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척거리는 진흙탕길은 사라졌지만, 관계의 질척거림은 여전하다
“평생 '일로 만난 사이'의 깔끔함과 시스템에 의한 공정한 평가를 믿어왔다. 사적인 감정이 개입할 틈 없는 '담백한' 관계야말로 프로페셔널의 미덕이라 여겼고, 그 믿음으로 30년 조직생활을 했다.”
질척거리다. 사전적 의미는 ‘물기가 많아 매우 차지고 진 느낌이 자꾸 들다 ‘ 이다. 그런데 이를 인간관계에 대입하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달라붙는 모습을 의미한단다. 즉 상대방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끈질기게 부탁을 하거나, 이미 헤어진 연인 관계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매달리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 나 어릴 적에는 포장되지 않은 길이 많아서 질척거리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입구에서 버스를 타러 나오는 큰길까지 나오려면 작은 개천옆 길을 약 200여 미터 걸어갔어야 하는데 그 길은 내가 다닌 3년 내내 비포장 상태였다. 특히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이 찾아오면 얼었던 길이 녹아 무척 질척거렸던 기억이 난다. 200여 미터 길을 미끈하고 달라붙는 느낌의 질척거리는 길을 걷고 나면 신발 바닥에 진흙이 1센티미터 넘는 두께로 달라붙어 있곤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가 걷는 길 어디도 포장하지 않은 길이 없어 질척거림을 느끼며 걸어 다닐 일이 없다. 이렇다 보니 길을 걷는데, 땅의 질척거린다는 말을 쓸 경우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요즘 ‘질척거린다’는 말은 인간관계에서 쓰게 되는 일이 더 많아 보인다. 요즘 내가 그렇다. 질척거림이 나는 싫다. 나는 원래 인간관계가 깔끔하게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수가 낮은 방정식처럼.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있었고 앞으로도 더 있을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의 잠재력을 끌어내며 원만하게 업무를 수행하는데 나는 응원과 격려, 칭찬과 긍정적 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적과 비판은 짧게 명료하게 하고 칭찬과 평가는 상세하고 후하게 하는 편이다. 표정을 살피고 감정을 읽으려 노력하면서 마음에 닿는 조언과 직장에서 대하는 대부분의 동료보다 몇 년 더 일해본 사람으로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생팁을 줘 보려고 노력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료에 대해서 과거의 만남을 기억하여 이를 상기하면서 상대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호감을 사기도 한다. 그런데 일로 친해진 사람들은 호의를 애정으로 느끼는 경우가 있다. 특별한 관계를 인정받고 싶어 하고 사적으로 친분 관계를 가지려 한다. 일과 삶을 구분 짓지 못하고 사적으로 친한 사람이고 싶어 한다.
나는 그렇게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부담스럽다. 일로 만난 사이는 같이 일만 잘하면 그걸로 끝이다. 굳이 인간적으로 친밀함을 느끼고 사생활을 공유하는 관계를 만들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개인적 감정이나 정서적 교류는 일차원적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과 하는 걸로! 이차원적 관계를 가진 사람들과는 이차원적인 일로만 상대하면 충분하다.
더불어 나는 일은 시스템이 하는 것이라 믿는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조직과 예산, 인력,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법령과 규칙, 매뉴얼이 잘 갖춰져야 한다. 개개 구성원의 능력은 시스템 안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과 능력, 책무와 과제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주어진 직무범위와 자산을 활용해서 기대되는 과업을 얼마나 완벽하게 해내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개인 간의 인간적 친밀관계가 개입할 틈이 있을 필요가 없다. 더불어 자기가 맡은 일을 알아서 잘하기만 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주어진 정성적 정량적 지표에 따라 업무성과와 성취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
누군가 과거 얘기한 것처럼 사람은 자기의 명성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것이다. 굳이 누가 알아달라고 광고하고 다닐 필요가 없다. 시스템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업무 절차에 따라 과업을 수행하고 시스템이 마련해 놓은 통로를 활용해서 소통하면 되고, 업무 결과에 대한 평가도 시스템이 마련해 놓은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다. 비인간적이라 보이는가? 시스템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성을 공유하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공감과 치유는 공감과 치유를 제공하는 친지 또는 친구 등 금전, 권력 같은 이해에 얽히지 않은 관계와 집단에서 얻으면 된다. 재화 또는 용역을 제공하고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대가를 받는 관계에서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동종의 일을 하는 시스템의 구성원으로서 서로 간 안면 이상의 친밀감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시스템 내에서 일을 하는데, 주어진 체계와 방식에 따른 것 이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 과하게 행동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수행한 업무는 내가 적절한 방식으로 전파하고 내 메시지를 전달받은 다른 동료가 합당한 방식으로 수용하기만 하면 적재적소에 필요한 대로 전달이 된다고 믿는다. 전달의 방식은 때로는 대면보고가 될 것이고 아니면 음성통화나 메일, 문자메시지로 가능할 것이다. 때로는 서면 문서 전달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이 완료가 될 수 있다. 매일매일 수도 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과제를 앞에 두고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거대한 현대 조직 하에서 모든 사안을 직접 만나 설명하고 보고하고 토의하며 답을 찾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믿음에 따라서 일해 왔다. 그것이 내가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며 터득한 업무 수행 방식이었다. 이런 태도는 일상의 업무처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조직 안에서 내가 담당할 업무와 나의 향후 행로를 결정하게 될 인사에 대한 결정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인사 관련 지원을 해본 적은 있지만 청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없었던 것 같다. 많이 어렸던 나의 기억을 되살릴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 나는 누구에게는 항상 필요한 사람이었고 쓰임새가 있어 불려 다니는 일꾼이었다.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간관리자 역할을 할 때는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서 당초 원하던 자리에 지원도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갈 만한 자리를 찾을 수 있었고 당시 상사에게 발탁되어 일할 수 있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상사와 조직으로부터 인정받고 평가받았으며 후배들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같이 일하려는 동료들이 항상 있어 새로운 직원을 찾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몇 년 뒤 준고위 관리자가 될 때도 쉽지는 않았지만 실력과 인격 모두에서 평균 이상의 인정을 받아 결국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지원한 자리는 조직 내에서 인사담당과 인사권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외부 지원자와 경쟁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면접심사를 거쳐 좋은 성적을 거두어 얻어낸 것이었다. 그렇다. 시험을 봐서 따낸 자리였다! 면접심사 결과가 뛰어났고 내 능력을 조직에서 충분히 알고 평가하고 있는 만큼 원하는 대로 일을 맡아하게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시스템을 믿었고 일로 만난 관계에서 구성원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신뢰하는 가치관을 믿었다. 믿을만한 조직에 몸담고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믿음이 옳았다. 지금까지도 그 믿음은 전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믿음이 옳은지 되돌아봐야 할 경우가 있었다. 내가 믿었던 시스템이 나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의구심, 그리고 '울지 않는 아기'에게는 떡을 주지 않는 조직의 현실과 마주하게 될 때. '질척거림'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인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