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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일아빠 Nov 05. 2024

퐁뒤(Fondue)를 먹으며...

사색에 잠기다


사실 이미 오래전에 끝난 여행기다. 기억의 왜곡이 있을 터이다. 시간이 꽤 지나고 지난날을 돌아보면 어려웠던 일도 추억으로 미화되곤 하니까. 그렇지만 또한 얼마간 소화가 된 경험들을 기록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터이다. 그런 핑계로 지난 추억들을 다시 끄집어 내 본다. 




지난밤 느지막이 숙소에 도착한 우리들은 서둘러 방을 정리하고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함에 쓰러져 잠을 청했지만, 오래 잠을 이루지는 못했다. 한국에서 유럽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처가 식구들은 여전히 시차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예를 들어 처제는 항상 어두운 새벽녘에 조용히 일어나 부지런히 간식을 챙겨 먹거나 별스타그램, 혹은 블로그 작업을 하곤 했더랬다. 반면, 나는 같은 시간대를 쓰는 독일에 살면서도 일찌감치 일어났다.  그것이 꿈만 꾸었던 스위스로 여행의 설렘 때문이었는지 혹은 (설령 그곳이 아무리 비싸고, 또는 좋은 곳이라는 평가받는다 하더라도) 낯선 곳이 주는 불편함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아침 일찍부터 모두 부산했다. 


'우와!'


어제 그리 오랫동안 탄성을 질렀으면서도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아침 여린 빛을 통해 바라본 협곡은 어제의 창백하고 우람한 절벽이 아니었다. 오히려 짙으나 여전히 연두에 가까운 색과 설산의 흰색이 어우러지니 얼마간은 발랄한 느낌마저 들게 해 주었다. 여전히 거대한 절경이었으나 절대 고압적이지 않은, 다가감직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그 모습으로 그 절벽은 우리에게 새로운 탄성을 자아내도록 만들었다. 가정 먼저 일어났던 부지런한 처제는 일찌감치 자신의 커피를 머신에서 내려놓고는 발코니에 앉아 절벽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졌다. 아마 우리가 모르는 새 혼자서 얼마 간 정신이 빠져라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호들갑을 떠는 우리들을 바라보며 싹 시치미를 떼고는 옅은 웃음기를 흘리며 홀로 고고히 커피를 즐겼다. 얄밉게도. 


아침 숙소 발코니에서 바라본 라우터 브루넨 (Lauter Brunnen) 협곡



아침을 먹기 전, 어제는 미처 챙기지 못했던 주인장의 환영편지를 읽었다. 참고로, 우리 숙소는 에어비엔비를 통해 구했다. 환영 편지 옆에는 숙소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여러 정보를 정리한 책자가 있었다. 난방기를 조작하는 방법이나 빨래를 하는 방법, 주변의 맛집과 관광할 수 있는 주위 절경에 대한 정보들. 하나같이 꼼꼼하고 따뜻한 주인장의 성격이 담긴 기분 좋은 배려였다. 그중에도 특별히 인상적인 내용이 있었는데, 바로 '퐁뒤'에 대한 조언이었다.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퐁뒤(Fondue)를 먹기 위해 레스토랑을 굳이 방문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위스에서 퐁뒤는 매우 대중적인 음식이랍니다. 마트에서 아래 사진과 같은 퐁뒤용 치즈와 캔으로 된 일회용 버너를 값싸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퐁뒤를 만들 수 있는 냄비와 꼬지는 싱크대 아래 수납장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치즈를 냄비에 녹인 뒤,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빵과 과일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함께 드시면 됩니다." 


스위스에 온 김에 퐁뒤 정도는 먹고 가야지 생각했는데, 잘 되었다. 구글맵으로 찾아본 레스토랑 메뉴의 퐁뒤가 생각보다 더 비쌌던 터라 한 편으로는 고민이 되던 터였다. 일단 약식으로나마 스스로 해 먹어 보고 입맛에 맞으면, 괜찮은 식당을 찾아 본격적으로 먹어보고 서로 비교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근처에 있는 호수에서 시간을 보낸 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식사 재료를 사며 퐁뒤 재료도 함께 구입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게트 빵을 잘게 자르고, 주인장의 안내에 따라 냄비에 치즈를 녹였다.


내 생애 첫 퐁뒤.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모양이 예쁘진 않았다. 두 개의 치즈를 동시에 녹였는데, 약간 시큼한 알코올 냄새가 강하게 코를 찔렀다. 애들도 먹여야 하는데 이거 지금 제대로 한 것 맞겠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언젠가 누구에게 선가 치즈는 고약한 냄새가 날수록 잘 숙성된, 양질의 치즈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낫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지금 이 퐁뒤의 치즈는 좋은 치즈임에 틀림이 없다. 처음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가 조금 가시자 특유의 퀴퀴하고 쿰쿰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몸에 좋은 청국장도 냄새가 난다고 싫어하는 한국인도 있는데, 다르지만 비등한 세기의 고약한 냄새가 나는 치즈를 좋아하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있긴 하겠으나, 여하튼 나는 아니었다. 맛도 나는 실은 잘 구분하질 못했다. 여러모로 내 취향은 아니었다.


주인장의 조언대로 마트에서 두 종류의 퐁뒤 치즈와 일회용 버너를 준비했다.



확실히 내가 미식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던 순간, 머리에 퍼뜩 궁금증이 스쳐 지났다.

'그렇다면 도대체 퐁뒤는 왜 이렇게 유명한 거지?'


궁금한 것이 생기면 계속 머리를 맴돌아 다른 일상에 집중하기 힘들어하는, 그러니까 퐁뒤만큼 고약한 내 성격을 스스로 잘 알기에 나는 곧장 구글로 퐁뒤를 검색했다.              


퐁뒤는 일반적으로 녹인 치즈와 와인을 카클롱(Caquelon) 또는 퐁뒤 냄비와 같은 공동 냄비에 담고 휴대용 스토브(réchaud)에 촛불이나 증류주 램프로 데운 후 긴 포크를 사용하여 빵을 담가 먹고 때로는 감자를 비롯한 다양한 채소 및 여러 간식도 치즈에 담가 먹는 스위스 요리이다.

(...중략...)

'녹이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fondre'에서 유래한 퐁뒤는 18세기 스위스에서 농가들이 겨울철에 한정된 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래되었으며 남은 치즈와 오래된 빵, 약간의 와인만 있으면 온 가족이 난로 주위에 모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하 생략...)

- <나무위키>에서 발췌 -



여러 정보들 속에서도 나는 위의 붉게 칠 한 문장에 눈이 갔다. 그리고 몹시도 추운 '겨울'에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모두 소진한 뒤,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얼마 '남은 치즈'와 '오래되어 딱딱해져 버린 빵'을 먹으려 난롯가에 모이던 그 옛날 어느 스위스 가족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 옛날 난로가에서 겨우겨우 퐁뒤를 먹어야 했던 스위스 가족에 대한 상상. (*AI로 생성한 이미지) 



지금이야 스위스 여행은 꿈과 같다. 누구는 천상의 모습이라 말하고, 천혜의 자원을 가진 스위스를 부러워한다. 겨울이면 스키, 스노보드 등 겨울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여름에도 만년설의 아름다운 배경으로 하이킹이나 패러글라이딩과 같은 레저를 즐기기 위해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높은 괴암과 절벽, 협곡, 폭포와 넓은 목장. 주변에서 수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 앞에 많은 사람들은 탄성을 내지른다. 수 없이 모여든 관광객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스위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물가를 자랑한다. 게다가 중립국이나 스위스 은행 등의 이미지까지 겹쳐 오늘날 스위스 사람들을 생각하면 여유가 넘치는 부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당연히, 마땅히, 스위스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아, 나도 스위스에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아마도 그 옛날 스위스 사람에게 비치는 스위스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전 세계 무수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 기암절벽과 높은 산은 적어도 그들에게는 아름답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외부와 연결을 어렵게 만들고 물자의 이동을 막는 거대한 장벽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겨울 눈이라도 몰아치는 날이면 그나마 어렵게 이어오던 교류마저 완벽히 차단시켜 버렸을 것이다. 지금이야 겨울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이 환호하는 자연이겠으나, 그 모습은 그들에게 악몽처럼 끔찍했을 터이다. 

'아, 내가 스위스에서 안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퐁듀는 어떤가? 먹을 것이 몹시 없어,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을 찾고 찾아 먹던 음식이었다. 딱딱하게 말라버린 빵 몇 조각, 녹여서 먹지 않으면 먹을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치즈. 주변에 보이는 남은 식재료들. 그것이 과일이든 채소든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오로지 살기 위하여 먹어야 했던 그런 음식이었을 테다. 우리나라로 치면 뭐랄까 부대찌개 정도에 댈 수 있지 않을까? 6.25 전쟁 이후 살기 위해 미군부대에서 얻은 음식, 이렇게 저렇게 얻은 음식을 몽땅 넣어 끓여 먹었던 아픔이 서린 음식. 지금에야 매우 비싼 돈을 주지 않으면 먹을 수도 없고, 일부러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며 먹는 음식이 되었지만, 그 옛날 높은 산에서 목축으로 연명하던 스위스 사람들에게 퐁뒤란 마지못해 먹어야 했던 음식이었을 것이다.


교통의 발전이란 단 하나의 조건이 바뀌면서 아마 모든 것이 변했을 터이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스위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게 된 것은 아마도 현대적인 교통수단이 발달된 이후부터일 것이다. 비교적 수월한 접근 방식이 마련되게 된 것이 그 계기라 생각된다.  그때부터는 비로소 모든 단점들이 장점이 되기 시작했을 테다. 오늘날 우리가 스위스를 보고 열광하게 된 이유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을 가로막던 고산과 절벽은 세상에 없는 볼거리가 되었을 테고, 교통을 어지러이 만들었던 폭설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즐길거리를 제공했을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겨우겨우 찾아 먹던 퐁뒤도 그 덕분에 스위스를 대표하는 먹거리로 인정받기 시작했을 것이 틀림없다. 여러 종류의 고급 치즈들을 개발하고,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의 질을 상당히 높여 이제는 웬만한 돈을 줘서는 먹을 수도 없는 고급 음식으로 만들었다. 단 하나의 조건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사람도 그렇지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어떤 자신만의 독특한 특색, 고유한 성격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시대에는, 혹은 어떤 장소와 상황에서는 그런 강한 특색이 장점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똑같은 것이 다른 곳에서, 다른 시간과 상황 속에서는 완전히 반대의 단점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마치 스위스의 절경과 퐁뒤처럼 말이다.


나는 지금 올바른 곳에 서있는 것일까? 

어떤 한 가지가 해결되어야 내가 가진 것이 더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어떤 것은 바꿀 수 있고, 어떤 것은 바꿀 수 없는 것일까? 

바꿀 수 없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지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퐁뒤를 먹으며... 잠시 사색에 잠겼다. 아마도 내게 퐁뒤가 너무 느끼했던 모양이다. 먹는 것에 집중할 수 없으니 생각이 이리저리 뻗어 이상한 데까지 다다랐다. 그래도 괜찮았다. 재미있었다. 맛있지는 않았다. 아마 내 첫 퐁뒤는 마지막 퐁뒤가 될 수도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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