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는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독일에 먼저 도착해서 다섯 식구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이 소위 '의식주'라 하여 입을 것, 먹을 것, 살 곳이라 말하지만, 교육에 있어서도 이 '살 곳'은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 살 곳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 즉, '교육환경'과 깊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존 듀이, '모든 경험이 교육적인 것은 아니다. 경험은 연속성을 가지고 반복되어야 한다.
교육의 연속성에 비추어 볼 때, 살 곳(주변 생활환경)은
일상에서 쉽게 교육적 연속성을 획득하고, 교육적 의미를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경험 교육(Experiental learning)'의 기본적인 방법론은 당연히 '경험을 통해 배우다. 실제 행동을 통해 배우다(Learning by doing)'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말은 어떤 것이든 경험하기만 하면 끝이다는 말과는 다르다. 일테면 '경험 만능주의'는 아닌 것이다. 경험 교육을 체계화했던 실용주의 교육 철학자 존 듀이는 그의 저서 <경험과 교육>에서 "모든 경험이 교육적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경험이 교육적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그중 첫 번째 조건으로 '경험의 연속성'을 꼽았다. 경험의 연속성이란 어떠한 경험이 이후에도 다른 새로운 경험들을 생성해 내고, 또한 일련의 연관성 속에서 지속적인 결합을 만들어 낼 때 교육적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하면, 한 가지 경험이 단편성,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오늘날 자녀 양육이나 교육현장에서 많이 거론되는 '체험활동'으로 예를 들어보겠다. 자녀와 '딸기 따기 체험'에 갔다고 생각해보자. 이 활동을 준비한 부모, 혹은 교육자들은 이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고, 일상과 다른 환경을 경험하는 것이므로 신선하다. 게다가 생명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교육적인 함의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판단은 분명히 동의가 되지만 만약 그 경험이 한 번으로 끝이 난다면, 이후의 그 어떤 연속적인 활동의 경험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육적으로 유의미한 경험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그저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을 뿐이지, 다양한 경험들을 결합하고 의미화하는 작업을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짐짓 거창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독일에서 와서 처음 집을 구할 때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 무엇인지 공유하고 싶었다. 교육환경은 일상에서 교육 연속성을 획득하기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맹모삼천지교'로 유명한 맹자의 어머니 역시 자신의 자녀를 위해 교육의 환경을 선택하는데 많은 공을 기울이지 않았던가?
내가 처음 도착한 독일 도시는 '마르부르크(Marburg)'라는 곳이었다. 경험과 모험에 대한 석사과정을 지원하는 필립스 대학교가 이 도시에 있다. 마르부르크 자체가 큰 도시는 아니지만, 여느 도시와 같이 도심(Stadtmitte)의 개념이 있고 당연히 이 도심에 편의시설과 생활시설, 다양한 교육시설이 몰려있다.
편리하고 윤택하게 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나 역시 도심 부근에 집을 알아보기 위해 노력했을 터였다. 그러나 도심은 나에게 큰 매력이 없었다. 나는 우리 부분의 꿈만큼이나 자녀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찾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이웃이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물론 독일은 어디나 (우리나라에 비해) 이런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내 속에는 더 불편하고 더 훼손되지 않은 장소가 교육적으로는 더 의미 있는 곳 아닐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같은 이유에서 장 자크 루소 역시 초기교육은 도시보다 한적한 시골이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는 마르부르크보다 더 작은 앱스도퍼그룬트(Ebsdorfergrund)라는 곳이다. 마르부르크가 문화와 역사적인 건물이 많은 관광도시라면, 이곳은 거대한 농장과 목장이 있는 농촌마을이라 할 수 있다.
처음 이 곳을 알게 된 것은 이 집 식구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받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사귄 독일 친구가 식사에 초대를 받았는데, 나도 함께 데려가 주었다. 가는 길에 눈에 들어왔던 (아마도) 광활한 호밀 밭과 옥수수 밭, 그 지평선에 맞닿아 펼쳐진 파란 하늘의 풍광을 보는 순간부터 이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 고작 차로 10분 남짓 달렸을 뿐인데,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오른쪽 초장에선 말과 염소가 풀을 뜯고 있었고, 왼쪽 초목에선 양 떼가 거닐었다. 이런 모습을 아이들이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초대받은 호스트의 집이 굉장히 특이했다. 독일 전통 나무집이었는데, 4개의 집이 가운데 정원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처음부터 '공동체(Gemeinde)'에 관심을 두고 직접 지은 집이라 했다. 주인아저씨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였는데, 여러 젊은이들도 오랫동안 같이 살고 있었다. 하나같이 따뜻한 미소로 인사하고 먼저 이야기를 건네 왔다. 이 곳에 살면 좋은 독일인 친구, 아이들에겐 좋은 독일 이모 삼촌이 생기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정착해야 하는 낯선 환경.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아이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다.
사람이 깊이 소망하면 현실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고, 때마침 그 4개의 집 중 한 집이 비어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예전 거주자가 나가고 현재는 몇 군데 방을 공사 중인데, 두 달 뒤쯤에는 공사를 끝낼 예정이라 했다. 내가 어찌했을 것 같은가? 다음 주 나는 바로 이 집과 계약을 했다.
급하게 결정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나는 지금껏 내 결정을 후회해본 일이 없다. 이제 이곳에 살기 시작한 지 8개월 정도가 지났다. 살면 살수록 만족스러운 곳이다. 집 뒤에는 야크 농장이 있고, 조금만 걸으면 산책을 하기 아름다운 숲이 나온다. 가끔 숲에서 나온 여우가 우리 집 뒤 뜰에서 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굉장히 특이한 이런 모습들이 이미 아이들에겐 일상이 되어버렸다.
주변의 이웃들은 알면 알수록 따뜻한 사람들이다.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는 은퇴한 교육가였다. 할머니는 가족상담을 16년 넘게 하셨다고 한다. 다른 집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두 분의 자녀들, 혹은 자녀와 다름없이 가까운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기독교 정신의 사회복지시설과 학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은 옆집 이모, 삼촌과 휴일이면 정원에서 함께 요가를 한다. 유치원에 다녀와서는 옆집 초등학교 오빠와 뒷 뜰에서 술래잡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텃밭에서 물장난을 한다. 독일 명절 때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고, 엄마와 아빠는 잘 사주지 않는 초콜릿도 양껏 선물로 준다.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많은 사랑을 받는 이런 상황들도 아이들에게 일상이 되었다.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반복되는 경험들이 쌓이고 있다. 생활 속, 일상의 삶에서 교육적으로 유의미한 조건들이 갖추어지고 있다.
사실 독일에서 돈도 넉넉하지 않은 유학생에다가 다섯 식구의 집을 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 세입자가 조건을 따져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세를 제공하는 주인에게 많은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는 집에 단번에 들어갈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독일에서 집을 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수차례의 신청과 좌절을 맛본다고 들었다. 때문에 어디든 허락만 해주면 감사히 들어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언제나 분명한 지향점이나 방향성이 있어야만 그에 비슷하게라도 다가갈 수 있는 법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