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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군 Nov 10. 2024

피아노의 나라

(부제 : 볼도바를 아시나요?)

  볼도바란 나라를 들어보셨나요? 러시아 아래 작게 위치해 세계 지도를 펴고, 크게 확대해서 한참을 찾아야 볼 수 있는 나라. 91년 카자흐스탄이 구소련에서 나올 때 같이 독립해 지금까지 강대국 러시아 아래에서 조용히 버티고 있는 나라.


  이 볼도바란 나라를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었는데, 여름휴가도 못 가고 업무에 치여 폭발하기 직전, 멀리 떠나고 싶은 생각에 동료가 추천해 준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항공권을 끊었죠. 루마니아에서 우크라이나로 이동하는 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반발하고 루마니아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그 아래 볼도바란 나라에 임시 착륙하게 됐습니다. 비행기 위에서 본 볼도바의 첫 느낌은 뭐라고 할까, 흠...... 동유럽과 러시아 건물 풍경과 비슷했는데 특이한 점은 건물마다 이상한 표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하얀색과 검은색 바. (마치 우리나라에 십자가가 많이 있듯이) 자세히 보니 그것은 피아노 건반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비행기가 임시 착륙해 정신이 없던 나는 그런 궁금증을 잠시 묻어두고 다음 일정을 고민하다 허기가 져 일단 공항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대충 음식을 시키려고 하는데, 메뉴에도 건반 표시가 있더군요. 그리고 식당 안에는 그랜드 피아노와 함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이 작은 식당에 그랜드 피아노라니...... 궁금해서 식사하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건반 표시에 관해 물어보자, 주인은 씨와 쓰가 강조된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 비슷한 말로 무언가를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 끄덕인 채 착한 여행객의 미소를 보이며 부랴부랴 식당을 나왔죠.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휴대폰으로 이 사태를 검색하던 중 주변에서 들리는 한국말. (정확히 말하면 조선말 같기도 했는데) 유니폼을 입은 동양인이 보이자, 그녀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현재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조처를  해주겠다고 하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조금 안심이 되자 그녀에게 건반에 관해 물어봤습니다. 그녀는 씩 웃으면서 볼도바에 대해 잠시 설명해 줬습니다.


  피아노는 이 나라의 상징인데 아기가 태어나면 태어나자마자 피아노 건반을 치며 놀게 한다고 합니다.

피아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도 사실 러시아인이 아니고 볼도바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누군지 몰라서, 나라 잃은 표정으로 그를 보자) 그는 차이콥스키도 독일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아버지의 고향은 볼도바라고 했고, 차이콥스키가 나오자 나는 그제야 아 하는 단말마를 내뱉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고르 표도로비치 스트라스키라는 세계적인 작곡가가 세운 피아노 학교가 있는데,

6살 때부터 입학하고 우리나라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조성진도 이 학교에 입학하려고 했지만, 떨어졌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전 국민이 피아노를 치며, 초등학생 피아노 실력이 웬만한 콩쿠르 입상자와 맞먹는 다는군요. 그럼 왜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 많은데 세계 콩쿠르에 입상한 사람이 없냐고 묻자, 그건 바로 러시아와 관련이 있는데, 91년 독립을 하면서 구소련과의 협약으로 볼도바 국민은 나라 밖에서 피아노를 못 치게 하는 조항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러시아가 세계에서 피아노 강대국으로 서기 위해 볼도바 국민이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죠. (러시아의 피아노 말살 정책인데) 이 어이없는 조항은 나름 효과를 거둬서 세계에서 볼도바 국민이 피아노를 잘 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하지만 볼도바 국민은 주변 국가로 나가 몰래 피아노 과외를 하며 외화를 벌어 온다고 했고,

러시아도 이 일은 알지만 그건 그냥 눈감아 준다고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 소식을 다 아는 오늘날. 이런 황당한 사실이 너무 신기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편이 준비되자 더 궁금한 것을 묻지 못하고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죠. 급하게 감사 인사와 함께 한국에 오면 연락하겠다고 이메일 주소로 물었죠. 공항을 나오며 마지막으로 그녀와 악수했는데 그녀의 긴 손가락과 손바닥의 부드러움에 깜짝 놀랐습니다. 공항 직원의 손이 이 정도면 전 국민이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결코, 허풍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사히 귀국해 주변 사람에게 볼도바를 이야기하면 그런 나라가 있냐며 신기해하며, 실제 검색을 하더군요. 하지만 그뿐 볼도바에 대해 더 궁금해하진 않더군요. 이미 세상에 말도 안 되고, 믿기지 않는 사건들이 매일매일 일어나기에 전 국민이 피아노를 치는 볼도바 이야기는 그냥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로 스쳐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나 또한 업무에 치여 볼도바에 대한 이야기를 잊고 살았는데, 늘 마음 한구석에는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 글을 마무리하면, 손이 너무 부드러웠던 그녀에게 감사 인사 메일을 보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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