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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자씨 Mar 11. 2024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근자씨의 서재 -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 척 하지?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알베르토 에코 지음 /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My Prologue


이 책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작가가 연재하던 칼럼을 모아서 펴낸 것이다..

서문을 보면 작은 접이식 성냥갑 안쪽에 간단하게 메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거기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단상과 주제 같은 것을 적었다고 하다.

딱히 떠오르는 이탈리아 작가나 책은 없으므로, 책 표지에 나온 작가와 작품 소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움베르토 에코

‘20세기를 대표하는 기호학자이자 미학자, 그리고 세계적 인기를 누린 소설가’라고 한다.

1932년 이탈리아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2016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1980년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을 출간했고, 이 작품은 곧바로 ‘백과사전적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의 결합’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에서 3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은 에코가 잡지 ‘레스프레소’에 ‘미네르바 성냥갑’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던 칼럼 중 2000년 이후에 썼던 것을 모은 책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출간 되었다.


이 책은 독서모임에서 누군가의 정한 책인데, 사실 제목도 작가의 이름도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제목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만큼은 너무나도 확 끌렸다.

이 세상은 미친 세상인 것만큼은 확실하니까.

왜냐고?

매년 기후변화가 심화되어 당장 지구상에 엄청난 재앙이 닥칠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도 인간의 이기심은 계속해서 환경오염을 지속하고 있다.

‘코로나’라는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에 의해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었고, 그로 인해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

지금이 과연 21세기인가 싶을 정도로 잔혹한 전쟁이 2건이나 지속되고 있다.

“그래 이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보자."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제목만큼은 마음 들었다.

In The Book


p. 23

"<내 성공의 비밀은 젊었을 때 내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데 있다.> 자신이 신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행위를 항상 의심하면서 지난 삶을 충분히 잘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나머지 시간을 더 잘 보내려고 노력할 수 있다."


나의 지난 삶은 충분히 잘 살지 못했다. 그래서 반성 중이다. 그럼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계속해서 나머지 시간을 더 잘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신은 안다 내가 바보라는 걸


p. 39

"우리는 이런 미친 짓이 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했다. 마리아스는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신을 믿지 않아서 그렇다는 과감한 가정을 내놓았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건 항상 자신을 지켜보고, 자신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읽고, 자신을 이해하고, 또 필요할 땐 벌까지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최소한 하나는 있다고 확신했다."


미친 범죄자들과 일부 국회위원들, 도대체 국익조차 관심 없는 보수꼴통 우파들의 행태를 보면 저들은 신도 없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개념도 없어 보일 때가 있다.


p. 40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이 위대한 증인이 사라지거나 쫓겨나고 나면 뭐가 남을까? 사회의 눈, 타인의 눈이 남는다. 사람들은 남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이 사회에서 익명의 블랙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속옷만 입은 채로 술집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는 얼간이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비키니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대로를 달리기도 한다.


p. 44 - 나는 트위터를 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트위터는 시골 마을이나 도시 외곽에 대형 TV 화면을 갖다 놓고 스포츠 경기를 틀어주는 술집과 비슷하다."


p. 67 - 인터넷으로 자료를 베끼는 방법

"잘 베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확하고 올바른 자료를 찾아낼 줄 아는 학생은 좋은 점수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제는 베끼는 시대가 아닌 AI로 대신 생성해 내는 시대다. @Unsplash

저자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도 AI를 잘 활용하는 방법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좋은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을 권리가 있을지도…


p. 82 - 핸드폰을 삼키다

"그사이 핸드폰은 자연스럽게 우리 육체의 일부가 되었다. 귀의 연장이고, 눈의 연장이고, 심지어 페니스의 연장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그의 핸드폰으로 질식시키는 것은 그의 창자로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나 진배없다. <자, 받아, 메시지 왔어>하고 말이다."

스마트폰, 편리한 만큼 세상은 팍팍해졌다. @Unsplash

때로는 스마트폰 이전에 세상이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자와 전화, 당장의 필요한 만큼의 communication 이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communication의 과잉이다. 지하철이든 버스에서든 술집에서든 스마트폰만을 들여다본다. 타인을 볼 때도 스마트폰을 통해서 본다. 그의 프로필 사진, SNS에서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놀았는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진심 어린 대화를 통한 communication은 점점 줄어가고 결국, 인간은 대화를 통해 미묘한 톤의 변화를 캐치하거나 상대방의 표정을 읽거나 하는 차원 높은 communication 능력이 퇴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p. 105 - 음모와 비밀

"역설적으로, 모든 가짜 음모 뒤에는 어쩌면 우리에게 그것을 진짜 음모라고 믿게 만듦으로써 이익을 보는 사람의 음모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모든 음모이론은 매우 흥미롭다. 대다수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에 반대하거나 다른 설명을 함으로써 흥미를 유발한다. 어쩌면 억지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잘 설명된 음모이론을 보면 매우 그럴싸하다. 그리고 또 거기에 반박하는 입장의 설명이 따라온다. 관전하는 재미가 있다.


p. 134 -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

"베르볼트 브레히트는 ‘갈릴레이의 생애 Leben des Galilei’에서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왜 불행할까? 그 나라에는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보통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슈퍼맨이 나오면 슈퍼 재난이 있기 마련. @Unsplash

영웅이 나오는 영화를 보라. 반드시 엄청난 재난이 있기 마련이다. 영웅이 필요 없는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맨들은 다 꺼져!


p. 175 - 사랑과 증오

"독재 체제와 포퓰리즘은 대중에게 증오를 요구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증오의 시대’다. 서로 다른 정당은 증오의 정치를 펼치고. 미국의 대통령 후보들은 서로에게 증오의 독설을 퍼붓는다. 또 다른 증오는 전쟁과 쿠데타를 일으키고, 결국 지금은 ‘대 증오의 시대’인가?


p. 182 - 죽음은 어디에 있을까?

"죽음은 태어날 때부터 원래 우리 삶의 일부였고, 현자는 평생을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그냥 인간은 언제든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럼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바로 생각이 날 것이다.


p. 212 - 아름다운 필체에 대한 단상

"부모들이 자녀들을 캘리그래피 학교에 보내고, 관련 대회에 나가도록 격려하는 건 환영할 일이다. 그건 단순히 예쁜 글씨를 쓰는 데만 좋은 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좋다. 그런 학교는 이미 존재한다. 인터넷에서  <캘리그래피 학교>만 쳐보면 알 수 있다. 어쩌면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사업 아이템이 될지 모른다."

예쁜 글씨는 아름답다. 그것을 내가 썼을 때 희열을 맛볼 수 있기를. @Unsplash

글을 키보드로 타이핑하는 것 마저도 스마트폰에 밀린 세상이다. 하지만 글을 써본 사람들은 안다. 잘 쓰인 정갈한 글씨를 볼 때 드는 안정감이란! 그리고 부드러운 필기감이 선사하는 일종의 오르가즘 같은 것도 느낄 수 있다.


p. 290 - 좌파와 권력

"좌파는 <예>라고 말하는 순간 도덕적 순수성을 잃어버린다. 그 순수성 때문에 그들은 늘 패배했지만 권력의 유혹을 고집스레 이겨 낼 능력은 갖출 수 있었다. 그들에겐 반대하는 세력이 언젠가 현 집권 세력을 파괴할 거라는 상상만으로 충분했다."


우리나라의 거대 양당은 좌우가 아니라 극우와 조금우파 같다. 그들에겐 도덕적 순수성이 없기 때문이다.


My Epilogue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과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이 사람들 대부분은 이탈리아의 유명인들이고 이탈리아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테지만, 주석에서 짧게 설명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과 내용을 이용한 풍자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독자들 또한 같은 느낌일 것이다. 이 책을 읽었던 지인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여러 칼럼서 중에 공감이 가는 부분을 여러 군데서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이 놈의 세상이 점점 미쳐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ps. 지하철에서 틈틈이 읽을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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