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이 다 맞았어.
주변에 소위 말하는 '기 센 사람들'이 몇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려 마음먹기 전까지는 그들의 기가 세건, 그렇지 않건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분명 그런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이불킥 하는 것도 모자라 남몰래 손절각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 언제부터 강해진 걸까? 상대방의 무례한 말을 들으며 멋쩍게 웃었던 지난날의 나는 어디 간 건지, 여유 있게 웃으며 그의 숨은 의도를 '그냥 인정'해 버리는 게 이제는 된다.
'아, 너는 우리 딸을 까내리는 게 아니라 네 아들을 자랑하고 싶은 거구나.'
'너 지금 주목받고 싶은가 보네.'
그래라, 너는.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20대 때 엄마에게 '엄마는 어쩜 그렇게 쿨해?'라고 물은 적이 있다. 상대방의 무례함에 괘념치 않는, 또는 면전에서 시원하게 한마디 꺼낼 수 있는 엄마의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 그런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은 의외였음에도 당시의 나에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엄마도 네 나이 때는 너와 똑같았어.'
언제나 완벽해 보이는 엄마도 나 같을 때가 있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가 어릴 때는 나처럼 쉽게 상처받았었다고 했다. 상처 준 이와 헤어진 뒤에 잠들기 전까지 그 대화와 맥락을 곱씹으며 분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어느 순간 감정이 무던해져 있더라고 했다. 상대방의 속이 훤히 보이기도 했고.
'그러니 딸아. 너도, 아니 너는 엄마보다 더 강하고 멋진 사람이 될 거야. 정말이야.'라고 했다.
내 나이 마흔이 되고 보니 그때의 엄마 말이 모두 맞았다. 나를 압도할 것만 같던 인간사 복잡한 것들이 온점처럼 작아지고, 인생의 중심에 오로지 나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어깨너비로 두 발을 안정적으로 딛고 서서 양손에 남편과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나.
약 이십 년 전에 나의 질문을 받았을 때, 엄마도 이제 막 단단해진 모습이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엄마도 나처럼 많이 울고, 다치면서 어른이 되었을 테다. 여린 살에 굳은살이 입혀질 때까지 다칠 걸 알면서도 자신을 수없이 세상에 던져야 했겠지. 갑자기 그때의 엄마를 안아주고 싶어진다. '엄마, 어린 내 손을 잡고 어른이 되어가느라 수고했어.'
어릴 적 나를 닮아, 또래 간의 기싸움에서 매번 장렬히 패배하고 속상해하는 우리 집 유치원생 생각도 난다. 이 녀석도 언젠가 나에게 물어볼 수 있겠다. '엄마는 언제부터 그렇게 멋졌냐고.' 그러면 나는 녀석을 차에 태우고 엄마에게로 향할 테다. 그렇게 '동일한 미토콘드리아를 공유한 삼대'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무용담, 그리고 성공담(?)을 도란도란 나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