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는 게으름의 다른 이름이다

완벽주의자는 장인이 아니라 겁쟁이다

by 배성모

회사나 학교에서 유독 마감을 밥 먹듯이 어기거나, 몇 달째 기획만 하며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완벽주의 성향이라서요. 대충 해서 내느니, 늦더라도 완벽하게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부족해서요. 완벽하게 준비되면 보여드리려고요.”


주변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눈높이가 높다며 이해해 주거나, 높은 기준을 지키려는 장인 정신이 있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즈니스나 커리어의 세계에서 완벽주의는 미덕이나 장인 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게으름의 다른 이름이며,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신중함으로 포장한 세련된 도피다.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준비 중이라고 말하는 상태는 안전하다. 결과물이 없으니 비판받을 일도 없고, 실패할 일도 없다. 그들이 론칭과 마감을 미루는 이유는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비판받을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고 미리 방패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누가 욕하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망신당하는데.’


이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그들은 머릿속에 있는 100점짜리 이상향을 핑계 삼아, 현실의 80점짜리 결과물을 내놓는 고통을 회피한다. 완벽이라는 핑계로 현실의 평가를 유예하는 것이다.

이는 착각이다. 진짜 장인은 퀄리티를 핑계로 숨거나 마감을 어기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완벽하게 통제하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일만 맡아서 기어이 완성을 뽑아내는 사람들이다. 대다수는 장인이 아니다.

어설프게 장인을 흉내 내며 현실의 평가와 마감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오만이다.

사회에서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내 이름을 걸었으면 어떻게든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아 마침표를 찍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책상 위에서 혼자 끙끙대며 만들어낼 수 있는 100점짜리 결과물은 없다. 모든 완성은 미완성의 결과물을 세상에 던지고, 깨지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실리콘밸리에는 애자일이라 불리는 생존 방식이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제품을 일단 시장에 던지는 것이다. 버그가 있고 디자인이 투박하다. 하지만 그들은 욕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욕을 먹고 그 피드백을 반영해 수정하는 것이, 혼자 골방에서 3년 동안 깎아내는 것보다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완벽함은 내 책상 위가 아니라, 시장의 냉정한 반응 속에 있다.


100%를 채워 내보내겠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시장은 개인의 완벽을 기다려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오히려 70% 정도 완성되었을 때, 나머지 30%의 빈 공간을 남겨둔 채 세상에 던져야 한다. 그 빈 공간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세상의 피드백이 들어와 채워질 성장의 여지다.


아무리 좋은 기획서도 서랍 속에 있으면 종이 쪼가리고, 아무리 훌륭한 제품도 출시하지 않으면 쓰레기다. 이 판에서 살아남는 자는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미완성의 결과물을 던지는 사람이다. 엉성하게라도 내놓으면 50점은 받지만,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면 0점이다.

세상은 경기장에 들어와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수습하는 선수에게 박수와 돈을 보내지, 안전한 관중석에 앉아 자세가 틀렸다고 분석만 하는 평론가에게는 보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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