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다가 울면서 깼다.
엄마와 내가 같이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는데, 도착지에 도착해서 보니 바닥이 가마니 같은 곳이었는데, 엄마가 그곳이 거적때기(?) 같다면서 불평을 했다.
무슨 목적으로 거기에 왜 갔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의 불평불만에 화가 (왜인지) 났고 나는 엄마에게
“엄마가 공주야??!! 이런 걸로 불평하게!! “
하면서 소리를 빽 질렀다.
더 화가 난 엄마는 나를 째려보며 씩씩 대더니
‘너 내 차에서 내려!’라고 또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 차는 내 차였다. 그래서 나는
‘이거 내 차거든?’ 이러면서 같이 화를 냈더니
엄마가 막 또 나를 째려 보면서 엄마 스스로
재빨리 내 차의 운전석에 타버렸다.
그리고 그 차를 잘도 운전하더니 기가 막힌 주차를 했다. 내 차라서 엄마는 보험도 안되는데 운전을 해도 되나? 생각을 했고,
그리고 꿈은 끝났다.
정말 어이없고 이상한 꿈이었다. 우리 엄마는 전혀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엄마의 파김치’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싶을 정도로 자식들에게 무엇이든 엄청 퍼다 주고, 퍼다 주는 사실 자체에 기뻐하는 그런 내 수호천사 같은 봉사자형 엄마다.
시도 때도 없이 딸이 애들 봐달라고 부탁을 하면 100%쾌속으로 와서 웃는 얼굴로 밤늦게 까지 봐주면서도, 주말 같은 때는 행여나 단란한 가정에 부담이 조금이라도 될까 봐 조심스러운 그런 사람이 우리 엄마다.
그런데 내 꿈에는 대체 무슨 무의식의 발현일까.
회사 생활을 15년 동안 하면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 많이 만났었는데 함께 일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들도 있었고 또 나랑 맞지 않아서 속상하거나 스트레스받는 일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저 그런 순간들은 이내 있다가 없어지기 마련이라 특별히 소위 말하는 ‘극혐’ 이라든지, ‘증오’를 할만한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 이제 와서, 비로소
얼굴만 봐도 기분이 나빠지고 호흡이 불편하고
뱃속에서부터 미세한 통증이 느껴질 만큼 싫은 사람이 나타났다.
기다렸던 대상도 아니건만,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지날수록, 곰국을 오래 고으면 고을 수록 뼈 골수의 진국 진액이 뽑아지듯이, 대충 알면 대충 싫었는데 점점 더 알아갈수록 진심으로 싫어졌다.
얼굴만 봐도 싫고…
무례하기 짝이 없고, 남을 무시하는 안하무인 적 태도 등 이하 열 줄은 더 싫은 점에 대해 쓰다가, 소설이 아니고 에세이를 쓸 거면 어떻게 싫은지는 그만 나열해도 되겠네 싶어서 그냥 다시 다 지웠다.
최후의 보루로 팀장에게 장문의 메일을 써봤다.
그러나 팀장은 미안하다고, 본인도 그 사람 때문에 힘들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인지 충분히 공감하지만 팀의 업무를 진행하려면 필요한 부분이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무력함이 내게 더욱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제 꼼짝없이 갇혔구나.
팀장에게 토로하기 전에는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이렇게 괴롭다는 걸 알리면 나를 그냥 이렇게 당하게만 두지는 않겠지 ‘ 생각했지만 그건 내 크나큰 내 착각이었다.
그래, 사람이 다 자기 필요에 따라서 일을 처리하는 거지. 돈 받으려고 가는 이 회사에서 내가 잠시나마 어떤 인간적인 배려를 바란 건 나의 안일한 생각이었구나 정신을 차렸다. 난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내년 승진이고 뭐고 그냥 육아휴직 남은 6개월을 써서 돌파해 볼까 생각해 보지만 그럼 내년 승진이랑 해외연수는 물 건너갈 것이 바로 걱정된다.
그런데 가만있어보자, 내 마음이 이렇게 못 견디겠는 마당에 승진이랑 연수가 무슨 상관이야? 차라리 퇴사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더 확장된다.
퇴사하면 편해지겠지?
그래 그럼 퇴사를 생각해 보자…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가….
그런데 문득 사람 하나 때문에
내가 내 청춘 15년을 바친
이 회사를 떠나는 결론이 낸다고 생각해 보니
지금의 괴로움보다 더 어이없고
더 허망한 결론인 것 같았다.
갓 대학을 졸업한 24살 신입사원으로 시작해서 하루하루를 씨줄과 날줄 엮듯 생활하며 로스쿨도 다녀오고
결혼을 하고 아기였던 아들 둘을 두고 출근하던 날이 이어저 이젠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저글링 하며 가꿔온
내 어벤저스 같던 회사 생활이 이렇게 끝나는 걸까…
갑자기 현실이 직시되었다.
내가 말도 안 되는 뇌 없는 멍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음이 깨달아졌다.
아니 내가 왜 회사를 관둬유?
젖먹이를 떼고 출근해서 애기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을글썽이면서 까지 밀도 있게 15년을 다녀온 회사를
나를 괴롭히는 사람 한 명이 설친다고 해서 그만둘 생각을 해보다니 그건 전적으로 내 손해였다.
누구 좋으라고 그만 두나 싶었다.
내가 출산의 고통도 두 번이나 겪은 사람인데.
일주일 동안 봐야 하는 변호사 시험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봐본 사람인데!
갑자기 내가 내 인생과 상관없는 사람 때문에 울었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어졌다.
하하 내가 참 어이가 없는 생각을 했구나,
내가 애들이 좀 많이 컸다고 요새 좀 편하게 말랑하게 살고 있었구나,
그리고 너무 회사생활에 몰입을 해서 회사가 바라는 노동자로 최선을 다해 살라고 했구나, 싶었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거 뭐라고.
나한테 빈정거리든 말든, 나에게 안하무인으로 무시하는 말투로 말하든 말든
그거 뭐라고.
그냥 별로 나랑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몰입을 해서 괴로워했지?
빈정거리든 말든
나는 웃어주면 그만이었다.
내게 주고 싶어 하는 똥, 안 받으면 그만이었다.
어제 속상한 마음에 꺼내먹은 술이 다 아깝다.
뜬금없이 내 꿈에 나와서 본래의 캐릭터와 다르게
나에게 큰 눈을 마구 째려보며 자기 차도 아닌데 내차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버럭 소리 지르며 차를 휙 타버리고 멋있게 주차했던 다소 이상한 엄마의 캐릭터는
내가 바라는 내 캐릭터였던 건가 개연성이 다소 부족한연결을 시켜본다.
그리고 의미의 앞뒤는 안맞더라도, 엄마가 공주야?! 하고 남에게 물어볼일이 아니고, 내가 나한테 물어봤어야 되는 말인거 같다. 니가 공주냐고.
세상만사 내 마음처럼 되지 않을 일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정상인데, 내가 너무 내 편안한 우물 속에 폭 잠겨서 배부르게 살아서 나한테 기분 나쁘게 구는 사람 하나를그렇게 못 참겠었나 보다.
싫으면 무시하면 될 일이다. 그냥 그렇게 살다 가세요 생각하면 그만이다.
빠르게 결론을 또 내려 본다.
그냥, 예쁜 내가 참는다.
회사 쭉 다닌다.
내가 사장까지 하고야 만다.
물론 또 월요일이 되면 회사를 그만 두고 싶다고 글을 쓸지도 모른다.
일단 지금 마음은 해결이 되었으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