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나를 강하게 만들지
외부미팅 끝나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나눈 대화인데, 정리해두고 싶어서 남기는 글.
인상적이었던 TV쇼 이야기가 나왔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먼 나라에 있어도 클릭 몇 번이면 얼굴을 볼 수 있는 세상, 심지어 세상을 떠난 사람까지도 AI를 통해 대화를 할 수 있는 세상. 이런 발전된 세상에서는 점점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움.
생각해보면 나도 '아, 이게 그립다는 감정이구나'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껴본 건 딱 한번이었다. 그 감정을 느꼈을 때, 낯설었다. 괴로우면서도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땐 당황스러워서 그리움이 몰아치는 그 장소에서 급히 떠났던 기억이 있다.
오늘 아침에 읽었던 책의 문구 중 '슬픔, 기쁨, 질투, 분노, 사랑, 고마움, 미안함' 이런 모든 감정은 사람이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마음이기 때문에 그 어떤것도 좋음과 싫음으로 분리하지 말고 받아드려야한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그래, 나도 그 때 도망치치 말고 내 마음을 꼼꼼히 살펴주었으면 어땠을까.
이야기는 이어졌다.
기술의 발달이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빼앗아버린 것 처럼, 풍요의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절박함'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절박함.
나는 언제, 어떤 것에 마지막으로 간절했던가. '사는 게 다그렇지 뭐'라는 건조한 평화 이면에는 내가 달려나가야할 목표를 세우지 않고 그저 중간 정도의 에너지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내 모습이 있다. 사실 절박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사용되는 에너지는 생각만해도 피곤하다.
그러고 보니 늘상 '힘없다', '피곤하다', '에너지가 없다'라고 하는데 과연 일이 많아서 그런걸까?
사람들은 휴대폰만 켜면 손쉽게 도파민을 충족할 수 있기 때문에, 몇 번만 클릭하면 고민하지 않아도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굳이 무엇인가에 도전하거나 스스로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일이 힘들어서 에너지가 없는 게 아니라, 애써 절박하게 에너지를 내야만 하는 가치있는 목표가 없는 거다. 목표를 찾고 느껴야할 시간을 뺏기고 있다.
과도한 풍요와 어느정도 거리를 둘 줄 아는 지혜.
직선도로가 있어도 가끔은 돌아갈 줄 아는 여유.
이런 것들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성장하게 하는 구나라는 걸 느꼈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