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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 Oct 13. 2024

이상한, 굉장한, 자랑스러움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처럼 아주 자랑스러운


        어른이 되고 나서도 친구가 생기는 운 좋은 경우가 있다. 학생일 때 생기는 친구는 보통 교실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까 내 취향이나 의지와 없이 자주 보면 정들면서 친해지는 친구들이 많다. 그에 반해 어른이 돼서 생기는 친구는 어렸을 때 친해진 친구들 보다는 서로의 취향이 더 비슷한 경우가 더 잦다. 좋아하는 책이나 커피가 비슷하다든지, 육아를 하고 있는 인생의 시점이 비슷하다든지 하는 그런 명확한 공통점이 있어야 접점이 생기고, 할 이야기가 더 많아져서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친구가 되곤 했다.


        더구나 요즘은 SNS가 활발하다 보니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를 드러낼 기회가 많다. 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 인생의 중요 가치 같은 것들이 다수의 포스팅 속에서 잔잔하게 잘 느껴진다. 인스타 친구를 맺고 주기적으로 그 사람이 알려주는 정보를 보고 읽다 보면, 비록 내가 그 사람과 깊은 대화를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그 사람에 대해 깊이 감명받을 때도 있다. 내가 인플루언서가 아닌 이상 주로 나는 감명을 주는 쪽 보단 받는 쪽이 되어서 감명을 소비하고 있다고 해야 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감명을 주는 사람이 공구를 하고 물건을 파는 인플루언서라면 나는 그가 파는 물건들을 사고 소비할 것이다. 내가 선망하는 사람이 좋다고 하니 일단 혹 하고, 게다가 무조건 최저가라고 하니 바로 넘어간다. 어차피 먹을 보리굴비, 돈까스? ‘웨않사요’ 다. 가끔 성덕이 된 기분으로 공구하는 인플루언서랑 디엠을 주고받을 때도 있는데 그럼 팬심이 올라가고 그를 향한 구매화력은 더 달궈진다. 그렇지만, 그 사람과 나는,


친구는 아니다.




        나에게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익숙한 선영 씨라는 친구가 있다. 그녀와 서로 알게 된 건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를 막 낳았을 시점이다. 그녀의 둘째도 나의 둘째와 나이가 엇비슷해서 둘 다 첫째를 기관에 데려다주면서 기저귀 찬 아이들을 대롱대롱 매달고 해골처럼 초췌한 몰골을 서로서로 나누곤 하곤 했다. 각자 손 갈 곳이 많은 아들 둘을 달고 있으니 길게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짠한 눈빛 속에 말보다 눈빛이라며 전우애 아닌 전우애를 쌓았다.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무궁무진했다. 수유텀은 어떻게 되는지, 애가 한쪽만 더 선호하진 않는지, 그래서 혹시 나만 짝가슴인 건지 그래서 줄무늬 티셔츠는 혹시 피하는 편인지. 또, 선영 씨가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던 그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 공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 뭔지 모를 디자인을 하시는 분들의 포스가 풍기는데 카페 전에는 어떤 일 하셨던 건지. 또 매일 너무 맛있어 보이는 #내가만든거다맛있다그램 의 태그를 달아둔 맛깔스러워 보이는 요리들은 어떻게 하시는 건지.


           여전히 나는 그녀와 물리적으로 오래 만나서 긴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선영 씨가 제주의 푸른 바다에 반해서 아이들과 함께 과감하게 제주로 이사를 했다든지, 늘 아이들에게 손수 맛있는 음식을 해먹이려고 정성을 다하려고 한다든지 하는 삶의 태도에서 잔잔하게 오랜 시간 그녀에게 스며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우리 회사 근처로 카페를 새로 시작한다는 포스팅을 보았다. 정동길 미술관 안에 그녀의 카페가 들어온다고 한다. 일단은 팝업처럼 시작하지만 추석이 지나고 정식으로 오픈하는 것 같다. 나는 이상하게도 너무 설렌다.





          설레는 마음으로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간다. 날씨는 유난히도 좋고, 소개팅을 하러 가는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내 한 손에는 굵은 장미꽃 한 송이가 들려있다. 어서 달려가서 어떤 멋진 공간이 생겼을까, 어서 둘러보고 싶다. 내 친구가 또 해냈구나, 가서 같이 진심으로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싶다. 들어가 있는 건물 자체도 어찌나 멋스러운지, 정동 1928 아트센터 건물은 꼭 유럽에 있는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맛있기로 이미 유명한 에스프레소 메뉴들을 맛보러 온 사람들로 무슈부부 커피스탠드는 이미 바글바글하다. 바쁜 와중에도 내가 살짝 손짓으로 인사하자 찡긋하고 아는 체 해준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되고, 고전적이지만 힙스터 느낌이 가득한 원래의 무슈부부의 공간답게 정동의 이 공간도 참 아름답다. 나는 고작 인스타그램으로 아 이런 공간이 새로 생기나 보다 간접적으로 알게 되고, 그저 혼자 오고 싶은 마음에 조용히 혼자 찾아온 그런 사람인데 이상하게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선영 씨가 와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막 너무 멋지다고 달려가서 멋쟁이 부부를 너무 칭찬해 주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동경하지만 나에게는 없는 그런 미감을 가진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행복을 느끼나 보다.



        막상 우리 회사 근처 에스프레소 메뉴들은 내가 열심히 탐닉하고 먹어봤지만, 무슈부부의 에스프레소는 막상 이 날이 처음이었다. 에스프레소에 입문할 때쯤에는 무슈부부 위치가 나에게 물리적으로 멀어진 상태라 그랬던 것 같다. 끝나지 않는 무더위의 여름 끝자락에 찾아간 정동길에서 받아 든 에스프레소 메뉴 ‘프로즌’은 정말 감동 그 이상이었다. 나는 분명 이 글을 시작할 때 ‘내 것이 아님에도 내가 너무 자랑스럽게 느끼는’ 그런 마음에 대해서 쓰려고 글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어떤 자랑스러움인지 설명을 하려다 보니 그 대상의 훌륭함에 대해 기술할 수밖에 없다.





        작은 티스푼으로 에스프레소에 적셔진 얼린 라임을 떠먹는 내내 그 상큼함과 진한 풍미에 떠먹는 한입 한입이 아까웠다. 이거 나만 먹을 수는 없고 우리 남편 언제 데려오나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우리 엄마 아빠도 꼭 먹여봐야지 생각도 한다. 나는 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을 때 매일 이것을 먹지 않았을까 후회도 하면서 그래도 이제라도 회사 가까이에 내 자랑이 생겼으니 바쁘게 사랑해주고 싶다 생각한다. 오늘은 바빠서 딱 하나밖에 못 먹고 웨이팅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위해 얼른 빠져주지만 다음에 왔을 땐 무조건 둘이 와서 네 개 이상시켜 먹을 것이라고 벼른다.



        내가 오픈한 카페도 아닌데 왜 나는 이 공간과 선영 씨가 자랑스러울까. 선영 씨가 내 딸도 아니건만 무슨 일인지. 잠시 생각을 해봤는데 좀 이상한 자랑스러움인 것은 확실하다. 아마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와 근황을 공유하며 그녀가 생각하는 가치관들에 대해 멀리서나마 공감하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때마다 응원해 왔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그냥 인스타의 다른 인플루언서들과 다르게 그녀와 물리적으로 함께 지낸 시간이 있고, 공동구매 같은 방법으로 서로가 서로를 소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더욱 친구처럼 느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내 친구가 멋진 것을 자꾸 해내서 너무 기쁘다. 그리고 이상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그녀가 매우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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