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야 해. 아주 먼 길을 가야 하는 날이니까. 그런데 벌써 새벽 한 시.
오늘도 어제도 그저께도 잠 못 드는 요상한 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져 뜬 눈으로 지새운 밤이 열 손가락을 넘어가.
한 줄 두 줄 세 줄
늘어가는 실핏줄이 내 눈을 빨갛게 물들이듯
내가 가져야 할 밤의 시간이 끝없이 늘어나.
언제부터였지? 내 몸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던 게.
아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던 게.
혹시 그날부터였나?
한 겨울밤인데도 달빛이 찬란해 온 하늘이 군청색이었어. 전철에서 내려 집까지 가는 길에 가로등이 없는 골목이 있거든. 항상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유독 울퉁불퉁한 그 길을 뒤뚱뒤뚱 걸었어.
근데 말이야, 그날따라 하늘이 너무 밝은 거야.
달빛이 퍼진 그 군청색 하늘이.
우와 정말 신기하다-
자꾸만 이 말을 읊조리며 하늘을 봤다가 땅을 봤다가 달을 봤다가 발을 봤다가. 밝은 하늘빛 덕에 내 하얀 구둣발이 유독 눈에 들어오더라.
그리고 그 순간, 잠시 숨이 멎었던 것 같아.
난 오늘 까만 구두를 신고 출근했거든.
보통 흰 구두가 까만 구두가 되기는 쉽잖아 안 그래?
나쁜 마녀가 새하얀 것이 아주 탐스러워 훔쳐가 놓곤 왠지 우울한 기운을 내뿜는 어둠을 주기도 하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런 요상한 날들이 이어지는 게 이해되기도 해. 아주 억울한 교환이지.
그렇지만 난 흰 구두를 얻었는데 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걸까? 참 신기한 일이지?
그래서 결심했어.
너에게 흰 구두를 주러 가기로 말이야.
유독 밝은 겨울밤, 검은 구두를 신고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는 너를 찾고 있어.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야 해. 아주 먼 길을 가야 하는 날이니까. 그런데 벌써 새벽 한 시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