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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가 달라진 과학자들의 발명품 6가지

저는 극심하게 상심하고 있습니다.나는 소총이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다면사람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적에게 사용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미하일 칼라시니 호프 AK 47 소총의 개발자






과학자의 발명품은 인류의 발전과 번영 그리고 안전을 위해 제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발명품의 결과는 생각과는 반대로 처참했죠. 더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거나 다치게 하고 때로는 영원히 기억될 아픈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과학자들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후회를 하거나, 반대편에 서서 막으려고 애를 쓰지 않았을까요?



이는, 과학자의 잘못일까요? 아니면 발명품의 용도를 무시한 채 사용한 사람의 잘못일까요?

물론, 과학자의 의도가 정말 선한 것이었는지도 알 수는 없습니다만, 흥미로운 과학자의 발명품 6가지에 대해 알아 봅니다.















다이너 마이트의 원래 용도는 건설용 폭발물.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은 17살에 5개 국어를 할 줄 아는 특별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을 딴 노벨상은 전 재산을 인류를 위해 공헌을 한 사람에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그의 뜻에 따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그의 발명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다이너 마이트였습니다. 그의 동생의 목숨을 앗아간 니트로 글리세린을 더 안전하고 안정적인 것으로 개량한 건설용 폭발물로 1867년에 특허 출원이 되었죠. 노벨이 원한건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군대는 바로 다이너마이트를 병기로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전쟁에서 활용되었으며 수 많은 생명이 다이너마이트에 의해 빼앗겼죠. 당시 프랑스 신문은 노벨의 사망 오보를 게재한적이 있습니다. 이때 제목이 죽음의 상인이었다고 합니다. 그 기사는 마치 축하를 하는 듯한 내용이었다고 하는데 이 것을 알게된 노벨은 사후를 위해 노벨상을 설립하게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엽제는 식물의 성장을 위해 제작이 되었으나..

아서 갤스턴은 미국의 식물 학자로 식물의 성장을 돕는 방법 연구에 몸을 바친 인물입니다. 그가 만든 오렌지 물과 토리요도 안식향산은 전쟁의 고엽제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수 많은 기형 어린이와 성인의 건강 피해까지 일으켰죠. 가루스톤은 1965년 부터 1971년까지 사용에 반대하는 로비 활동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AK-47 소총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건만 실상은..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효과적인 전투병기,

저렴하고 단순하며 닭1마리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저비용 경량, 가혹한 기후속에서도 운용 가능한 총


미하일 칼라 시니 코프가 원하는 것은 조국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사용되던 소총의 비효율성과 위험성에 대해 듣고 성능을 향상 시킨 소총을 설계 하게 됩니다. 그거시 바로 통칭"7.62mm 통칭 AK-47입니다. 2009년1억정이 생산 되었으며 절반은 밀조되었습니다.


그는 충격으로 교회에 헌신하게 됩니다만 6개월 후 사망합니다.







무기 수준의 페퍼 스프레이는 우편 집배원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

후추 스프레이는 1960년미국의 우편 집배원을 개의 습격으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이것이 효과적으로 판명이 되면서 80년대에FBI가 무기 수준의 위력을 가진 제품으로 개발 하여지금의 물건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따끔거림을 일으키는 약한 화합물에서 추출한 비살상용 약물이었죠.

스코빌 척도 530만에 이르는 자연계에서 가장 맵다는고추의 5배나 강력합니다. 실명 호흡, 곤란 기침을 지속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제품이 2011년 평화 집회에 해산용으로 사용하게 되므로서 제작자인 로흐만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 발명품의 악의 적인 용도를 피하게 할 수 있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네요.









비행기가 전쟁에 사용될거라고 누가 생각을 했을까?

라이트 형제의 인류 최초의 유인 비행기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평생을 걸고 비행기의 평화적 이용을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죠. 1909년 비행기를 미군에 매각했을 때 전쟁에 사용되었거든요. 비행기가 전쟁을 휘젓고 다닌다는 것 과연, 전쟁을 하고 싶은 나라가 존재한다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요?


5년후 비행기는 파괴의 힘을 알리고 평화를 유지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우리는 천박한 세상에 긴 평화를 가져다 주는 발명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 직전에 신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원자폭탄은 전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만들었지만..

아인슈타인이 원자 폭탄을 개발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은 유명합니다. 하지만 원폭의 개발에 종사한 것은 그 혼자가 아니죠. 원폭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 이야깁니다. 타고난 물리학자로 핵의 움직임을 연구하고 동시에 힌두교 정신에 매료된 그는 천체 물리학, 핵 물리학, 양자 역학등 이론 물리학을 추진하려는 미국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의 발발 이후로 전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원폭 을 개발한 것입니다.


원자 폭타의 위력을 목격한 오펜하이머는 원폭의 국제 경영을 호소하게 되었고 원자력 위원회의 고문으로 취임합니다. 원폭 개발에 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만 결국 공직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의외의 제품은 후추 스프레이 였습니다. 용도가 집배원을 위험한 개로 부터 위험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






과학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반드시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모든 발견은 선의로 시작되죠. 그러나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 같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처럼선의의 결과 뒤에 숨겨진 끔찍한 결과로 많은 이들이 희생되는건 안타깝네요. 이것을 과연 과학의 탓으로 돌릴 것인가, 사용자의 탓으로 돌릴 것인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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