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잔소리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우리 집 화장실에는 센서등이 달려있다.
사람이 움직이는 동작을 감지하면 저절로 불이 켜지고
몇 초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꺼진다.
그래서 그런가?
들어갈 때는 나도 모르게 켜고 들어가는데
나올 때는 별생각 없이 내가 나왔나 보다.
손 씻을 일도 많고
이래저래 들락날락 하는데
남편의 어김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화장실 불이 왜 이렇게 켜져 있는 거야"
나인가? 난 끈 거 같은데.
아무래도 아들 보고 하는 소리인가? 긴가민가 하며 넘긴다.
그런데 조금 후에 또 남편의 조금 더
흥분된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도대체 누가 이렇게
화장실 불을 안 끄고 다니는 거야?
귀신이 키는 거야? 내가 끄면 키고! 끄면 또 키고!"
그러고는 기분 나쁜 손 끝으로 화장실 스위치를
탕! 하고 끈다.
사실 화장실 불에 대해서
잔소리를 들은 지 어언 3년이 되어간다.
이사오기 전에는 그런 잔소리가 없었는데
이사를 온 후로 정말 남편을 뺀 사람들이
화장실 불을 잘 안 끄는 건지
아니면 화장실 불 켜있는 거에 민감하지 않았던
남편이 민감해진 건지.
아무튼 지간에 3년이 되어가는 동안 정말 남편은
화장실 불 누가 안 껐냐는 잔소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격양된 된 목소리로 했다.
단순히 '화장실 불 좀 잘 끄자'가 아니고
'누가 이렇게 켜놓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대체 왜 이렇게 불을 누가 자꾸 켜냐?'
'귀신이 불을 자꾸 켜는 것이냐?'
'어이가 없다'
'대체 무슨 일이냐'
이렇게 다소 호호할머니와 같은 잔소리 공격을 했고
세상에서 같은 말 반복/ 잔소리를 제일 싫어하는 ENTP 나는
지긋지긋하게 잔소리 듣는 걸 싫어하면서도
남편의 불 절약 정신을 충족시킬 정도의 행동거지를
끝끝내 갖추지 못해 온 것 또한
미스터리다.
어제도 어김없이 남편은
귀신이 불을 키는 컷이냐며
커진 눈으로 레퍼토리를 시작했고
순간 나는 또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대체
내가 화장실 불을 잘 안 꺼서
더 내야 하는 전기요금이 얼마인가 싶었다.
대체 얼마 때문에 우리가 이토록 짜증을 주고받는
신경전을 하고 있는 걸까.
Chat GPT에다 물어봤다.
"내가 화장실 불을 하루종일 켜두었을 때 한 달 동안 늘어나는 전기료가 얼마정도 될까?"
Chat GPT가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대세에 지장 없습니다"
와. 정말 속이 다 시원했다. 정말 고마워 챗비서..
그렇지만 나는 더욱 정확하게 남편에게 내가
불을 안 끔으로써 하게 되는 돈낭비가 얼마인지 수치로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정확한 금액으로 계산을 좀 부탁할게"
라고 집요하게 한번 더 되물었다.
천재 비서가 깔끔하게 계산을 해주었다.
- 여보.
내가 한 달에 2천 원 줄게.
나한테 화장실 불 끄는 걸로 뭐라고 하지 좀 말아줘.
- ㅇㅋ
Chat GPT덕에 상황은 빠르게 종료되었다.
고마워 챗비서.
물론, 불이 켜있으면 마음이 불편한
남편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고
물자 낭비 없이 내가 화장실 불을 잘 끄는 게
더욱 해피한 엔딩이겠지만
그렇게는 잘 안 되니
이렇게라도 상황을 종료시켜 본다.
모로 가도 서울부터 일단 가보는 거다.
언젠가 내가 더 성숙해지면 쳇비서 계산 따위 없이도
웃으면서 부부의 다름을 우아하게 해결할 수 있겠지.
그런 날이 올진 솔직히 잘 모르겠다.
ENTP와 ENTJ가 결혼한 이상 계속
우리는 평생 Chat GPT에 의존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뭐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셋이 사이좋게 물어보고 해결하고!
일단 사이좋게 지내고 볼일이다.
누구든 만일 부부간 이견이 있는경우가 있다면
챗지피티 적극 활용을 추천한다.
생각보다 진짜 괜찮다.
챗지피티가 내 편을 들어줘서 하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