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동화, 미술관 이야기 3-
미술관 숨바꼭질
-단편동화, 미술관 이야기 3-
그날, 미술관에서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갔던 걸까요?
“누리야, 우리 엄마 혹시 계모 아닐까?”
두 시간째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중얼거리며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엄마를 보고 아람이가 말했어요.
“어쩌면 외계인일지도 몰라.”
나도 아람이랑 비슷한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우리 엄마는 친구 엄마들이랑 달라도 너무 달라요.
딴 엄마들은 학교 끝나고 배고플 때쯤엔 지글지글 볶고 지져서 맛있는 간식을 해 준대요.
또 친절하고 좋은 선생님들이 있는 학원 찾아내서 공부시키고, 시험 때면 찰싹 달라붙어 앉아서 어떤 게 중요한 건지, 뭘 외워야 하는지 다 가르쳐 준대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 3학년인데 무슨 시험이람? 그냥 수업 중에 쪽지 시험이나 보면 될 걸.”
하며 투덜거려요.
덕분에 나는 시험 전날이라도 놀이터도 가고, 만들기 놀이도 하죠.
물론 잘난 우리 누나 아람이는 ‘읽기’ ‘말하기 듣기’ ‘수학’ 책들을 꺼내놓고 들여다보지만...
그것뿐 아니에요. 우리 엄만 학교 준비물도 우리끼리 알아서 하래요. 물론 난 그래도 걱정은 안 해요. 수민이가 알아서 내 것까지 챙기니까.
“배고프니? 뭐 먹을래?”
난 피자나 샌드위치 같은 걸 먹고 싶지만 우리 엄마한텐 그런 걸 바랄 수 없어요.
그냥 손으로 쉽게 껍질을 벗겨 먹을 수 있는 귤, 껍질 채 먹는 사과, 토마토 그런 것만 주거든요. 가끔 찐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를 먹을 때도 있지만 그건 아마도 요리하기 쉬워서 해주는 거 같아요.
“난 감자.”
“난 옥수수.”
“아이, 뭐야? 통일해봐. 누가 이란성 아니랄까 봐 그것도 못 맞춰?”
아람이랑 나는 엄마가 주사 많이 맞고 시험관 시술인가 뭐 그런 걸해서 우리를 낳았대요.
엄마랑 아빠는 한꺼번에 아들, 딸이 생겨 좋았다고는 하면서도 만날
“아이고, 우리 아롱이다롱이!”
한답니다.
나랑 누나가 뭐든 달라서 무지 힘든 것처럼 말해요.
아무리 쌍둥이라고 해도 남자, 여자. 이렇게 정반대로 태어났는데 어떻게 날마다 똑같을 수 있겠어요?
“간식 먹고 도서관 가자.”
엄마는 또 도서관에서 찾아내야 하는 자료가 있나 봐요.
우리가 사는 마을은 아담한 산 옆에 있어서 걸어 다니기도 좋고, 가까운 곳에 놀이터랑 공연장도 있고, 아람이가 좋아하는 도서관,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도 있어요. 나는 미술관 어린이 체험관에서 하는 여러 가지 놀이가 늘 재미있어요.
“좋아.”
엄마랑 아람이는 도서관으로 먼저 갈 게 분명해요.
“난 도서관 안 가고 미술관에서 놀래. 알았지?”
내가 심통이라도 난 것처럼 말했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래? 그건 네 맘대로 해.”
삶은 감자 껍질을 벗기며 눈썹을 잠깐 치켜올리더니 얼른 말했어요.
‘치! 그래도 한 번쯤은 같이 가자고 하면 어때서? 나만 외돌토리로 만들고......’
속으로만 생각했어요.
엄마랑 아람이는 도서관 쪽으로 올라가고 나는 미술관 쪽으로 갔어요.
미술관 입구에 ‘오늘로 걸어 나온 겸재’라는 글이 쓰인 큰 간판이 보였어요.
‘겸재’라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또 이번 전시 중엔 어떤 놀이나 만들기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 미술관은 자주 와서 직원들과도 거의 다 아는 사이가 됐으니까 씩씩하게 들어갔죠.
미술관 안내대 오른쪽은 전시장이고, 왼쪽은 어린이 체험관이 있어요.
어린이 체험관 쪽엔 ‘어린이를 위한 산수화 체험전 -풍경 속으로 풍덩-’이란 큰 글자가 보였어요.
‘풍경 속으로 풍덩? 신나게 놀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는데,
“어, 누리 오는구나. 아람이는?”
어린이 체험관 쪽에서 어떤 아이들이 한지에 먹물로 그림 그리는 걸 보고 있던 미술관 선생님이 말했어요.
“오늘은 저 먼저 왔어요. 아람이는 엄마랑 도서관에 가서 한참 있다가 온댔어요.”
“그래? 그럼 전시 관람부터 하고 나중에 아람이랑 가방 만들기 하면 되겠구나.”
하며 한지에 먹물로 그린 산 그림을 찢어서 붙인 종이 가방을 흔들어 보였어요.
개학 후, 아이들이 내가 만든 가방을 보면 칭찬해 줄 것 같은 생각부터 들어서 기분까지 으쓱 해졌어요.
전시장 안에서 설명해주는 선생님이 ‘겸재 정선은 조선시대 화가인데 진짜 우리나라 풍경화를 새로운 기법으로 그린 분’이라고 얘기해 주셨어요.
그전 화가들은 중국의 풍경화를 흉내 내서 그림을 그렸대요.
겸재 정선은 금강산을 굉장히 여러 번 직접 갔는데 그 시대에 멀리 있는 높은 산에 가서 몇 달, 몇 년씩 여행하는 건 오늘날 세계여행만큼이나 어려운 거라네요.
전시장에 겸재 정선이 직접 그린 그림은 딱 네 개뿐이었어요.
설명해주는 선생님은 종이돈 1,000원을 보여주며 그 그림도 겸재가 그린 거라고 알려 주셨어요.
전시된 다른 그림들은 모두 겸재와 같은 마음으로 풍경화를 그린 작품이래요.
평평한 그림 말고 바닥이나 천장에 걸려 허공으로 내려오는 설치 작품도 있었어요.
서울 인사동에서 건물 끝과 하늘 쪽을 보고 찍은 사진들로 하늘 지도를 만든 것도 있고, 라면을 잘게 부숴서 풍경을 만든 작품도 있었어요. 그 작품은 계단을 올라가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건데 재미있기도 했지만 맛있는 라면 냄새 때문에 침이 꼴깍 넘어가기도 했어요.
그런데 맨 마지막 작품은 정말로 근사했어요.
제목은 ‘겹-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라고 돼 있었죠.
먹으로 커다란 산봉우리와 소나무들을 한지에 그려서 비닐 위에 붙여 놓은 거 같았어요.
투명한 비닐은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길게 내려져 있는데, 여러 장이 조금씩 거리를 두고 겹쳐 있어요.
그래서 맨 뒤에 있는 산봉우리와 소나무는 뿌연 안갯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설명해주는 선생님이 산속을 산책하듯이 그 작품 안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했어요.
다른 관람객들은
“멋있다!”
하면서 조금 안으로 들어갔다가 금방 나왔어요.
난 작품 안으로 천천히 걸어서 들어갔죠.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식구들이랑 부산 태종대란 곳에 갔었어요.
그때 나는 잠이 덜 깨서 짜증이 났어요.
우리 엄마랑 아빠는 내 투정을 들어주는 척도 안 하고 앞으로 계속 걸어가고, 아람이는 엄마 아빠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을 떨며 쫓아갔고요.
어쩔 수 없이 나도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겨우 언덕길을 오르는데 어느 순간 앞에는 안개만 자욱하고 우리 식구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거였어요.
“엄마! 어디 있어? 아빠! 아람아, 누나!”
몇 번 소리 지르는 동안 고아가 되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었어요.
“왜 그래? 빨리 안 오고.”
다행히 안갯속에서 아람이 얼굴이 나타났어요.
꼭 그때, 태종대에서 느낌이랑 비슷했어요. 조금 겁도 나고 신비하기도 하고.
한 겹, 두 겹 산 그림들을 헤치며 그 속을 걸어가는데 설명해주는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어요.
“이상으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좀 더 작품들을 살펴보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짝짝짝 짝짝...’ 사람들이 치는 박수 소리가 들렸던 거까지는 분명해요.
그런데 다섯 번째 그림 소나무 밑둥치에 구멍이 있는 거예요.
그 구멍 속엔 굴렁쇠와 굴렁대가 보였고요.
앞으로 바짝 다가가 보니 제법 구멍이 커서 내 몸도 들어갈 만했어요. 그래서 머리부터 구멍 안으로 집어넣으며 안으로 들어갔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얼른 굴렁쇠를 집어 들고 주위를 살펴봤어요.
처음 보는 신기한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어요.
꼭 동화나라 같았어요.
갈색 골판지로 만든 나무들, 초록 색종이로 된 풀밭과 알록달록한 종이꽃들, 여러 가지 종이로 만든 집들도 보였죠.
굴렁쇠를 굴렁대로 굴리려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두 손으로 가만히 굴렁쇠를 세우고 살짝 밀어 봤어요.
그랬더니 굴렁쇠는 꼬불꼬불 길을 꼬불꼬불 굴러서 노란 집 안으로 들어 가버렸어요.
나는 ‘야호-’ 신나게 소리 지르며 달려서 따라 들어갔어요.
노란 집 안에는 노란 종이들이 많이 흩어져 있고 이상한 모양의 그림자들이 노란 종이로 마술을 부리듯 해바라기도 만들고 참외도 만들고 우산도 만들었어요.
“우와~ 신기한 걸. 나도 해보자.”
내가 소리치며 종이를 한 장 잡으려고 하자 그림자들이
“외계인이다, 외계인!”
하고 소리치고, 종이들은 잡히지 않으려는 것처럼 공중으로 떠 다녔어요.
“치사해!”
난 삐져서 굴렁쇠를 다시 세우고 노란 집 밖을 향해 살짝 밀었죠.
이번엔 굴렁쇠가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울퉁불퉁 굴러서 골판지 집으로 들어갔어요.
골판지 집에 들어가니 그곳에서도 그림자들이 골판지로 여러 가지를 만들어 내고 있었어요.
선물 상자도 만들고, 크고 작은 나무들도 만들고.
처음엔 구경만 하다가 손이 근질거려서 골판지 한 장을 잡으려다가 노란 집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한 마디 했죠.
“난 외계인이야. 그래서 좀 색다른 걸 만들 수도 있어.”
그랬더니 그림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얌전해지는 거예요.
나는 신이 나서 여러 색 골판지들을 가지고 집과 나무들, 바위 같은 것도 만들어서 작은 마을을 꾸몄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말을 그때 처음 제대로 알았다니까요.
붉은빛이 도는 갈색 골판지로 소나무도 만들었어요. 그 소나무 밑둥치에 굴렁대로 구멍을 만들고 집게손가락으로 막 쑤셔보려는 순간, 어디선가 ‘꺅~’ 소리 같은 게 들리더니,
“야, 이 누리! 그거 만지면 안 돼!”
하는 아람이 목소리가 들렸어요.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어느새 아람이가 옆에 와 있는 거예요.
“어? 어떻게 들어왔어?”
“뭐야? 입장료 내고 당당하게 들어왔지. 근데 너 뭐야? 작품에 손대면 안 되는 거 몰라? 그리고 나랑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거야?”
아람이가 도대체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건지 난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난 분명히 소나무 밑둥치 구멍 속에 들어갔던 거 같은데 다섯 번째 소나무 그림 옆에 서 있는 거예요.
“어, 이상하다. 여기 이 나무 그림에 구멍이 있었는데.......”
“어이구~, 웃기지 마. 내가 계속 너를 부르는데도 도망 다녔잖아. 너 한 시간이 넘게 여기 있었다며? 엄마가 체험관에서 기다리고 있어. 빨리 와.”
내가 꿈을 꾼 걸 까요? 그 구멍은 어디로 갔을까요?
난 정말 알 수 없었어요. 정말 나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어휴~ 근데 생각해 보니 너무 아까워요. 거기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별의별 종이들도 많았는데, 만들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진현미 작가의 <겹-0103 지워지지 않는 흔적/ 320x100x300 cm/가변설치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이 동화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