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얼타던 신입 시절을 지나 일이 손에 조금 익고 서로가 편해질 무렵, 회사 친구들과 자주 술을 마셨다. 퇴근 시간이 임박해오면 꼭 한 명씩 얘기를 꺼냈다. “오늘 술 마실 사람?!” 일주일에 세 번은 계획했던 것처럼 함께 술을 마시며 일 얘기, 직업인으로서의 우리를 말했다.
술자리에서 반복되었던 주제가 있다. ‘넌 회사에서의 롤 모델이 누구야?’ 2~3년 차 쪼꼬미들은 술에 취해 붉어진 뺨으로 ‘이곳에서의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취기가 오를 때면 답을 갈망하게 되는 주제였다. 나는 롤모델이 없다고 대답하곤 했는데, 슬프게도 진짜로 없었다. 발행하면 할수록 손실이 쌓이는 잡지, 디지털로 전환했지만 수익 모델이 없는 미디어. 가라앉는 배에 어쩌다 같이 탔을 뿐, 우리의 배를 수리하거나 안전한 곳에 정박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으니까. 우리는 불안정한 업에 대한 확신을 선배들에게서 찾고 싶었지만 언제나처럼 실패했다. 만약 그때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의 저자 황선우가 내 선배였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저자는 한 잡지사에서 20년 동안 에디터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일하는 여성’에 대해 얘기한다. 저자와 나의 직무가 같았기에 자주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말하고 쓰는 업을 지닌 여성이 품게 되는 질문, 이를 넘어 일을 사랑하는 여성이 직면하는 상황에 대해 황선우는 자신이 찾은 팁을 내보이는데, 경험자의 확정적인 조언이 아니라 좋았다. 그가 일하며 살아온 궤적을 들려주는 것에 가까웠다.
나를 포함한 지난 세대에게서 멘토를 찾기 어려운 시대다. 변화가 거의 없는 농경사회에서 노인들을 살아 있는 빅 데이터로 활용할 때는 늙음이 지혜와 동일시됐을지도 모르겠다. (중략) 오히려 살아온 세월이 길수록 관성에 젖은 대응을 하다가 망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중략) 충고를 아끼는 대신 어린 사람들에게 자주 묻거나 그들의 방식을 관찰하는 건 헛발질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이다.
황선우,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36p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그는 잡지의 부흥기에 경력을 쌓았다. 사람들이 잡지를 사서 기사를 읽던 시절. 물론 에디터라는 직업이 박봉인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고, 텍스트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늘 녹록지 않지만 지금처럼 존폐여부를 심각하게 따지는 시절은 아니었으니. 수많은 셀럽을 인터뷰하고, 많은 이들과 낯선 곳에서 화보 촬영을 하는 에디터라는 직업을 완연하게 누린 것 같았다. 간결하고 정확한 글솜씨도 부러웠지만, 그의 시절이 더욱 이상적으로 다가왔다.
부러움을 지나 일에 대한 그의 정갈한 태도가 드러나는 문장에 여러 번 밑줄을 그었다.
승낙받는 게 아니라 거절당하는 게 세상 일의 디폴트구나, 하고 여기는 게 반드시 부정적인 자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관주의자의 낙관이 거기서 싹튼다. 가볍게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고, 뭔가 하나라도 성사시켰을 때 쾌감이 더 크다. 일하는 게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잔가지가 좀 부러지더라도 묵묵하게 나무를 지고 나를 때, 비로소 쉬워지는 면이 있는 것이다.
황선우,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87p
잔가지가 좀 부러지더라도 묵묵하게 나무를 지고 나르는 일. 나의 일을 사랑한다고 용기 내어 말하는 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내가 나의 일을 사랑함에 확신을 가지고 경험을 쌓아가는 것. 이후 그의 시선은 ‘일하는 자아’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확장된다. 이 부분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작업 초기 자신의 정체성과 상처에 집중하다가 이후 변화하는 예술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는 것과 닮아있다 느꼈다. 묵묵히 일해온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그 다음을 본다.
다시 돌아가서, 그가 내 선배였다면 어땠을까? 가라앉는 배를 수리하거나 안전한 곳에 정박하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노를 젓는 일을 사랑하니?” 나는 감히 사랑한다고 단박에 대답할 수 있었을까.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먼저 묵묵히 사랑해나갈 용기를 내야겠다.
P.S. 책을 선물해준 M과 함께 지금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일을 사랑하며 걸어 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