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동료에게 말 걸기-박동수>

by 배성민

2024년 12월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터지고 노조 조합원들과 정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보통 민주노총 하면 급진적인 사람들의 연합체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극우도 있고, 보수정당 지지자도 있고 진보정당 지지자 혹은 극좌도 존재한다. 당연히 윤석열 계엄에 대해서도 의견이 제각각이었다.


일부 조합원들은 민주당이 의회를 독점하고 마음대로 행동해서 갈등이 불거졌다는 말을 많이 했다. 나는 그래도 계엄으로 극복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12.3 계엄 당시의 풍경은 책에서만 본 아찔한 순간이 현실에 펼쳐질 뻔했기 때문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노동운동을 하고 정권에 맞서 싸우는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면 계엄에 무조건 반대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싶었다.


대화는 잘되지 않았다. 적당히 서로 의견을 듣고 토론은 마무리했다. 애초 계엄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조합원들을 윤석열 탄핵 집회에 나오게 하려는 나의 계획이 숲으로 돌아갔다.


당시 나의 대화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박동수 작가의 <동료에게 말 걸기>를 읽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비판할 때 반자동적으로 나오는 '그들도 우리처럼 해야 한다'라는 계몽의 문장을 멈추고, '우리도 그들처럼 하고 있다.'라는 외교적 문장으로 바꿔서 다시 말해보자.-158p"


정치 이야기를 하고 조합원들을 설득할 때 주로 내 기준을 토대로 조합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소통했다. 하지만 책에서 이 문장을 만나고 상대의 기준에 따라 이야기하는 방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알게 되었다. 민주당의 의회 독재라는 프레임으로 계엄 사태를 보는 사람에게 비상계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는 것은 설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문장을 보고 당시 조합원들과 대화에서 성공한 사실이 떠올랐다. 성공할 때는 상대의 기준에 따라 이야기의 방향을 정했을 때였다. 민주당 독재를 주장하는 조합원이 있을 때 일단 나도 민주당 지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같이 신나게 욕을 했다. 최저임금 산입, 비정규직 보호법 등 민주당 정권으로 인해 손해 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하니 조합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니 조합원들이 당연히 민주당을 지지할 줄 알았던 노조 간부가 안 그런 것을 보고 마음을 열리 시작했다. 마음이 조금 열렸을 때를 틈타서 계엄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 흘려보았다. 차근차근 계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제야 계엄 자체는 잘못되었다고 동의를 했다. 처음에 귀를 막고 윤석열 탄핵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은 사람들도 조금씩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그렇다고 계엄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한 조합원들이 또 윤석열 탄핵 집회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꼭 모든 조합원들이 집회에 나와야 윤석열이 탄핵되고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부분에 대한 책에 또 훌륭한 문장을 발견했다.


"목숨을 건 투쟁은 도망자나 전향자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결기 한 자들에 의해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도망한 자나 전향한 자로 간주되는 겁쟁이들로부터 탄생하는 것은 아닐까. 결기라는 힘이 미래를 여는 유토피아의 순간을 만들어 냈다 해도, 그 미래는 겁쟁이의 신체를 매개로 해서 펼쳐져 나가야 한다. - 16p 도미야마 이치로(일본 연구자)"


세상을 바꾸는 일에 적극적으로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승리 후에는 결국 집회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을과 바꾼 세상을 어떻게 만들지가 중요하다. 윤석열 탄핵 집회도 마찬가지이다. 수백만 명이 응원봉을 들고 탄핵을 쟁취했지만, 탄핵 후 한국 사회는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겁쟁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책을 읽고 자신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지만 정치, 사회적 투쟁에 잘 나오지 않는 겁쟁이 조합원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이 집회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태도를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노조 간부로서 조합원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외교적인 관계를 통해 생각을 하나씩 맞춰가는 역할이 필요하다.


노조는 앞서 달리는 활동가들의 조직이 아닌 뒤에 멈칫하는 겁쟁이들이 펼쳐나가는 조직이다. 극우, 보수라고 프레임을 씌우는 대신 어떻게 대화하고 협상할지 고민하는 노조 활동가가 필요하다.


PS. 저자가 책 편집자로 일을 하다 보니 전자북 폰트가 너무나 가독성이 좋았다. 또한 늘 박동수 저자의 책은 철학 책을 읽고 싶게 한다. 독서 편식을 벗어나야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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