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50주년 기념, <바보들의 행진>, 1975, 감독 하길종.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다. ‘10’을 단위로 기념하기를 즐겨하는 인류 보편 정서에 충실할 수 있도록, 올해 5월을 떠나보내며 달리 간직할 ‘00주년’을 얘기해볼까 한다. 잊을만 하면 소환되는 광복 80주년을 잠시 거슬러 올라, 50주년의 유산말이다. 1975년 5월은 유신헌법에 반하는 모든 논의를 전면 금지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를 선포했다. 그리고 50년 전인 1975년 5월 11일, 검열을 즐기는 정부가 싹둑싹둑 잘라낸 <바보들의 행진>이 개봉했다. 당시 정부 검열은 락스를 한가득 뿌려대듯 청춘들의 활기찬 삶 사이에 곰팡이 마냥 스며든 억압과 불의를 지워냈다. 덕분에 그들이 정당하다는 믿음으로 저질렀을 행동은 그야말로 바보 같은 기행으로만 남는다. 그러나 <바보들의 행진>의 대중적인 인기와 이에 치를 떨던 엘리트 감독의 진절머리를 떠올리자. 검열로 영화 곳곳에 자리잡게 된 모호함과 어색함은 관람객들이 기꺼이 영화를 마음대로 받아들일 여지를 남긴다. 나 역시 <바보들의 행진>을 반세기 이후의 맥락에서 기꺼이 오독하고 상상할 것이다.
<바보들의 행진>은 장면들이 아름답고 인물들의 상황과 서사에 따라 절묘하게 미국 팝송과 한국 가요를 배치하는 등 1970년대 중반 서울 대학을 다닌 청춘들의 감성을 섬세하게 읽어낸 걸작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저항하는 포석을 흩뿌리려다 실패했지만, 실패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겼기에 결과적으로 낭만적인 설욕으로 기록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은 시간에도 바래지 않는 고전의 탁월함에 감탄하거나, 정치 검열이 예술에 가한 영향을 분석하지 않는다. 이미 전문가들이 명료하게 분석했던 내용을 서투르게 답습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21세기 초 어느 여성이 애써 <바보들의 행진>에 호감을 가지고자, 20세기 중반 관객들이 이 영화에 애정을 느꼈을 면면들을 짐작해본다.
“우린 참 시시한 대학생이다. 그치?”
신촌을 무대로 Y대 철학과 병태와 영철이 H대 불문과 영자와 순자를 미팅에서 만난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과 가까워지고자 영자가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극장을 찾거나 자전거를 태우며 데이트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녀들은 철학과 남자들은 전망이 없다는 이유로 관계를 발전해가길 꺼린다. 영철은 순자에게 “절교선언” 당한 데다가 군 입대까지 합격하지 못하자 상심하여 바다에 뛰어든다. 병철은 친구의 죽음을 괴로워하다 입대하는데, 자신을 찼던 영자가 역으로 마중나온다. 두 사람이 입맞춤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최인훈의 동명 연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줄거리는 대중적인 청춘멜로 그 자체다. <바보들의 행진>의 미묘한 매력들은 통속서사에 숨어 사회의식을 벼르고자 했던 감독 하길종의 의식적인/무의식적인 실험들과, 그러한 불온함을 샅샅히 뒤졌던 권력 간 긴장에 담긴다. 많은 대사와 장면이 삭제당하고 교체됐다. 어떤 분위기는 포착되었으나 온전히 교정될 수 없었고 무언가는 간과되었다. 이렇게 뒤죽박죽 섞인 수정과 삭제와 보류의 흔적들은 보다 다양한 관객들을 이끌었을 매력일테고, 계속해서 이 영화를 분석하고 논하게 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바보들의 행진>에서 휴강 사유가 시위에서 체육대회 응원으로 바뀌었다는 검열 일화는 영화를 다룬 글에서 필수적으로 소개되곤 하는 일화이다. 당대 연고전 하키 장면과 야구 장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장면에서 교수는 이마를 짚고 큰 결심을 내린 듯 말한다. “나가고 싶은 사람은 나가도 좋아요. 그대로 강의를 듣고 싶은 사람은 불러내지 않기로 하지.” 출석도 부르지 않고 결석 처리도 하지 않겠다는 교수나, 우르르 나가는 학생들과 남아있는 병태 모두 오히려 심각하게 비장한 나머지 검열 흔적은 오히려 명백하다. 나는 이 시퀀스가 청춘들의 속내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유사한 시기에 대학을 다녔던 실제 인물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S대를 나왔으나 불운하게도 서울 유수의 대학에 임용되지 못했던 어느 교수님은 아련함을 장착한 인물이었다. 그분께서는 종종 모두가 시위를 나갈 때 진정 공부를 하고 싶으셨다고 쓸쓸히 말씀하시곤 했다. 그를 존경했던 마음과 별개로, 세상 사람들은 여러 다른 세계로 분리된다는 걸 깨달은 계기기도 했다. 집 근처 대학에서 취업이 제일 잘되는 과를 선택했거나, 전문 학교를 나왔기에 대학생에게만 주는 자격증을 위조해 직장을 다녔던 부모를 둔 학생에게는 참 유별나 보였다는 얘기다. 모두가 정의로울 수 없고, 엘리트로 분류될 자격이 있는 수많은 대학생들 가운데 병태에 깊이 공감하는 청춘들이 이 영화의 흥행에 한 몫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다만 희망을 가져보자면, ‘고래 사냥’으로 모호하게 꿈을 얼버무리는 영철은 유신 체제가 교정하려고 했으나 뜯어고치지 못했던 인물일 것이다. <고래 사냥>을 작사하기도 했던 최인호가 계속해서 고래가 누구인지 추궁당했음에도 영화에서 고래는 끝끝내 지워지지 않았다. 영철에게 입대 불합격은 결정적인 상처라기 보다는 제도권에서도 여성에게도 지속적으로 선택받지 못한 연속적인 계기 가운데 하나다. 병태가 국가의 평균적인 남성임을 보장받은 인물이라면, 영철은 남성성을 입증하는 데 실패한 인물이다. 영화 내내 영철에게 고래는 ‘꿈’이었다. 그러나 모든 도전에 실패하고서야 그는 고래가 꿈이라는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그 마음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난 그걸 몰랐었어. 난 지금부터 그것을 잡으러 갈 거야. 난 용기를 보여주겠어. 그렇지 않고는 나는 오늘의 나를 지탱할 수 없어.” 고래는 추상적이라 관람객이 멋대로 그려볼 여지를 준다. 장애도 없고 별다른 실패도 없어 평균에 반듯하게 안착할 수 있는 병태에게 시위가 “사꾸라(벛꽃이자 사기꾼)”처럼 허상적이라면, 말을 더듬고 실패를 반복하기에 영철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들을 더욱 섬세하게 포착할 수 있는 인물이기에 자신의 현존을 지켜내기 위해 시위에 뛰어들게 되는 인물로 대비된다. “또 한가지 우리에겐 커다란 희망이 있어. 그리고 선배들이 지켜준 소중한 우리의 학교가 있어. 학교가 있는 한 우리들은 행복해. 난 이제 떠날 거야.” 같이 떠나자는 영철을 만류하고 혼자서 고래를 잡으러 뛰어드는 영철의 비장한 선언에 선배들이 등장한다는 것 역시 지나치게 어색해서 학생 시위의 계보를 가져와 붙여버리게 된다. 자전거를 향해 (아마도 죽음으로) 나아가는 영철이 “가을이 가네. 꽃이 지네”라는 노랫말와 함께 사라지고 “교수회의 결정에 따라 무한한 휴강을 발표”한다는 대자보와 교차된다. 이 장면은 모호했던 덕분에 애매하게 남아버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저항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건 당신이 이 지상의 것을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으시기 때문이죠."
"돌로 된 심장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번외로 유신 정권에 반하는 저항 서사에서 벗어나 망상을 하자면, 나는 <바보들의 행진>에서 영자가 하인 역할로 출연하는 연극 <타르튀프> 에서 공작부인과 사기꾼 타르퓌르가 서로 계략을 꾸미는 장면들을 가장 좋아한다. 타르퓌르는 공작부인을 달콤하게 유혹하며 몸을 애무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의 병태와 영자의 키스씬(사실 이 장면은 참전용사의 키스 사진들의 클리셰를 지나치게 따라가서 여성 관람객에게는 애틋하기보단 프로파간다로만 느껴진다.) 외에 가장 노골적으로 애정행각이 담긴 씬이다. 그러나 꽤 긴 시간 펼쳐지는 이 유혹의 순간은 ‘계집애들’의 연극일 뿐이기에 살아남는다. 아마 전원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연극 장면은 국극의 영향이기에 가능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그 덕에 17세기 발표되자마자 수차례 왕정에 금지당했던 풍자극, <타르퓌르>는 영화 속에서 (아마 별다른 관심도 받지 못하고) 살아남아 1970년대 한국의 사기꾼들을 풍자하고 권위주의를 대신 공격하는 포석이 된다. 몰리에르가 “가장 널리 퍼져 있고 가장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가장 위험한 악덕 중 의 하나”인 “모든 진실한 사람들에 대한 작은 봉사"¹하기 위해 종교 권력을 공격하는 화살을 가져온 것이다. 한편 계집애가 계집애를 유혹하는 장면은 남학생들에게 웃길 뿐이지만, 다른 여성 관객에게는 진지하게 집중하여 볼 극이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1980년대까지 한국 영화사에서 여성 간 성애가 전면에 드러날 때면 언제나 남성이 깊게 전제되었다. 그런 사이로 남성에게 관찰되긴 극의 일부이기에 미묘할지라도 남성 없는 여성 간 케미의 극대화는 또다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묘미가 된다.
¹ Premier placet présenté au roi sur la comédie du Tartuffe; 2. Second placet présenté au roi dans son camp devant la ville de Lille en Flandre; 3. Troisième placet présenté au roi; 4. Préface. 이인성 ( In Seong Lee ). 「몰리에르의 변명 -『타르튀프』 논쟁에서」, 『인문논총』30 (1993): 55에서 재인용.
작년 일터에서 알게 된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올해 초부터 1달에 1번씩 영화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화가 재미났지만, S선생님의 추천작인 <바보들의 행진>은 마침 5월이 개봉 50주년이기도 하고 무지성으로 떠들고 싶은 부분들이 많아 알바 마감 중에 휘리릭 쩌보았어요. 6월 1일을 넘기면 의미가 없어....
암튼 이래저래 감성적으로는 제가 별로 안조아하는 계열의 문사철 냄저 감성임에도 영자 역을 맡은 이영옥 배우와 순자 역을 맡은 김영숙 배우가 너무나도 아름다왓던 바이브에 즐거웠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