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불안의 영속, 거인을 되짚고 예고하는 도시 이야기

이한빛, <도시 이야기>, 2006.

by 도라지 도사

짧은 불안의 영속, 거인을 되짚고 예고하는 도시 이야기

이한빛, <도시 이야기>, 2006.

006., <도시 이야기>, 2006.

"지금도 거인들은 도시 어딜가나 있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 아직 밤의 달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의 이야기."


이한빛, <도시 이야기>, 2006. 스틸.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지친 사람들로 늘어진 낡은 전철 속, 누군가 한 사람은 예민하다. 나머지 불빛 너머로 기묘한 그림자들을 포착하며 기시감을 감지한다. 그는 높다란 도시 풍경에 스며들며 과거를 회상한다. 이한빛 감독의 2006년 작, <도시 이야기>는 마르크 샤갈과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향이 짙게 드러난다. 붉은 색과 푸른 색을 중점적으로 화면 가득 유럽풍 건물과 풍만한 인물들을 뭉툭하게 펼쳐내는 묘사는 샤갈의 회화를 떠오르게 한다. 작품에서 '거인'으로 칭해지며 부풀었다 축소되길 반복하는 생명체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의 가오나시를, '거인'을 배회하는 인간 머리를 한 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의 괴조들을 연상시킨다. 동시에 <도시 이야기> 높게 쌓아올린 건물과 산 채로 사람을 집어삼키는 괴물은 10여 년이 지나 발표된 <진격의 거인>(2009-2021)을 예고한다.


이한빛, <도시 이야기>, 2006. 스틸.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거인에게 어머니를 잃은 후 조사병단에 합류해 거인을 물리치는 에렌의 대서사시와 달리, <도시 이야기>는 현실에 뿌리 내린 짧은 판타지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에요.” <도시 이야기>의 회상은 불길한 속삭임과 함께 시작한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와 걱정 어린 웅성거림보다 더 선명하게 울려퍼지는 종소리에 사람들이 급격하게 도망간다. 어린 아이 역시 어머니로 짐작되는 여성의 손에 이끌려 무언가를 피해 달아나기 시작한다. 높은 유럽풍 건물을 지나 머리 달린 새가 지나가면 밤의 장막이 세상을 덮고 그 사이로 젊은 여성은 어린 아이의 손을 이끌며 계속해서 도망간다.


소년을 지키고 거인에게 먹히는 어머니와 달리, 거인에게 겁을 먹은 아이가 뒷걸음치려고 해도 젊은 여성이 계속해서 아이를 붙잡으려는 장면은 이 이야기가 현실을 깊게 건드는 환상이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아이를 먹고 장벽을 헤쳐지나가는 거인의 행보 사이로 아이의 기억인지 또다른 가족의 훈계인지 모호한 대화가 지나간다. 이 장면에서도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은, 아이를 지키기 보다는 혼내는 푸른 형상과 잡아먹는 새빨간 그림자가 선명하게 대비된다. 반면 거인은 어둡고 기묘하고 뭉개진 무언가다. 거인의 위장 속을 헤엄치다 다시 뱉어진 아이의 눈에 도시는 다르게 다가온다.


”그때 나는 거인을 향해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거인은 인간들에게 '악'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어떤 손이 레버를 잡아내리고 도시 곳곳이 전등으로 발광하자 이 위험한 존재들은 흩어지고 뭉개진다. 도시 빌딩 풍경이 높디 높게 솟아오른다. 거주 공간보다는 상업시설과 공장이 연상되는 건물들 사이로 괴이한 존재들은 힘을 잃고 숨어든다. ”사람들은 거인을 없애기 위해 계속해서 도시의 불을 밝혔다. 모두들 거인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이한빛, <도시 이야기>, 2006. 스틸.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그들은 도시 어딜가나 있다.” 어른이 된 아이가 걷는 거리 사이로 이제는 더이상 거인이 아닌, 쪼그라든 기묘한 그림자들이 골목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그림자가 거인이었을 무렵, 사람들은 그 존재들을 '악'으로 다뤘다. 하지만 이제 그들을 온전히 악으로 볼 수 없게 된다. 가로등에 기대 비틀거리는 사람, 화려한 네온사인을 등지고 레이스 가득한 옷을 입은 사람, 술병들과 널부러진 사람, 신문지만 덮고 노숙하는 사람. 그림자들은 이들을 덮는다. 어두운 생명들이 도시 가운데서도 허름한 변두리에서 꿈틀거릴 뿐이다. 이윽고 소년의 방에 자리한 거인은 공모자일까, 아니면 문득 찾아온 낯선 손님인가.


이한빛, <도시 이야기>, 2006. 스틸.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도시 이야기>는 붉은 색과 푸른 색을 중점으로 도시와 사람들을 묘사하면서 거인의 검정 그림자들을 곳곳에 침투시킨다. 이한빛이 교감하는 샤갈은 부유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새), 덩어리 져 감정을 모호하게 드러내는 얼굴, 어둡게 변주되는 가운데도 동화처럼 펼쳐지는 색채 뿐 아니라, 환상을 매개로 질서를 재인식하는 힘 그 자체에 가깝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반유대주의를 겪고 샤갈이 환상적으로 사용했던 색에 어둠을 덧칠했던 것처럼, 이한빛은 '거인' 다룰 때에는 어둠을 강조하며 선명한 색들을 집어삼킨다. 그렇게 새까만 거인의 내부는 푸른 빛과 붉은 빛 사이의 보라색들은 직선으로 분명하게 형태를 구분하는 도시와 대조되는 구불거리는 세계다.


한편, 발표 시점과 시간 차를 두고 관람객들에게 다가온 <도시 이야기>의 거인은 자연스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와 <진격의 거인>의 거인들을 상기시킨다. 거인은 거대하게 꾸물거리며 불어나 축소되는 외형 외에도 인간 어린이를 향해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에서 가오나시를, 거대하게 도시를 휘젓고 인간을 산채로 삼켰다 뱉으며 기술로 척결이 가능하다는 점은 <진격의 거인>의 그것과 유사하다. 본디 그렇게 태어났든 개조당하여 인간성을 상실했든, '비인간'으로 규정된 미지의 존재들은 인간이 세운 기준들을 점검할 그림자가 된다. 위협적이긴 커녕 인식조차 불가능하도록 축소된 거인들과 바닥에 납작하게 널부러진 새 인간들. 이들의 결말을 보며 마냥 인간의 승리로 기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래되었지만 고전이 되지 못한 <도시 이야기>는 우리가 다시 보며 되새기고 상상할 현재들이다.





이한빛 감독의 <도시 이야기>는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SsPcIuvj65A?si=KJC-GWVIKBhYToVp


2023년에 짧게 독립애니메이션을 쓰다가, 먹고 사는 길이 급해 덕질을 멈추고 생활비를 벌다 최근 다시 백수가 되어 다시 글을 쓸 여유가 생겼답니다. 다시 애니메이션 글을 쓰면서 쓰고 싶었던 작품은 따로 있었는데,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 대문 배너의 캐나다한국영화제(KFFC) 한국 애니메이션 플리에 재밌는 작품들이 많더라구요.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인 <도시 이야기>를 먼저 이야기해봅니다. 플리의 다른 작업인 <세레나데>도 인상적이라 감독님 필모를 찾아봤는데 2015년 이후로 정보를 찾을 수 없어 슬퍼요. 종종 독립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한국도 좋은 작품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학술단위의 논문들(일반인들에겐...접근 불가....돈 없음 공부도 못함요ㅎㅎㅎ) 외에는 단편 애니는 특히 어디어디 상 받은 뉴스 말고 가끔씩 영자원에 실리는 글이나 애니메이션 영화제 단위의 프로젝트형 리뷰들 말고는 감상들을 찾아볼 수 없어요. 사실 오타쿠의 마음으로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외국 애니들은 한국어로 아무리 떠들어도 제작자가 알 수 없으니 편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자국어로는 쉽게 들키니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능력이 있어서 지원사업을 쓸어모드거나 멋드러진 직장에서 커미션비를 착착 드리면서 작업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은데, 그것도 아니라 글을 쓴다고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도 크죠. 작업에 좋아하는 감독님들께 작품 활동 계속 해주세요라고 청하기도 송구스러운 팬의 마음입니다.


한줌단... 제가 그나마 할 수 있는 미약한 영업이나 하고 있으면, 동종 계열 오타쿠분들이라도 만날 수 있겠죠? 알바 마감이 촉박하지 않는 한, 매주 수요일을 목표로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들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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