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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도사 May 03. 2023

돌보는 움직임

백미영,〈삐로삐로〉(2021)

돌보는 움직임

백미영,〈삐로삐로〉(2021)


돌보는 세상을 구축하는 것은 우리를 선언문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우리가 살아 있는 생물체로서 다른 모든 인간·비인간 존재들과 공존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 지구의 생명을 지속시키는 생물·무생물 체계와 연결망에 의존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도록 한다.

더 케어 컬렉티브, 『돌봄선언』, 정소영  옮김(서울: 니케북스, 2021), 174-175.


〈삐로삐로〉(2021)가 세계 곳곳 영화제에서 상영되던 시기는 우연찮게도 코로나로 인해 전지구적으로 ‘돌봄’이 주목받던 때와 맞물린다. 이 작품이 한창 만들어지고 있었을 2020년, 더 케어 컬렉티브가 『돌봄선언』을 발표했다. ‘돌봄’은 팬데믹 뿐 아니라 기후 위기 등 다양한 문제에 대처하고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 사람과 생물체들이 번성하고, 지구도 함께 번성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사회적·물질적·정서적 조건을 마련”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직접적인 돌봄 노동뿐 아니라 타인들과 지구의 번영에 대해 관여하고 염려하며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보편적 돌봄을 제안한다. 〈삐로삐로〉는 서로가 서로를 보살필 때 우리가 사는 곳은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돌봄의 가치를 전하며 세상을 연결시키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산에 사는 새 삐로삐로가 도시 꽃집에서 사는 새 달래에게 용기를 전하며 함께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돌봄이 발생한다. 도시로 날아들어 달래를 만나는 삐로. 삐로를 이끄는 다람쥐. 다친 달래를 치료하고 달래의 날갯짓을 응원하는 꽃집 사람들. 〈삐로삐로〉에서 누군가를 돌보는 이들은 이익을 얻으려는 것도 상대와 특정한 관계에 놓인 것도 아니다. 무관심하게 스쳐갈 수 있음에도 다정한 염려 하나로 서로를 보살핀다. 이 작품의 맑고 투명한 사랑스러움은 아름다운 아트웍과 통통 튀는 사운드와 더불어 서로를 다정하게 돌보는 캐릭터들에 힘입어 완성된다. 


작품 바깥에서도 돌봄은 이어진다. 백미영 감독은 고래나 나비, 기린, 토끼 같은 자연 생물체들의 움직임을 유려하게 애니메이팅하며 소망이나 그리움 같은 고요한 감정들을 서정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하운즈투스의 인터뷰에서 감독은 동물과 자연이 작품의 키워드가 된 배경으로 시골에서 살던 유년시절의 경험과 감성을 꼽았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거나 동물 다큐멘터리를 유난히 좋아한다거나, 혹은 변태적으로(?) 애니메이팅에 집착한다거나. 이러한 일화만으로 동물들의 움직임으로 현란한 모험담이 아닌 연약한 감정들을 표현해 온 10년 넘는 시간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자연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지구의 여러 생명체의 연결들에 관심을 쏟는, 감독의 손 끝에서 그려지는 돌보는 마음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삐로삐로〉는 수많은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였고 올해 초 프랑스 극장에서 개봉했다. 이 작품의 수상 내역은 어린이 영화제의 상이거나 어린이들이 뽑은 상들이 많다. 프랑스 개봉 역시 아동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인상 깊은 점은 감독 스스로가 작품이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두고 기뻐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영상매체 라는 점은 애니메이션이 겪는 가장 큰 편견으로 꼽힌다.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과 지원사업들 역시 아동용 작품에 초점이 맞춰지기에, 어떤 연구자는 이러한 경향을 단편 중심의 독립 애니메이션의 지원 미비와 관련지으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창의성을 결여한다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결국 애니메이션 만큼 어린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는 없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동화 같이 아름다운 그림들이 펼쳐지고 대상의 특징을 살려 형상화된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움직이며 관객들의 눈을 즉각적으로 사로잡는다. 우리들은 언어를 모르더라도 애니메이션을 보며 보다 쉽게 서사를 따라갈 수 있다. 전세계 어린이들은 디즈니와 지브리 작품을 보며 동료와 함께 역경을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제 〈삐로삐로〉를 통해 특별한 사건이 없더라도 일상 속에서 서로를 보살피는 순간들도 반짝일 수 있음을 배울 것이다. 작품 속에서 자연과 자연이 돌보고 사람이 다른 생명체를 돌보는 움직임들은 작품 밖 관람객들에게 닿는다. 그렇기에 〈삐로삐로〉에 쌓여져 가는 수많은 돌봄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하운즈투스 인터뷰 4월의 감독님인 백미영 감독님의 글을 5월이 훌쩍 지나서야 쓰는 변명은 〈삐로삐로〉가 가정에 달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지요. (땀땀)  <삐로삐로>는 작년 여러 영화제에서 관람했는데 개인적으로 귀여운 동물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음에도 좋은 작품은 취향을 가리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일깨워준 작품입니다. 따스한 메세지와 별도로 애니메이팅 자체도 기술적으로 원숙한 거장의 경지가 느껴져서 계속 감탄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 백미영 감독님의 작품은 감독님의 홈페이지에서,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 컬렉티브 하운즈투스의 월간 인터뷰는 유투브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삐로삐로>는 트레일러만 관람할 수 있지만, 감독님의 풍성한 예정작들을 관람할 수 있어요. 


<백미영 감독 홈페이지> https://www.anibaek.com/

<Houndstooth 4월의 감독인터뷰 아티스트 백미영 작가> https://youtu.be/8UHqn85jI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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