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거스트 러쉬>는 못된 할아버지 때문에 엄마아빠와 떨어져 자라게 된 음악 천재 소년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어거스트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기타를 자유자재로 치고, 코드 몇 개 알려줬더니 피아노를 연주하고, 그길로 음대에서 음악 수업을 듣다가 오케스트라 규모로 연주하는 음악까지 만들어 낸다. 하지만 위저드가 나타나 어거스트를 협박해 데려가고 어거스트를 길거리 음악가로 키워 돈을 벌려고 한다. 어거스트가 오케스트라 공연을 위해 도망을 치고, 어거스트를 잃은 위저드는 지하철 역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쓸쓸히 하모니카를 꺼내 분다. 언제 어디서나 주머니에서 쏙 꺼내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 하모니카를 배워보았다.
블루스 하모니카 수업을 한다는 글을 보고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블루스(모름), 하모니카(모름), 5주 강의(짧아서 좋음), 선생님(만나보고 싶음). 딱히 다른 수업 중에 해보고 싶은 것도 없어서 이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다. 시작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하모니카가 엄청 재밌고 열심히 하고 싶고 그렇진 않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다. 그 와중에 하모니카는 적당한 걸 살 생각이 없고, 개중에 좋은 걸 싸게 사려다가 나 혼자 A key를 사서 수업에 들어갔다. 그런 말이 없었지만 모두 C key로 준비해오셨다. 나 혼자 두 키 낮게 불러야 했지만 괜찮았다. 이 수업은 하모니카를 많이 불지 않는다. 당연히 악기 연습은 각자 하는 것이다. 수업 시간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하는 걸로 악기를 배우려고 하는 건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대부분의 학습이 그렇다. 악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는 게으르다.
5주 만에 하모니카를 마스터하리라는 생각은 정말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 하모니카로 1곡 정도 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도 않다. 선생님의 수업 방향이 그랬다. 일단 하모니카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하모니카 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하모니카의 각 구멍에서 어떤 음을 낼 수 있는지를 배운다. 그렇게 하고 나머지는 음악 이론과 용어에 대한 내용이 수업의 대부분이었다. 하모니카를 불어보라고 아예 안 시키진 않지만, 못한다고 뭐라고 하지도 않으셨다. 못하는 게 당연하니까. 다이아토닉 하모니카를 하루 아침에 불어재낀다면, 스스로 어거스트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음대 입시를 준비하자.) 한 구멍에서 온전히 음을 내기도 힘든데, 숨쉬는 압력을 조절하여 반음씩 낮은 소리를 내야 한다. 반음도 그냥 반음이 나는 게 아니라 내가 조절한 압력만큼 낮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잘 듣고 반음만큼만 압력을 조절해야 한다. 그러니까 들을 줄도 알아야 한다.
이 수업이 좋은 건, 이론 위주의 수업이라는 점과 그렇게 수업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선생님의 방향성이었다. 선생님이 절대 하고 싶어하지 않는 방식은 4⬆️5⬇️ 이렇게 된 악보로 가르치는 것이다. 4홀 불고, 5홀 마시고, 리듬은 노래 들으면 아는 거니까 알아서 맞추고. 이렇게 하면 바보가 될 거라고 선생님은 재차 강조하셨다. 당장 한두 곡 저런 식으로 배워봐야 그게 끝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런 것(이론)들을 알고 가면 좋다, 그래야 나중에 실력이 빠르게 늘 수 있다, 같은 말들을 하셨다. 절반 정도는 아는 내용이긴 했지만 단순히 알고만 있는 것이었고, 왜 이런 걸 알아야 하는지,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를 알려주셨다.
지금까지 음악 입문 수업을 들으면서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봤는데, 딱 잘라서 구분하긴 애매하지만 이론파와 재능파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재능파는 대략 이렇다. "저는 그냥 하다보니까 됐는데, 왕도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일단 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이분들이 커리큘럼도 없이 막 가르쳤던 건 아니다.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나는 이론적인 부분을 가르쳐 주는 분들이 조금 더 좋았다. 나는 그냥 해서 안 되니까. 그냥 하라고 하면 괴로워하다가 응급실에 실려갈테니까. 당장 이론이라도 조금 더 배우면 그래도 하나라도 더 배우는 느낌이 나서 좋다. 그런 의미에서 하모니카 수업은 처음 예상과 달리 매우 좋았다. 잘은 모르지만, 정말 하모니카를 배우기 위해 오신 분들도 좋아하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
갑작스레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마지막 수업을 아직 하지 못했다. 마지막 시간엔 '블루스'에 대해 배울 예정이었다. 그리고 <블루스, 더 블루스> 앨범을 들고 가 선생님께 사인을 받으려고 했다. 아직 하모니카만 배우고 블루스는 못 배웠다. 수업 제목만 보면 절반 밖에 못 배운 것이다. 부디 수업이 취소되지 않고 열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