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잔치
제주 왕벚꽃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에 활짝 핀 벚꽃 가로수 길을 기대했지만, 벚꽃은 아직 준비 중인 시간이다.
대신 길 위에는 유채꽃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노란빛이 바람을 따라 번지며, 들판을 가득 채운다.
벚꽃이 아니어도 괜찮다.
꽃마다 피어나는 시간이 다르고, 그 다름이 모여 봄을 만든다.
바람을 따라 수월봉까지 걸음을 옮겼다.
바다가 맞닿은 풍경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그곳에서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면, 남방 큰 돌고래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바다에 닿는다.
남방 큰 돌고래를 기다리는 시간도 즐겁다.
그저 강아지들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그 자리에 머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요즘의 나는 여행자 모드로 지내고 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익숙한 길 위에서 낯선 시선으로 하루를 걷는다.
집으로 돌아오니, 바깥에서 찾던 봄이 이미 마당 가득 와 있었다.
배추꽃은 만발해서 꽃병으로 자리를 옮겼다.
앵두나무는 연분홍 꽃을 열고, 살구나무는 한층 부드러운 빛으로 계절을 밝힌다.
개복숭아, 체리사과, 모과나무는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꽃을 보여주고, 10년째 곁을 지켜온 로즈마리와 3년 전 이주한 개나리도 꽃을 피워냈다.
서로 다른 결을 가진 나무들이
서로 경쟁하지도, 서두르지도 않고
각자의 속도로 피어나는 풍경
그래서 요즘의 제주는
어디를 가야 꽃을 볼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어디에 있어도 꽃을 만나게 되는 시간이다.
벚꽃이 아직 피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던 마음도
어느새 사라진다.
이미 충분히, 아니 그보다 더 풍성하게
꽃들의 향연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찾던 봄이
사실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