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대로 말하지 말고,
본 것만 말하라

관계를 갉아먹는 건 항상 형용사다

by 배성모



가까운 사이일수록, 혹은 매일 얼굴을 보는 관계일수록 헛발질은 잦아진다. 상대를 너무 잘 안다는 착각이 눈앞의 팩트에 내면의 불안을 섞어 섣부른 넘겨짚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보고 중에 팀장이 시계를 본다. 실무자는 속으로 생각한다.


'내 보고가 지루한가 보네.'


불안해진 실무자는 묻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거나 서둘러 보고를 덮어버린다. 지레짐작으로 현장의 주도권을 스스로 반납한 것이다.

퇴근 후, 유독 말없이 밥만 먹는 배우자를 본다. 머릿속 회로가 빠르게 돌아간다.


'오늘 또 나한테 무슨 불만이 있네.'


괜히 찔린 마음에 먼저 방어막을 치고 불쑥 가시 돋친 말을 던진다.


"오늘 왜 그렇게 짜증이 나 있어?"


상대는 황당하다. 팀장은 다음 회의 시간 때문에 시계를 확인했고, 배우자는 그저 두통이 있어 조용히 밥을 넘겼을 뿐이다. 아무도 공격하지 않은 평화로운 링 위에서, 혼자 허공에 주먹을 날리며 관계의 장부에 불필요한 적자를 낸 셈이다.


이 소모적인 비용 지출의 주범은 바로 형용사다. '지루한', '짜증 나는', '예민한', '무례한'. 이런 형용사들은 눈앞에 벌어진 물리적 사실이 아니다. 내 머릿속 불안이 임의로 덧칠한 자의적 해석이자 가공된 데이터다.

관계가 어긋나는 것을 막고 상황의 주도권을 쥐려면 머릿속 소설 집필을 멈추고 관찰 모드를 켜야 한다. 형용사라는 감정적 군더더기를 도려내고, 눈에 보이는 명사와 동사만 테이블 위에 올리는 작업이다.


시작은 해석의 차단과 데이터 수집이다. '저 사람이 짜증 났네'라는 의미 부여를 지우고, '팔짱을 꼈다', '시계를 봤다', '대답이 평소보다 3초 늦었다'는 건조한 사실만 수집한다.

다음은 수집한 데이터만으로 엮어내는 질문의 설계다. "오늘 예민해 보이네"라고 평가를 내리는 순간 상대는 즉각 방어 태세를 취한다. 내 짐작을 빼고 오직 관찰한 사실만 건네야 한다.


"아까부터 한숨을 쉬고 평소보다 말수가 줄었는데, 혹시 무슨 일 있어?"


건조한 사실만 테이블에 올라가면 상대는 나를 공격자로 인식하지 않는다. 인격을 비난받은 게 아니라 자신의 현재 상태를 거울처럼 비춰본 것이므로 굳이 방어막을 칠 이유가 없다.


"아, 딴 게 아니라 두통이 좀 있어서 그래."


상대는 그제야 숨겨둔 진짜 데이터를 꺼내놓는다. 혼자만의 섀도복싱은 끝나고, 대화는 소모적인 눈치 게임에서 실질적인 상태 조율로 성질이 바뀐다.

흔히 타인의 상태를 내 멋대로 짐작하고 단정 짓는 것을 예리한 눈치라 착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눈치가 아니라 타인의 시스템을 함부로 침범하는 지적 오만이다.

섣부른 형용사를 입에 올리는 순간, 내 짐작은 거짓된 사실로 굳어지고 상대가 스스로를 해명할 공간은 증발해 버린다.


타인을 해석하려는 게으른 통제 욕구를 멈출 때, 비로소 진짜 대화가 시작될 빈 의자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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