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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일아빠 Oct 14. 2024

나무 집과 쥐새끼

어느 아침에 있었던 황당한 이야기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오래된 나무 집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이제 한 50년 된 나무 집이다. 독일에서는 집을 지을 때 대들보며, 골조를 나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목재의 수급이 좋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우리 집은 이를 뛰어 넘는다. 단순히 뼈대 뿐 아니라 외벽까지 나무로 만들어진 100% 나무 집이다. 얼핏 보면 스위스에 있는 나무 별장처럼 생겼다. 그렇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관리되지 않은 테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아마 처음 집을 지을 대 우드 스테인 같은 페인트 칠하는 것을 잊어버렸던 듯 싶다. 그래서 나무가 쉬이 낡아져 겉모습은 더 오래되어 보인다. 50살 밖에 안 된 주제에 한 100살은 되어 보이는 거짓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든 집이든 분칠을 잘 해야 하나 싶다. 왜 우리도 얼굴에 로션을 안 바르면 피부 관리가 안되니까. 수분도 수이 빼앗기고, 그래서 주름도 자잘해 지곤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치 내 이야기인가 싶다. 나이가 40에 가까워지지 부쩍 피부가 푸석 해지는 게 느껴진다. 얼마 전에는 아내에게도 한 소리를 들었다. 나이 먹어 보이는 것 한 순간이라고. 로션을 꾸준히 바르지 않으면 안 데리고 살테니 그리 알라며 단단히 꾸지람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가 여기까지 TMI(Too much information)하게 되었지? 아, 맞아! 집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구나. 그러고 보면 이야기란 것도 참 우습다. 마치 물 위에 떨어뜨린 기름 방울처럼 이리저리 퍼져가는 것이다. 갈피를 못 잡겠다. 그러니 서울 가다 삼천포로 빠진다고 옛 어른들이… 또또또 이런다. 사람이 끊을 줄을 알아야 하는 것인데. 여하간 내가 그런 집에서 살고 있다. 


요즘 회사에서 야간 근무를 신청해서 일하는 중이다. 독일의 근무 규정이란 것이 다행히도 노동자 중심적이라 일주일을 일하면, 일주일은 쉬고 그렇게 일하고 있다. 이번 주간은 일하는 주간이라 저녁에 출근하고 새벽에 집에 도착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간 얕은 잠에 들고, 램 수면, 깊은 수면, 뭐 이런 사이클을 채 한 바퀴도 돌지 못한 것 같은데, 갑자기 벽에서 '두두두두' 거리는 요란스런 소리가 났다. 100% 나무 집은 이럴 때 안 좋다. 방음에서는 영 꽝이다.  


AI로 생성된 이미지 입니다.


그나저나 이것은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아! 쥐새끼! 쥐새끼가 들어 온 모양이구나! 


나는 잠결이었으나 비교적 빠르게 생각을 이어 나갔다. 무거운 눈은 채 뜰 수도 없었으나, 나는 깊이 확신했다.  


그래 이것은 쥐새끼 소리다. 쥐가 틀림없다. 


독일 독일의 쥐 중에는 꼭 손가락 두 개 정도 합친 크기의 작은 쥐가 있다. 입이 뾰족해서 '뾰족한 쥐(Spitzmaus)'라고 불린다. 


작년 이 맘때도 이 놈들이 날이 차가워지자 온기를 쫓아 우리 집 벽을 파고 든 적이 있었다. 비록 잠결이었지만, 아니 어쩌면 잠결이었기 때문에 더욱 당당히 이 놈들을 쫓아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내 귀한 단 잠을 방해한 녀석들을 깊이 응징하는 마음으로, 내 깊은 곳에 있는 모든 짜증을 끌어 모아 있는 힘껏 벽을 두드렸다. 심지어 녀석들에게 깊은 트라우마까지 안겨주고자 입으로 고양이 소리까지 흉내 냈다.  


'이 야옹~ 이 야옹~'  


잠깐! 그러고 보니 이 놈들은 독일 쥐새끼다. 그럼 독일 고양이 소리를 내야 하나?   


'미 야우~ 미 야우~'  


그러나 녀석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강했다. 나의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당탕탕' 요란하게 설쳐댔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와 있단 말인가? 

이 놈들 쪽수로 밀어 부치겠다는 뜻이냐?

좋다! 내 그럼 인류의 무서운 맛을 너희에게 안겨주마! 


나는 손바닥을 오므려 주먹을 불끈 쥐고, 더욱 힘껏 벽을 치기 시작했다. 고양이 정도로는 효과가 없을 것 같아 괴물까지 입으로 소환 했다. 


'우워우워~ 악악!!'  


마지막 '악'에서는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음이탈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사력을 다하자 효과가 있었다. 이내 소리가 완전히 멎었다.  


그럼, 당연히 놀랐겠지. 도망쳤을 수도 있겠구만. 역시 인간이 가진 힘이란 위대한 법이야!


나는 짧고 굵은 전투에서 이긴 승리감을 잠시 만끽하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띵동~ 띵동~  


엥? 그 때 갑자기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오늘은 도대체 왜 이러냐? 나는 파자마를 재빨리 속옷 위에 걸쳐 입고 1층으로 내려가 현관 문을 열었다. 


AI로 생성된 이미지 입니다


거기에는 검은 수염을 길게 기른 한 덩치 큰 남자가 한 손에 망치를 들고 서 있었다. 그는 덩치에는 어울리지 않게 제법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요. 제가 지금 지붕 위에서 굴뚝을 고치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요. 괜찮으신거 맞죠?"  


아! 오늘 지붕 고치는 날이라고 옆집 아저씨가 그랬던가? 갑자기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생각했던 쥐새끼는 아니었다. 이긴 게 이긴 게 아니었다. 그래도 패배감은 가지지 말자. 비겼다고 해두지, 뭐. 그래도 다행히 우리 집에 쥐새끼가 없다는 것은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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