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어느 여름의 기억
이것은 아주 오랜 날의 기억이다. 2008년 여름, 대학교 4학년, 막내이모의 지원을 받아 한 달간 네팔과 중국을 다녀왔다. 처음 2주는 네팔을, 다음 2주는 중국으로, 한 달 꼬박 외국의 어느 마을들을 돌아다녔다. 네팔을 갈 때에는 당시 이모가 <기아대책>이라는 NGO를 통해 후원하던 한 네팔 소녀를 방문하기 위한 목적을 겸했다. 중국 여행은 대학교 팀 선후배와 기도모임을 하다가 한인 선교사님들의 선교지를 방문하여 일손을 돕고, 각자의 개인적인 소명을 확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네팔에서 도착하자마자 인천공항의 한 벤치에서 쪽잠을 자고 다음 날 비행기로 홍콩을 떠나던 열정이 있던 때였다.
그것은 가족 없이 떠난 내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대학 4년 내내 나는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에 얼마를 보태야만 했다. 방학이 시작된 지 한 일주일이 지나면 나 스스로 혹은 가족들의 눈치에 못 이겨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서야 했고, 개강 일주일 전 즈음까지 계획 그런 일은 반복됐다. 그간 내가 한 일들이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주야간 근무를 하거나, 주유소에서 주야간으로 일하거나, 금속으로 된 기와를 굽는 가마에서 주야간 근무를 하는 일들처럼 육체적인 단순노동 현장이었다. 그렇게 일하면 대략 한 달에 150만 원에서 200만 원 남짓을 받았던 것 같다. 지방에 있는 작은 사립 4년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그렇게 일하고도 학비나 기숙사 비가 부족해서 매 학기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때문에 그리 인생의 여유를 느끼며 살지도 않고 쉼 없이 일했던 것 같은데, 늘 빚만 생기는 내 현실을 보며 대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끼곤 했던, 그런 때였다. 내 형편에 어떤 돈벌이를 하지 않고, 해외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를 더 잊을 수 없다. 내 대학 시절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해외여행을 했던 그 한 달을 말이다. 그 짧은 경험은 이후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돌려놓았고, 내 진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더 일찍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그때 그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런 마음으로 늘 가슴 한 켠에만 조용히 묻어 두었던 그때의 일들이다. 그러다가 그런 그때의 시간이 잠깐 생각이 났다. 그냥 흘려보내려고 했는데, 잠깐 줄로 묶어 곁에 두면 어떨까 싶어졌다. 사실 이미 희미해질 대로 흐려져, 빠져나갈 것은 다 없어진 얄팍한 기억일 뿐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당시의 설익었었던 풋기억들이 어느 정도 숙성되어 진액만 남은 몇몇 기억들일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서 몇 자 기억이 나는 대로 다시 끄적여본다. 내 이십 대의 한쪽 페이지에 희미하게 적혀있었던 그 순간 그때를.
이미지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