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과 절대라는 말이
관계를 붕괴시킨다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사실만 타격하는 법

by 배성모



가족이나 직장 동료와 대립할 때, 유독 상황을 파국으로 내모는 단어들이 있다. 저잣거리의 욕설이나 비속어가 아니다. 평소에는 그저 부사로 쓰이던 일상어가 위기의 순간에는 치명적인 흉기로 돌변한다.


"김 대리는 보고서가 맨날 늦어."

"당신은 절대 내 말을 안 들어."


바로 항상, 맨날, 절대 같은 절대어들이다.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싶거나 답답한 마음에 이런 단어들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냉정하게 뜯어보면 절대어의 사용은 '나는 지금 감정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고 선언하는 가장 게으른 소통 방식이다.


이 단어들이 위험한 이유는 논의의 초점을 발생한 사건에서 상대방의 인격으로 순식간에 이동시키기 때문이다. "김 대리는 항상 늦어"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오늘 지각한 실무자가 아니라 구제 불능의 게으른 인간으로 낙인찍힌다. 존재 자체가 공격받은 인간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방어를 선택한다.


"제가 언제 항상 그랬습니까? 지난주엔 일찍 왔잖아요!"


즉각적인 반격이 시작된다. 이 시점부터 대화는 지각이나 보고서 누락이라는 당면 과제를 잃고, 누가 언제 잘못했는지 과거의 장부를 뒤지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된다. 관계를 훼손하지 않고 원하는 결과값만 얻어내고 싶다면, 절대어를 버리고 철저히 한정어를 써야 한다. 범위를 좁히고 시간을 쪼개어, 오직 지금 눈앞의 문제만 정밀 타격하는 것이다.


항상이 있던 자리에 오늘과 최근을 배치한다. "너는 항상 이래" 대신 "오늘은 20분 늦었네"라고 사실만 짚거나, "최근 한 달간 세 번 늦었어"라며 건조한 데이터만 던지는 식이다.

전체가 아닌 오늘의 사건만 다룰 때, 상대는 비로소 자신을 방어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오류를 인정할 수 있다.


절대라는 단어는 이번에는으로 치환한다. "절대 안 변해"라는 인격 모독 대신, "이번 사안에서는 내 의견이 배제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하는 것이다. 타인의 인격을 재단하지 않고 나의 상태와 현재 상황에만 집중하는 방식이다. 절대는 상대를 영원한 구제 불능의 상태로 가둬버리지만, 이번에는은 상대를 여전히 대화와 협상이 가능한 파트너의 위치에 남겨둔다.


이 원칙은 스스로를 지킬 때도 똑같이 유효하다. 실수를 저질렀을 때 '나는 왜 항상 이 모양일까'라고 자책하는 것은 반성이 아니라 구조 없는 자학이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실수가 나왔네'라고 사건을 한정 지어야 미련 없이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피곤하거나 흥분하면 나도 모르게 절대어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 한다. 그 찰나의 순간,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가, 아니면 저 사람의 존재를 베어내고 있는가.'


직장이든 가정이든, 대화의 목적은 상대를 굴복시켜 과거의 죄인으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항상과 절대라는 부사를 도려내고 그 자리에 건조한 사실만 올려둘 때, 비로소 불필요한 감정의 비용 청구서 없는 진짜 협상이 시작된다.

관계의 수명은 애틋한 진심이 아니라, 입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그 1초의 단어를 기계적으로 통제해 낸 건조한 절제력 위에서만 연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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