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기억을 팔 수 있다면, 내가 아주 좋아하는 어떤 사람은 가난을 팔아서 작가가 되었다.
나는 그 등가 교환이 매우 근사하다고 생각하고, 그의 삶이 매우 온전하다고 긍정한다.
돌아와서 기억을 팔아서 부자는 될 수 없겠지만,
만약에 정말로 팔 수 있다면 나는 다른 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일본 단편 소설 「야시」에는 젊음을 팔고 청춘도 팔고 모든 걸 다 팔아치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보름달이 뜬 밤, 국경이 인접한 야시장에 우연히 출입하게 된 '유지'가
거래를 해야 시장에서 나올 수 있는 규칙으로 인해
처음에는 동생을 팔고, 나중에는 추억을 팔고
결국에는 젊음까지 팔게 되는 시장논리(?)가 우화 형식으로 전개된다.
20살 여름에 「야시」를 읽은 이후로 다양한 종류의 나쁘고 슬픈 일을 겪을 때마다
한 여름밤 보름달을 따라서 한참을 걸어가는 ‘유지’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어떤 날은 나도 편한 옷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서 달을 보면서 천천히 오래오래 걸었다.
당연히 ‘야시장’ 같은 세계로 통하는 행운이 내게 허락될 리 없지만,
달을 보면서 오래오래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깨달았고
돌아와서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꽤 생각보다 빨리 잠들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터득한 인생의 진리 중 하나이다. (슬픔은 수용성! 밑줄...)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의 인생의 지분율을 도식화해보면 후회가 70% 이상, 즐거운 기억이 5~3%쯤?
그리고 나머지 2-30%는 너무 깊은 무의식에 침잠해 있어서,
특정한 계기나 사건으로 버튼이 눌리기 전에는 그 기억을 떠올릴 수도, 판단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기록을 시작했다.
나의 기억을 팔 수 있다면, 꺼내서 전시하고 펼쳐놓을 수 있다면
(물론 대다수가 슬픈 기억이거나, 근처도 가기 싫은 추억일 테지만)
그러면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천천히 달을 보면서 산책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