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에서 쓰다- 어느 날 찾아온 자유에 대하여(2)

완전한 자유, 그 무거운 늪

by 백제웅


"가랑비가 내리는 줄도 모르고 햇볕에 널어둔 이불솜처럼, 내 마음은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완벽한 시스템이 갖춰진 넓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도 숨이 막혔다."


일정한 날짜, 일정한 시간, 일정한 장소에 매인 채 참 오래도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사무실로 향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같은 공간에서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시간을 보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정보들은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쏟아졌고 내 생각은 과거와 미래로 뻗어나갔지만, 정작 몸은 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 일부러 틈을 내어 움직이지 않으면 하루 걸음 수가 5천 보를 넘기지 못하는, 지극히 제한된 움직임 속에서 살았다.



그래도 딱히 답답하다고 여긴 적은 없었다. 일상은 바삐 돌아갔고 직장 안에서 만나는 사람도 많았다. 전화로, 면담으로, 글로 수많은 소통을 거듭했기에 내 세계는 충분히 넓고 열려 있다고 믿었다. 때로는 출장을 다니고 업무차 일과 시간에 밖을 돌아다니기도 했으니, 내 의지에 반해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낸 것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었기에 내 영혼은 늘 자유롭고 열려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겨울이 시작되면서 조금은 다른 날들이 찾아왔다. 내게 주어졌던 '과업'이라는 것이 사라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도 딱히 해야 할 일이 떠오르지 않는 날들의 시작이었다. 덕분에 일 때문에 쌓이던 스트레스도, 매 순간 쏟아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압박감도, 결과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할 무거운 책임도 함께 사라졌다. 대신, 매일 주어지는 텅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에 대한 새로운 부담이 생겨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린다 해도 질책할 사람도, 그럴 이유도 없는 상황. 완전한 자유였다.




막상 닥치고 보니 그 자유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무게가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가랑비가 내리는 줄도 모르고 햇볕에 널어둔 이불솜처럼, 내 마음은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쓸모를 다한 것만 같은 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란 쉽지 않았다.


완벽한 전산 시스템은 물론 TV와 소파 세트까지 갖춰진 제법 넓은 개인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도 숨이 막혔다. 눈앞의 하얀 벽이 점점 나를 향해 좁혀오는 듯한 압박감이 들 무렵, 12월도 끝나가는데 겨울이라 부르기엔 애매하게 덜 춥고 흐린, 눈보다는 비가 내릴 것 같은 어느 날.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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