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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hnnap Mar 19. 2024

〈아직은 가족, 끝까지 가족〉



218. 성년후견제도는 비록 어떤 상황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그 사람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고 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법률적 텍스트로 쓰인 글이 생각보다 쉽게 술술 읽힌 것은, 저자가 흥미로운 판례들을 중심으로 각 주제에 대해 길지 않은 글들을 다발로 묶어 구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표지에 있는 햇살은 실제 햇살이 비춘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각 장의 마지막마다 법률적 지식을 recap해주는 구성도 좋았다.

 이혼, 성년후견, 상속, 가족부양과 같은 주제 중에서 현재 시점의 내게 피부로 다가오는 문제는 부양이 있었다. 그러니까, 법적으로 성년에 이르렀지만 학업을 마치고 경제적 교환가치를 가진 사회적 기능성을 조속히 확보하지 못한 나는 아마도 ‘미성숙’ 자녀로서 부모의 2차적 양육의무 대상에 여전히 놓여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문장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유사하게 다른 사례들에서도 판단기준으로서 유효한 가치가 복리(행복과 이익)와 이득 등으로 제법 정량적인 성질이었던 것 또한 기억난다. 위 문장을 인용한 것은 〈파견자들〉에 등장하는 범람체들과 달리, 인간 사회가 자아라는 개체성에 중요한 무게를 둔다는 것을 새삼 낯설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지능력을 상실한 피후견인의 과거 행동양상을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개연성을 결코 확실성으로 고착시키지 않으려는 것은, 단순히 의지 혹은 의사의 전이에 보수적이라기보다, 그것을 허용했을 때의 잠재적인 악용 가능성을 귀류법적으로 염려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법이 임시적으로 현재와 같이 존재하게 된 맥락을 고려해야 하다 보니, 인공지능의 메커니즘은 아무래도 이런 식의 사고에는 부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소울메이트〉와 〈브로커〉를 떠올리며 어떻게 책에 나온 양육권 관련 법률지식이 영화에 적용될 수 있을까 상상했다. 그렇게 각 주제별로 읽으면서 직접적으로 연관은 없지만 생각난 것들이 몇 있었다. 예를 들어 부담부증여는 이 글로서 참여하고 있는 서평단이나 특정 장학금의 조건부적인 특성(타 분야 진로선택 시 반환)을 상기시켰다. 행정상 편의를 위한 이혼 사례의 언급에서는 영화 〈세기말의 사랑〉이, 사실혼 당사자들이 갖는 사회적 효과를 읽으면서는 백남준의 청혼 일화가 떠올랐다. 〈넛지〉에서 저자는 다양한 결혼의 형태에 대한 사회적 실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현재 구조적인 전환을 맞고 있는 한국사회의 인구구성 앞에서 법률혼에 준하는 사실혼에 대한 적극적인 장려가 과감하게 시도해볼만 하지 않나 생각했다. 물론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이란 게 원체 즉각적으로 현실에 발맞출 수 없거니와 그 파급효과에 대한 대안까지도 어느 정도 마련돼야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혼과 상속 같은 골치 아픈 문제들을 읽자니, 비록 가정은 사회를 지탱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모순의 최소단위가 아닌가 생각했다.

 예전에 점유에 관한 비문학 지문을 읽을 땐 법 쪽은 정말 쉽지 않다 느꼈었는데 정말 수월하게 읽었다. 세상은 넓고 문제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례들을 알고 나니 평범한 가정이라는 게 도무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물론 사람마다 평범이란 게 다르겠지만. 그리고 가정에 관한 법률 외에도 일반 시민이 생활하면서 알아두면 좋을 법률적 지식 중에 이렇게 재미있는 판례가 곁들여질만한 것에 무엇이 또 있을지 궁금하다. 애초에 쉽게 구성되긴 했지만 정말 재밌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또래가 아닌 부모님 세대에게 추천한다면 아래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


214. 우리 사회는 실손보험이나 암보험을 들어두어야 한다는 건 잘 알면서, 정신적 어려움에 빠졌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건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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