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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짱이 Aug 01. 2017

차별과 공포의 상관관계

<겟 아웃> 비평

*영화 <겟 아웃>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17년 상반기에 개봉한 겟 아웃이 한국에서 흥행 돌풍을 몰았다. 로튼토마토 99%의 기록을 지닌 겟 아웃은 유명한 코미디언 조던 필에 의해 만들어진, 인종차별을 다루는 공포영화이다. 이 영화가 독창적인 이유는 인종차별이 담고 있는 상처를 ‘공포’라는 장르에 적절히 녹여낸다는 점에 있다.







영화 초반부에서는 쉬지 않고 불안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아예 처음부터 흑인이 납치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영화에서 다루어질 사회는 흑인 혐오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그래서 흑인들에게는 불안감이 맴돌 수밖에 없는 사회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서 전개될 사회가 그러한 불안을 전제로 하고 있는 사회라는 것을 관객에게 체험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더 자연스럽게 백인 가족과의 만남을 앞두고 가지는 불안감에 더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로즈의 부모를 만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들의 표면적인 예의를 보지만, 흑인 노예를 연상시키는 흑인 집사와 일꾼을 마주하게 된다. 로즈의 아버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우 수상하고 이상하게 보인다. 마치 차별이 더 보편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과거로 회귀한 듯한 느낌을 준다.


크리스가 로즈의 사진첩을 발견할 때까지, 그는 백인들의 차별적 언행과, 그들과의 괴리감으로 인해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그러나 파티장에서는 그러한 무례한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과 함께 오고 간다. 그것은 차별이 보여주는 현실, 그러니까 당사자 외의 기득권자는 그것에 둔감해서 느끼지 못해 벌어지는 기이한 현실이다.


차별에 대한 불안과 주인공을 둘러싼 음모에 대한 불안은 중첩된다. 두 불안감이 중첩되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어떤 말들이 흑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말인지에 더 신경 쓰게 된다. 일상생활이었으면 놓칠 수도 있을 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무슨 의도를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 말이다.


크리스는 백인들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한다. 오직 카메라 렌즈 뒤에 숨어서 그들을 ‘엿볼’ 뿐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관객에게 불안감을 심는다. '무언가 끔찍한 것이 벌어질 것이다.'라는 불안감. 그리고 빙고 게임은 그 불안감을 확신시켜준다. 우리가 설마 했던 바로 그 장면. 크리스라는 흑인을 경매하는 그 장면에서 말이다.




이 영화는 여느 공포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공포를 심는다. 때때로 어두운 공간에서 관객을 놀래키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보다도 크리스를 향한 백인들의 차별적 언행, 수상한 행동, 그리고 다른 흑인들의 이상한 모습들은, 밝은 대낮이라는 시간과 넓은 집과 정원이라는 공간에도 불구하고 불안감과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다. 심지어 크리스를 경매하는 장면은, 명목적으로는 그들이 빙고 게임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일상적 놀이와 인간을 경매하는 반인륜적 행위 사이의 이질감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이질감은 크리스가 갇힌 지하실에서도 드러나는데, 여기에서 지하실은 어두운 밀실이라기보다는 밝고 넓은 방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 방은 크리스를 중심으로, 그리고 크리스의 앞에 있는 박제된 사슴 머리를 중심으로 극도의 대칭 상태에 놓인다. 이 완벽한 대칭 상태, 이 인공적인 공간감이 우리에게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장면은 관객의 힘을 다 빼놓는다. 경찰차가 올 때 크리스는 자연스럽게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다. 그러나 친구 로드가 나오는 것을 보고 손을 내린다. 사실 미국은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과잉진압 논란이 들끓는 국가이다.


2014년 미국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는, 마이클 브라운이라는 18살 소년이 비무장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백인 경찰로부터 6차례 사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이미 여러 방면으로 차별을 받고 있던 흑인들은 이에 대항하는 시위를 열기 시작했다. 이것은 2004년도 아닌, 2014년에 벌어진 인종 차별에 관한 사건이다. 마지막 장면은 바로 그것을 연상케 한다. 물론 크리스가 쓰러진 로즈 위에 올라서 있고, 다친 로즈가 도와 달라는 말을 하기 때문에, 크리스가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장면은 충분히 '흑인이 쉽게 가해자로 의심받는 현실'을 연상케 한다. 체념하는 듯한 크리스의 눈빛. 전체 맥락이 있음에도 흑인이 가해자의 위치로 몰리는 상황. 백인 경찰(로 추정되는 경찰차). 이것들은 차별로 인해 폭력을 당한 크리스에게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친구 로드가 경찰차에서 나오는 걸 본 크리스가 손을 내릴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저 사람이 이렇게 고생을 해야만 하는 거지?’, ‘왜 저 사람은 손을 올려야만 하는 걸까?’ 힘이 빠지면서 서러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공포와 스릴러를 작동하게 하는 동력은 바로 흑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겟 아웃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새롭게 시작되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은 아무렇지 않게 발화하고 소비했던 흑인 혐오적 언행들이 흑인들에게 불안함을 줄 수 있는 폭력적 언행임을 인지하게 된다. 적어도 한국의 경우, 넷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녔던 ‘흑형’, ‘역시 운동 잘하는 흑형’, ‘음악을 잘하는 흑형’ 등등의 워딩을 다시 살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치 관객에게 ‘우리가 겪는 일상은 공포의 소재가 될 수 있을 만큼 차별과 불안으로 넘쳐난다.’고 외치는 셈이다.




페미니즘 공포 영화, '스텝포드 와이브스' (1975)


여기에 비슷한 영화가 있다. ‘스텝포드 와이브스’라는, 1975년에 개봉한 공포 영화이다. 이 영화가 겟 아웃과 궤를 같이하는 이유는, 여성의 일상을 소재로 불안과 공포의 감정을 체험시키기 때문이다. 스텝포드 와이브스도 겟 아웃만큼이나 끔찍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설정을 가능케 하는 동력에는 차별과 혐오가 있다. 결국 두 영화는 각각 남성의 판타지(여성은 예의 바르고 참한 성격과 섹슈얼한 몸만 있으면 된다.)와 백인의 판타지(흑인은 훌륭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예술적 감각을 지닌 흑인도 많다. 그러나 판단력에 있어서는 백인이 앞선다.)가 얼마나 괴기스러운 판타지인지를 보여준다.


사실 흑인 인권을 다루는 영화는 여럿 있었다. 과거 노예제,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20세기의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는 영화들. 하지만 겟 아웃처럼 일상적 관계 속에서 흑인들이 느낄 수 있는 교묘한 차별과 혐오를 어떤 영화가 고발하고 있는가? 그러한 불편한 소재가 장르 영화에서 쉽게 채택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또 할리우드의 주요 영화들은 수많은 백인 배우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주 가끔 유명한 흑인 배우가 주연을 할 뿐이다.) 흑인이 주연으로 있으면서 흥행을 한 장르영화는 매우 드물다. (물론 ‘장고 : 분노의 추격자’라는 멋진 장르 영화가 있지만, 이 영화도 결국 19세기라는 아득한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 않던가?) ‘겟 아웃’은 흑인 감독, 흑인 배우와 함께 아예 대놓고 현재의 교묘한 흑인 차별을 고발하면서도 흥행에 성공한 장르영화이다. 이 영화는 눈과 귀를 틀어막은 차별주의자들, 자신이 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득권을 누리는 주류의 사람들에게, 공포와 불안이라는 정서를 담은 영화적 체험을 통해 망치질을 한다. 이것은 공포와 스릴러라는 장르를 이용한 시의성 있는 ‘인종 차별’ 영화가 가진 힘이다. 그 불안과 공포를 체험한 관객은 흑인의 일상을 다시 생각해보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겟 아웃은 공포 영화일까? 분명 혐오와 차별을 받는 사람이 주체적으로 복수를 하며 영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전복적 공포영화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만 보기에는 영화가 무언가를 열심히 고발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겟 아웃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에 자신의 불안함을 공포라는 장르에 녹여서 체험시키는 영화이다. 개인적으로는 공포가 작동하는 방식보다 공포가 작동되는 이유가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그래서 이 영화를 공포 영화가 아니라 차별 영화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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