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오랜만에 에어팟을 출근길에 꼈다.
와, 세상이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었구나
다시 한번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술에 감탄하며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 년이 있는 앨범의 intro로 노래를 시작한다.
ask me why~ do you know the secret soul~
세상 고요함 속에서
가수가 내 귀에 속삭이듯이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면
텐션이 점점 올라간다.
YT뮤직의 알고리즘은 또 천재라서 좀 지나니
바람직하게도 sam smith의
I'm not the only one 등등으로 흘러갔다가
한남대교를 지날 때쯤에는
lauv - steal the show가 나오고
마침내 회사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있을 때는
fifty fifty의 cupid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걸어오는 길에서도 살짝살짝 고개는 흔들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더 이상 나의 흥을 감추고 누를 필요가 없었다
그 cupid 노래의 클라이맥스에서 딱 터지는
'I give my second chance to 큐! 핏~'할 때
큐 부분에서 쾅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몸뚱아리를
미친 듯이 좌로 우로 씰룩거렸다.
엘리베이터에 비치는 내 모습은
검은색 롱 패딩을 머리부터 발목까지 입은 상태라
흡사 침낭 같은 걸 둘러싼 형태인데 그 기다란 형체가 별 형체는 없으나 최선을 다해 씰룩거리니,
마치 거대한 검은 애벌레가
신이 나서 좌로 우로 춤추는 것 같았다.
웃겼다.
웃기니 더 신이 난다.
웃을 일 별로 없는 회사 출근길에
내가 나를 웃겨줬다.
보는 사람도 없으니
양팔도 이쪽저쪽 훠~이 훠~이 흔들며
8층 도착 직전까지 더 신나게 춤을 춘다
***
엘리베이터가 8층에 도착하는 공기가 느껴지자
시치미 뚝 떼었다.
춤춘 사람 없음.
오늘따라 기분 좋게 은밀하게
상쾌한 하루를 시작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