보이는 미들 레인을 따라 걸으면 내가 런던에 있는 동안 머물 집이 나온다. 적당히 짐을 풀고 너무 배가 고파 저녁을 먹으러 나온다. 물론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나의 소울푸드 런던 맛집 배너스(Banners)이다. 영국 곳곳을 돌아다녀보면 미국이라는 국가가 세워지기도 전부터 있던 펍이 아직까지 영업을 하고 있기도 하고, 큰 전쟁을 두 번이나 치르고 나서도 100년 200년은 우습다는 역사를 가진 펍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 영국 사람들 워낙 아카이빙 하기 좋아해서 오래된 펍에 가면 그 역사를 그대로 나타내는 사진이나 그림 같은 게 벽에 잔뜩 붙어있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도 런던은 워낙 트렌드에 민감한 대도시라서 그런 걸까? 작은 동네에서도 레스토랑이나 카페는 턴오버가 꽤 잦다. 그런데 배너스는 같은 자리에서 20년 동안 동네장사를 하고 있고 그 20년의 세월 중 15년 이 넘도록 같은 스태프가 꾸준히 서빙을 하고 있다. 내가 이 곳을 좋아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나중에 몇 년이 지나서 이 동네에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이 곳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내가 그 긴 역사 어느 한 부분을 지나고 있다는 기분에 썩 우쭐해지기도 한다. 언제나처럼 격식 차릴 것 없이 캐주얼하게 코트에 청바지, 운동화 신고 목도리 칭칭 감은 옷차림으로 배너스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멀리서부터 반짝반짝 따뜻한 불빛이 눈에 띄어 나는 들뜨기 시작한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어깨로 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가자 복작복작 바쁜 와중에도 스태프 한 명은 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오랜만에 왔네!’ 하며 반겨준다.
긴 비행과 시차 적응으로 피곤했는지 저녁을 먹고 들어와서는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해가 떠있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며칠이나 해를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해가 뜬 날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이런 날엔 산책을 해야지. 대충 씻고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가장 편한 바지를 골라 입는다. 반팔을 입고 그 위에 도톰한 니트를 더한 뒤 간편한 외투와 목도리, 장갑으로 단단히 레이어링 한다. 어젯밤에 비가 내렸으니 공원에는 진흙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더러워져도 괜찮은 편한 운동화를 신는다. 지금 내가 런던에서 지내고 있는 곳에서는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인 햄스테드 히스까지 걸어서 40분 정도가 걸린다. 가는 길에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도 들리면서 천천히 걸어가 보기로 한다. 집 밖으로 나오니 코끝이 시린 겨울 날씨임에도 햇살만은 따스하여 서둘러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미들 레인을 따라 시계탑을 향해 직선으로 걸으면 어제 버스에서 내린 정류장이 나온다. 이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시계탑. 이 시계탑을 보지 않고서는 이 마을에 들어왔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시계탑과 버스 정류장을 지나 걸으면 어느새 내가 걷고 있는 길의 이름이 미들 레인에서 혼지 레인으로 바뀌어있다. 혼지 레인 위에는 학교도 있고 아주 오래된 교회도 있고 붉은색 벽돌로 만든 아파트도 있다. 복도식 공용주택의 테라스에는 평소보다 많은 빨래들이 너풀너풀 널려있다. 해가 뜬 탓이다. 그리고 이 혼지 레인에는 다리도 있다. 혼지 레인에서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다리를 건너야만 하는데 이 다리 이름이 혼지 레인 브리지이다. 다리 아래에는 아치웨이 로드라는 큰 도로가 있고 다리 위가 혼지 레인의 연장선이 되는 길이다. 이 다리는 걷다가 잠시 멈춰 한 숨 돌리면서 멋진 스카이라인을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북런던에는 이런 특별함이 있다. 대도시의 웅장함과 그 사이사이 잊지 않고 심어진 초록 나무들과 예쁜 모양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림 같은 집들이 한 장면에 담기는 광경을 보여주는 특별함 말이다.
그런데 사실 혼지 레인 브릿지는 자살 다리라는 슬픈 별칭을 가지고 있다. 다리 아래에 차들이 쉴 새 없이 내달리는 도로가 있다 보니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너무 자주 발생하여 붙은 별칭이다. 나는 다시금 런던이라는 도시가 가진 소름 끼치도록 양면적인 모습에 조금 서글퍼진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를 향해 가는 길에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본 멋진 광경, 바로 그 광경이 누군가에게는 생의 마지막 광경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이 마치 운명처럼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혼지 레인 브릿지는 그 짧은 길 위에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금방 워터로우 공원과 하이게이트 공동묘지가 나오고, 그러면 이제 햄스테드 히스에 거의 다 온 것이다. 걸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들려온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온통 런던이다.
체인로가 항상 2월이듯 햄스테드는 항상 봄철이다. 게다가 어떤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서인지 햄스테드는 언제나 현대 세계에 포위된 고대 유적이나 변두리가 아니라 고유한 개성을 지닌 장소로 남아 있다. 돈을 버는 곳도 아니고 돈을 쓰러 가는 곳도 아니다. 햄스테드에는 신중한 은퇴를 가리키는 표식이 새겨져 있다. 이곳의 집들은 반듯반듯한 상자 모양이다. 내민 창, 발코니, 베란다에 야외용 접이 의자를 갖춘 브라이튼 해변의 바다 전망 집들처럼 말이다... 집의 내민 창으로 여전히 골짜기와 나무와 연못과 짖는 개와 나란히 팔짱을 끼고 산책하는 커플들이 내다보인다. 산책하는 커플은 팔러먼트 언덕 꼭대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저 멀리 런던의 돔 지붕과 첨탑들을 바라본다. -p.49-50
햄스테드 히스는 워낙 광활한 공원이다 보니 공원 전체를 다 둘러볼 수는 없고 그 안에서도 가고 싶은 목적지는 따로 있다. 팔러먼트 언덕이다. 벌써부터 해가 낮아지자 마음이 급해진다. 그림자가 늘어트린 듯 길어지는 그 순간에는 꼭 팔러먼트 언덕 위에 있고 싶어서이다. 그럼에도 앞서 걷는 어르신을 앞지르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결국 나도 그 발걸음 속도에 맞추어 걷고 만다. 숲의 겨울 공기는 유난히 더 차갑다. 차가운 만큼 더 신선하고 생기롭다. 점점 가빠지는 숨 때문에 크게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 안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 싱싱한 겨울 초록의 내음. 모자는 깊숙이 눌러쓰지만 손은 더 이상 주머니 안에 있지 않다. 크게 크게 팔을 휘젓고 따갑게 언 볼을 만져 녹이며 더 더 깊은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언덕을 오른다.
팔러먼트 언덕에 서면 저 너머의 전원 또한 시야에 잡힌다. 더 멀리 건너편에는 숲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담비나 토끼가 앞발을 들고 멈춰 서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나뭇잎 바스락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언덕들이 있다. 셰익스피어도 이 자리에서 런던을 조망하려고 걸음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곳 벤치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젊은 남녀가 서로를 끌어안고 앉아 있다. -p.54-55
백 년 전 버지니아 울프가 바라보았던 팔러먼트 언덕의 풍경과 지금의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에 떨게 한다. 타임워프로 지금 여기 팔러먼트 언덕 위에 서있는 나의 모습과 백 년 전 그녀의 모습을 겹쳐보고 싶어 지게 한다. 물론 지금은 높고 못생긴 현대식 건물들이 많아졌지만 오래된 주택들과 첨탑만은 그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그대로이다. 그리고 벤치에서 서로의 어깨에 기댄 젊은 연인들도 100년 전의 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함께 그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어디에 자리를 잡고 앉아볼까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은 연인들과 친구들이 모여들고 가족들이 소풍을 나오는 곳이다. 햄스테드 히스 주변은 알고 보면 굉장한 부촌이라서 그 비싸다는 런던 집값 중에서도 최상위급 집들이 몰려있고 당연하게도 근처 학교들은 높은 학비를 내야만 하는 아주 포쉬한 사립학교들이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는 이 지역을 가리켜 '이 곳의 집들은 반듯반듯한 상자 모양이다.'라고 말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녀가 이 곳을 보고 브라이튼 해변가를 떠올린 것도 같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이 곳은 부자들이 자기들 만의 취향으로 꾸며낸 지역이자 만든 듯이 완벽한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곳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러먼트 언덕의 풍경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연인들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혼자인 사람도, 영국인도, 외국인도 여행객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이 풍경을 만끽하기 위해선 기어코 두 발로 언덕을 오르는 수고를 거쳐야만 그 대가로 펼쳐지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어쩐지 자연 속에서 만큼은 스스로의 이질적임을 쉬이 잊고 마는 것 같다. 깊은 숲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똑같은 해와 바람을 맞고 똑같이 춥고 똑같이 생생하고. 그래서 자연 속에서 우리는 더 겸손해지면서도 더 스스로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본능적으로 바다와 산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팔러먼트 언덕 위 풀밭에 앉아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옥스퍼드 거리는 흥정과 할인이 난무해서 불과 한 주 전까지 가격이 2파운드 6실링이던 물건이 1파운드 11실링 3 페니까지 내려가는 일이 허다하다. 사고파는 행위도 소란하고 노골적이다. 그러나 해 질 무렵, 인공조명과 실크 더미와 버스 불빛 탓에 마치 지지 않는 저녁노을이 마블 아치를 품은 듯 보이는 시각에 느긋한 걸음으로 걷노라면 거대한 리본 다발처럼 펼쳐지는 옥스퍼드 거리의 현란한 번쩍임이 나름대로 매력적이다.
-p.30
전원적인 모습의 북런던을 걸었던 어제를 뒤로하고 오늘은 시내에 나가보려 한다. 나에게 있어 런던 시내라는 건 옥스퍼드 거리와 같은 말이다. 런던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이자 양 옆에 쇼핑백을 잔뜩 든 전 세계 관광객들이 쉴 틈 없이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이 거리를 두고 누군가는 천박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 있어 마음속 깊은 고요함과 외로움은 늘 가장 번잡한 이 곳에서 몰려들곤 했기 때문에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는 곳이다. 집에서 옥스퍼드 거리를 가기 위해선 우선 버스를 타고 핀즈버리 파크 역으로 나가야만 한다. 핀즈버리 파크 역에서 하늘색 빅토리아 라인 열차를 타고 다섯 정거장만 가면 옥스퍼드 서커스 역이다(서커스는 교차로를 의미한다. 옥스퍼드 서커스는 옥스퍼드 거리와 리전트 거리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영원히 적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런던 지하철의 매캐한 공기와 귀를 찢는 소음. 연말이면 옥스퍼드 서커스 역은 더욱 붐빈다. 옥스퍼드 서커스 역을 나오자마자 펼쳐지는 옥스퍼드 거리의 화려한 조명과 불빛들을 구경하기 위함이다. 어두운 밤일 수록 아름답게 빛나는 장식들을 보고 있자니 영원히 런던 지하철의 소음에 적응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생 이 광경이 질려버릴 일은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반짝거리는 설치물들을 향해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나도 고개를 치켜들고 사진을 찍는다. 어제 팔러먼트 언덕에서 내려다보았던 풍경과는 또 다른 오늘의 풍경. 런던은 정말이지 다채로운 도시야. 나는 다시 한번 감탄하고 만다. 이 복잡하고 바쁜 거리에서 한 블록만 들어가면 소호이다. 그리고 소호에서는 갖가지 신비로운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런던 소호는 유럽에서 가장 큰 LGBT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 블록을 사이에 두고 가장 화려한 모습과 가장 비밀스러운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셈이다. 옥스퍼드 거리에서의 걸음은 더 빨라지기 마련이다. 우선 바쁜 옥스퍼드 거리에서 방향을 틀어 리전트 거리로 들어선다. 이 또 다른 소란스러운 길을 지나면 피카딜리 서커스에 이르게 된다. 거대한 전광판과 섀프츠버리 기념 분수 조각상을 중심으로 다섯 갈래로 나뉜 오거리를 빨간 이층 버스가 빙글빙글 도는 로터리가 런던 시내의 전형을 보여준다. 상기된 얼굴의 사람들과 거리 음악가들이 내뿜는 에너지가 공기를 가득 채우는 이 곳에선 잠시 넋을 잃어도 좋다.
옥스퍼드 거리와 소호가 블록 하나를 두고 전혀 다른 두 세계를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피카딜리 서커스에서도 여러 갈래로 갈라진 거리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진짜 런던의 모습이 펼쳐진다고 봐도 좋다. 우선 피카딜리 서커스의 거대한 전광판을 등에 지고 다섯 갈래의 길 중 두시 방향으로 나아가면 새로운 피카딜리 거리가 시작된다. 웅장한 하얀 건물들에 정교하게 잰 듯 똑같은 간격으로 내걸린 유니언 잭 사이를 걷노라면 그 강렬함과 웅장함에 사로잡혀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어버린다. 이 거리를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만 더 꼽자면 이 거리 위에 워터스톤즈(Waterstones) 서점이 있기 때문이다. 피카딜리에 있는 워터스톤즈는 유럽에서 가장 장 큰 규모의 서점이다. 지하까지 총 7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가장 꼭대기 층에는 런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카페 겸 레스토랑이 있는데, 이 곳이야말로 런던에 왔다면 꼭 들러봐야 할 보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디서든 풀썩 앉아서 책을 읽고 일기를 쓸 수 있는 이 곳에선 시간의 흐름을 쉽사리 잊게 된다. 시내 한복판에서 사람 사이를 헤치고 다니느라 지쳐버린 발을 쉬게 하고 꽁꽁 얼어 빨개진 볼을 녹일 수 있는 이 곳에서 잠시 스케줄러를 꺼내 일정을 정리하고 작은 메모들을 남긴다. 서점에서 나온 뒤에는 그저 발걸음이 닿는 대로 무작정 색빌 거리라던가 새빌 로우와도 같은 조용한 뒷골목을 걷고만 싶어 지고 그러다가 길을 잃어버린 대도 상관이 없을 것만 같다.
마음속 목소리에 이끌려 뒷골목으로 빠지지 말고 다시 큰 대로를 따라 걸으면 점점 더 런던이라는 도시에 한층 더 깊숙이 들어온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헤이 마켓 거리 위에는 여왕 폐하 극장부터 시작해 온갖 극장들이 줄지어 서있다. 여왕 폐하 극장은 그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이 초연을 열었던 역사 깊은 극장이다. 더 걸음을 나아가면 각종 국가들의 대사관이 나온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런던의 문화와 경제, 정치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도시에는 과연 출구가 없다. 어쩐지 유독 블랙캡이 많이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즈음, 눈 앞에는 내셔널 갤러리와 트라팔가 스퀘어가 펼쳐진다. 어느새 이 곳까지 걸어 내려온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템즈 강변에 거의 다 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트라팔가 스퀘어 앞도 로터리 형태이다. 런던이라는 도시의 길이라는 것은 사실상 로터리로 절반 이상 설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여기 트라팔가 스퀘어에서는 아주 의미 깊은 거리 하나가 시작되는데, 바로 스트랜드 거리이다. 이 거리는 템즈 강변을 건너기 직전 위치한 마지막 번화 거리로, 서머셋 하우스가 있고 버지니아 울프가 수학했던 킹스칼리지 대학의 본관도 있다. 런던 패션위크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며(서머셋 하우스 안에 런던패션위크를 주관하는 영국패션협회(BFC) 사무실이 있다), 코벤트 가든으로 들어가는 초입이기도 하다. 이렇게나 대단한 스트랜드 거리의 1번 건물에는 무려 한국문화원이 위치하고 있어 자랑스럽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볼 수도 있다. 트라팔가 스퀘어서 시작해 한국문화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그 유명한 셜록홈스 펍도 보인다. 그리곤 곧장 템즈 강변에 다다르게 된다. 트라팔가 스퀘어에서 템즈 강을 걸어서 건너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골든 쥬빌리 브리지를 건너는 것이다. 템즈 강에 있는 다리 중 런던 아이가 가장 잘 보이는 다리로도 유명한 곳이다. 트라팔가 스퀘어에서 시작해 골든 쥬빌리 브리지를 건너면 오른편으로는 런던아이와 웨스트민스터가, 왼편으로는 세인트폴 대성당이 보인다. 어두운 밤, 달빛 아래 이 다리를 건너는 황홀함을 글로써 묘사하는 건 여전히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세인트폴 대성당이 런던을 호령한다. 진부하지만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는 문장이다. -p.56
웨스트민스터는 드넓은 평온함과 거리가 멀다. 좁고 뾰족하고 낡았으며 쉼 없이 활기차게 들썩거린다.
-p.63
골든 쥬빌리 브리지의 끝은 사우스뱅크센터의 시작과 연결된다. 로열 페스티벌 홀과 퀸 엘리자베스 홀에서부터 해이워드 갤러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축제와 오페라, 오케스트라 공연 및 전시까지 크고 작은 이벤트가 매일매일 벌어지는 사우스뱅크센터 옆에는 영국 영화 협회(BFI)가 있고 또 그 옆으로는 국립 극장(National Theatre)이 자리하고 있다. 이토록 예술과 문화가 꺼질 줄을 모르고 살아 숨 쉬는 이 거대한 공간은 백 년 전 버지니아 울프가 묘사했던 런던의 모습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런던은 쉴 새 없이 나를 매혹하고 자극하고 내게 극을 보여주고 이야기와 시를 들려준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바로 국립극장이었다. 국립 극장에 공연을 보러 온 것은 아니고, 국립 극장 1층에 자리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에 가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먼 길을 걸어서까지 찾아올만한 바라고 하니, 무언가 특별한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저 공연 시작하기 전 시간을 때우기 위해 존재하는 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이다. 심지어 맥주 라인업도 특색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함 그 자체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 바를 그렇게나 좋아하는 걸까? 그건 바로 이 바의 이름 때문이다. 이 바의 이름은 The Understudy이다. 영어로 Understudy는 연극에서 주인공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무대에 오르지 못할 때 대신 무대에 오르는 '대타' 배우를 의미한다. 생각해보면 영국의 국립극장은 영국의 배우들의 꿈의 무대이고, 이 곳에서 언더스터디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배우로서 가질 수 있는 흔치 않은 발판의 기회를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Understudy라는 단어가 주는 어떤 뉘앙스 때문에 조금 울적해지곤 한다. 언더스터디는 주인공을 대신해서 당장이라도 무대 위에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작스레 주어질지도 모르는 순간을 위해 10분 대기조의 자세로 말이다. 그런데 이 노력은 어쩌면 가장 꺼지기 쉬운 거품이기도 하다. 아무 이슈 없이 무사히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려올 때, 피나는 연습이 무용지물로 돌아가버린 언더스터디는 쓸쓸하게 무대 뒤편에서 박수를 친 뒤 퇴장할 것이고 나는 그 모습을 상상하면 퍽 서글퍼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바의 이름이 좋다. 어쩌면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던 언더스터디를 다시금 조명해주는 것 같아서. 잊지 말아야 할 어떤 이름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아서. 국립 극장이라는 멋지고 화려한 곳의 바 이름이 언더스터디라는 건 그런 울림을 준다. 게다가 극장의 막이 모두 내려오고 모든 불이 꺼졌을 때 유일하게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곳이 바로 이 언더스터디 바이다. 마치 모든 사람이 집에 돌아갔을 때에도 멈추지 않고 가장 늦게까지 연습을 하는 언더스터디처럼.
시내 한복판 옥스퍼드 거리에서 시작해 피카딜리 서커스를 지나 트라팔가 스퀘어와 골든 쥬빌리 브리지를 건너 사우스뱅크센터와 국립 극장까지 쭈욱 내달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스스로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언더스터디 바에서 가장 달콤한 술을 시켜 한 입을 쭉 들이킨다. 어쩌면 걷는다는 것의 가치는 이런 걸 지도 모르겠다.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보상의 달콤함, 육체적 움직임 뒤에 밀려오는 순수한 피로감과 성취감 같은 것. 걷는 동안 지나쳐온 수많은 풍경과 생각을 달콤한 술 한잔과 함께 삼켜버리는 순간이 주는 짜릿함을 온 몸으로 느껴본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던 것처럼 런던을 걸을 생각만으로도 쉽게 흥분하고 마음이 들떠버리는 나는 런던이라는 도시의 포효와 반향을 다시 마주할 날만을 여전히 꿈처럼 바라본다.
홀가분하고 상쾌한 일이 뭐가 있을까? 강이 있지. 이를테면 런던 브리지의 템스 강변. 그리고 공책을 한 권 사고 스트랜드 거리를 걸으며 얼굴 하나 상점 하나마다 내게 던지는 충격을 마주해야지, 펭귄 책도 한 권 사볼까. 월요일에는 런던에 있을 테니.
-1940.3.29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