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빈 Sep 28. 2018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 봐도 뭉클한

웹 드라마 <에이틴>

드라마 속 등장인물과 10살 넘게 차이 나는데도 웹 드라마 <에이틴>을 보며 늘 설렜다. 주인공에게 공감했고, 어떤 장면에서는 가슴 뭉클했다. 10대의 모습과 문화는 변해가고 있지만, 그 시절 거쳐 가는 열병은 그대로인가보다. 20대, 30대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웹 드라마 <에이틴>의 몇 가지 장면을 소개한다.
 

어설픈 LOVE

친구들이 첫사랑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했다. 초등학교 짝꿍? 중학교 때 걔? 아니면 첫 키스 상대를 말해야 하나? 내가 품었던 감정이 그 대단한 사랑에 해당하는지 헷갈렸다. 시간이 지나 여러 번의 연애를 거친 후에야, ‘아, 그때 그건 사랑이라 이름 붙여도 되는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에이틴>의 등장인물들도 자신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한다. 극 초반, 하민(김동희)-김하(이나은)-도하(신예은) 세 사람은 모호한 삼각관계를 연출한다. 가끔은 친구처럼, 가끔은 남자처럼 행동하는 하민과 그런 하민에게 흔들리는 김하와 도하. 그들은 타인에게 느끼는 호감이 사랑의 시작인지 의심하며 감정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는다.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보람(김수현)과 기현(의현)도 마찬가지다. 어설프게 다가가는 둘을 보며, 과거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모르고,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알지 못했던 게 떠올라 웃음이 났다.


친구지만 너를 질투해

지금도 인간관계는 복잡하지만, 그 시절엔 더 복잡했다. 10살 정도 나이 먹으며 내가 겨우 배운 것은 ‘잘 숨겨야 하는 감정이 있다’는 사실이다.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또는 억지로 구겨 넣으면 관계를 망칠 수도 있는 감정들. 부러움과 질투 같은 것들.
 
도하와 김하의 관계를 보며 짠했다. 좋아하는 친구지만 어쩔 수 없이 부럽고 질투 나는 마음, 그런 마음을 먹는 내가 미워지는 마음. 그 시절 가장 극대화되는,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는 뜨거운 감정이다. 시간이 지난다고 그것이 없어지지는 않지만, 몇 번씩 관계 속에서 부딪치다 보면 해도 되는 말과 행동,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체화할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돌아보면, ‘아 내가(또는 그 친구가) 질투했었구나, 우리 모두 힘들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바닥을 보이고 더 돈독해지는

주인공 김하와 도하가 서로의 바닥을 보이며 싸우는 장면을 나는 드라마의 명장면으로 꼽았다. 그리고 꼰대처럼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저 나이 땐 바닥을 보이며 싸우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지. 바닥을 보이는 게 허락되는 시절이니까.’
 
십 대 때는 친구에게 실망하거나 거부당하면 견딜 수 없어 미칠 것 같았다. 아마 그런 상황과 감정이 처음이어서 그랬을 거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너와 나 모두 처음 겪는 거라 똑같이 감정을 분출하게 된다. 서로 불같이 할퀴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것도 빠르게 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나는 마음이 얼어붙어 감정을 분출하는 것도, 보듬는 것도 다 어려워졌다. 그래서 그 장면이 애틋했다. 거기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내 모습이, 그때 내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가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내 십 대를 채워준 친구들 중, 몇몇은 아직 곁에 있고, 다른 몇몇은 소식도 모르는 타인이 됐다. 불같던 시절을 함께 지나왔지만,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멀어졌다.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당연한 과정이었다.
 
<에이틴>을 보는 내내 꿈을 꾸듯 그 시절을 떠올렸다. 20대, 30대가 되어도 드라마가 마음에 남는 건 이 때문일 거다. 그리고 과거 그들에게 드라마 속 대사를 빌어 말하고 싶어졌다. ‘내 열여덟에 있어 줘서 고마웠다’고.

작가의 이전글 나쁜X, 그래 다 내 탓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