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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꼽 Aug 11. 2023

어느 새벽, 불행이 전화를 걸어왔다.

02-2




아직 캄캄한 새벽, 은수는 비명 같은 전화벨 소리를 듣고 깼다. 그리고는 멍해지는 정신을 바로잡으며 아이들을 깨웠다.


"보라야, 민재야. 일어나. 빨리 일어나."


"엄마. 왜에~?"


"지금 병원에 가야 돼. 아빠가 병원에 있대."


겨울이라 밤이 길었다. 회색빛 거리는 고요하다 못해 스산했고, 밤새 내린 눈의 풍경이 차가움을 더했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은수의 마음속에는 온갖 고통스러운 감정이 오갔으리라. 하지만 아이들은 영문을 몰랐다. 의료진들이 아이들은 형원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은수는 형원을 확인하고 나와서 보호자가 작성해야 할 서류에 정신없이 사인을 했다. 형원은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고, 아이들은 이웃집에 맡겨졌다. 어두운 새벽에 당황스러운 내용의 전화, 그리고 지금 병원, 긴급 수술에 들어간 남편. 이 모든 게 꿈만 같은 은수는 아이들이 함께 있어서 마음껏 놀라지도, 울지도 못했다. 아이들과 인사한 뒤에야 마침내 은수는 두 손 위로 얼굴을 묻었다.






형원은 그날도 어김없이 잠든 아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은수에게 '나 출근한 뒤에 조금 더 자'라고 말하며 집을 나섰다.


'이런 날은 회사 안 가고 우리 보라, 민재랑 눈사람 만들고 싶네.'


그날따라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형원은 최근에 새 차를 장만했다. 가족들과 야외활동을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지프차로 구입했는데, 아직 눈 내리는 1월이니 몇 달을 더 기다려야 봄 나들이라도 갈 수 있었다. 아직은 동네 아이들이 한 번만 태워달라고 조르면 태워주는 용도에 지나지 않지만, 이 검정 지프차에는 가족들과의 새해 소망이 가득 실려있었다.


'그래, 아빠 돈 벌어올게.'


형원의 검정 지프차는 하얀 눈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10년을 다닌 길이어도 얼어붙은 도로를 대형 화물트럭들과 달리는 순간은 아찔한 것이었다. 마른 도로였다면 진작에 피해서 달렸을 텐데 미끄러운 얼음 위에 그들과 함께 꼼짝없이 갇혀 서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거북이 운전을 이어가던 도중, 뒤쪽 화물 트럭이 형원을 앞질러 가려 갑자기 속력을 냈다. 그리고는 바로 미끄러져 형원의 차를 오른쪽으로 사정없이 밀어붙였다. 차가 짓뭉개지는 상황에서 형원은 안전벨트 풀다가 기억을 잃었다.  







형원은 기약 없는 코마상태에 빠졌다.


검정 지프차는 폐차되었다.


형원의 나이 서른다섯,

전례 없이 눈이 많이 내렸던 어느 해 1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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