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본금 사이즈에 맞춰 시작한 장사는 반드시 끝물에서 죽는다
직장 생활을 마치고 통장에 묵직한 퇴직금이 찍히는 날, 사람들의 마음속엔 묘한 전능감과 흥분이 차오른다.
‘회사 다닐 땐 조직 때문에 내 뜻을 못 펼쳤지만, 나가서 내 일을 하면 다를 거야.’
‘평소 가던 저 카페, 내가 하면 저 주인보단 무조건 잘해.’
오랫동안 미뤄둔 꿈, 주변의 성공담, 그리고 두둑한 자본금이 합쳐지면 사람은 위험한 결론을 내린다. 설명은 못 하겠지만, 왠지 나는 될 것 같다는 확신이다.
하지만 포장지를 뜯어보면 그 확신의 정체는 근거가 아니라 합리화다. 사람들은 망해서 조용히 사라진 90개의 가게는 보지 못하고, 살아남아 돈을 긁어모으는 10개의 가게만 본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감의 환상이라 부른다. 불확실한 미래를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불안을 잠재우는 일종의 심리적 보험이다.
이 환상에 빠진 퇴직자들은 치킨, 피자, 카페, 분식집 중 하나로 수렴되는 뻔한 창업을 결심한다.
왜 하필 그 아이템일까. 그들의 대답은 순진하다.
“제가 커피를 좋아해서요.”
“치킨은 유행을 안 타잖아요.”
이들에게 가게를 어떻게 운영할 계획이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답한다.
맛있게 만들고, 친절하게 서비스하고, 청결을 유지하며 부지런히 일하겠다고.
판돈의 무게부터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전 재산을 털어 넣고 수십 년의 청춘을 바쳐 모은 퇴직금을 거는 전쟁터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안 부지런하고 안 친절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맛, 친절, 청결, 성실함은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기본값이지 본인만의 무기나 전략이 될 수 없다. 당연한 소리를 특별한 비전인 양 포장하는 순간, 그 사업은 이미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이다.
감정을 걷어내고 건조한 팩트를 마주해 본다. 퇴직자가 프랜차이즈 카페나 치킨집을 창업하려는 이유는 비전 때문이 아니다. 다른 것을 할 기술이 없고, 당장 수중에 있는 퇴직금으로 오픈할 수 있는 만만한 사이즈가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사업의 타당성을 꿰뚫어 본 것이 아니라, 내 현실에 아이템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다.
이런 창업은 트렌드의 함정에 빠진다. 내 귀에까지 소문이 들리고 장사가 잘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아이템은 이미 정점을 찍은 것이다. 요식업의 트렌드 주기는 2~3년이다. 부랴부랴 퇴직금을 깨서 인테리어를 마칠 때쯤이면, 그 트렌드는 이미 수명을 다하고 투자금 회수조차 불투명한 적자 구간으로 진입하는 중이다.
이 불확실한 확률 게임에서 나를 지키려면 돈의 용도를 재정의하는 작업이 먼저다. 많은 사람들이 퇴직금을 인테리어와 머신에 쏟아붓는 창업의 연료라고 생각한다.
틀렸다. 퇴직금은 연료가 아니라 브레이크 패드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졌을 때 즉시 멈춰 서서 버티고, 방향을 수정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전장치다.
그러니 인생을 건 점프를 할 이유가 없다. 덜컥 2년 계약을 맺고 권리금을 내는 것은 실패하면 복구가 어려운 점프다. 대신 작고 안전한 파일럿 테스트를 돌리는 편이 낫다. 주말마다 플리마켓에 나가 내 커피를 팔아보거나, 공유 주방을 빌려 2주만 장사를 해보며 시장의 객관적인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다.
‘설명은 못 하겠지만 왠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감에 퇴직금을 거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다.
시장은 개인의 부푼 꿈에 관심이 없다. ‘작게 해 봤는데 숫자가 나오더라’는 검증 결과에 반응한다.
실패의 견적을 최소화할 작고 단단한 테스트 구조. 그것이 퇴직금이라는 판돈을 지켜줄 지렛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