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결국 내 '철학'은 내 '삶'으로 '증명'해 보이는 수밖에 없다.

by 독한아빠
창문으로 내다본 뒷마당. 하얗게 핀 체리나무의 꽃들은 한국과 비엿한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여리지만, 빛나는 찰나의 봄이다.


이따금씩 끝이 매서운 찬 바람이 불어왔지만, 하루 종일 노곤하게 내리쬐는 태양볕은 온 대기를 너끈히 데우고도 남았다. 4월. 이젠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봄, 봄이 되었다.


달력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계절을 실감하는 사람들과 달리, 숲과 들의 꽃과 나무들은 벌써부터 부지런히 잎망울을 틔우고, 꽃망울을 틔웠더랬다. 노랗고, 하얗고, 분홍빛, 연보랏빛, 갖가지 색들의 조각이 모여들어, 각양각색 연하디 고운 봄 세상이 지천에 완연했다.


부족한 '앎'은 때때로
'삶의 만족'을 주기도 한다.


지난주 이웃 아주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부리나케 인터넷 중고장터에서 자전거를 하나 구입했다. 여름이면 독일 초등학생들은 자전거 여행(Radtour)을 다닌다며, 적어도 첫째 자전거는 어서 구입해야 한다고, 매일 아침 나를 볼 때마다 어찌 그리 강하게 이야기하시던지.

'우리 아이들은 아직 자전거를 못 타는데.'

입 안에서 맴도는 말은 미처 밖으로 밀어내지 못하고, 저렴하게 나온 자전거를 연습용 삼아 얼른 구매해서 가지고 왔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끈한 새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신이 났다. 자기 자전거가 생겼다고 얼마나 '방방' 뛰던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는 것이 없는 것'은 이처럼 행복한 것이다.

나이가 들고, 아는 것이 많아지고, 보는 눈이 높아지고, 비교 기준이 다양해진 '똑똑한' 어른들의 눈으로 볼 땐, 마뜩잖고 부족하기 그지없는 자전거일 텐데. 아이들에겐 땅에 발을 붙이기 힘들 정도로 기쁨을 주는 선물이 되었다.


그 때로부터 매일 아침 산책길에, 어떤 이들이 강아지와 함께 집을 나서듯, 우리 집 아이들은 (아직은 제대로 탈 줄도 모르는 것이지만) 자신의 자전거를 한 손에 이끌고 나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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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 바퀴의 도움을 받아 빨리 달려가는 것?
스스로 균형 잡아가며 느리게 걸어가는 것?


그러고 보니 독일의 아이들 자전거에는 보조 바퀴를 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자동차에 '자동변속기'가 필수인 것처럼, 아이들 자전거에는 으레 '보조바퀴'가 달려있곤 했는데, 여기에선 그런 어린이 자전거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독일 부모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발로 타는 자전거(Laufrad)'을 구입해 준다. 생긴 건 꼭 두 발 자전거 같은데, 페달이 없어서 발로 걷거나 뛰어서 움직이는 자전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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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전거에 걸터앉아서 뛰고 걸노라면, 가끔씩, 몇 초 동안은 두 발을 모두 뗀 채로 중심을 잡는 경우가 생긴다. 바로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이 스스로 진짜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독일의 '걷는 자전거(Laufrad)'의 목적은 이렇게 '균형을 잡는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 주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몸에 충분히 쌓이고 나면, (보통은 초등학생부터) 보조바퀴 없이도 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다.


셋째도 옆집 할머니에게 손자가 쓰던 '뛰는 자전거(Laufrad)'을 받았다. 매일 아침 비슷하게 반복되는 셋째의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팽'하고 머리를 때리는 생각이 있었다.


'아, 한국에서의 교육은 어쩌면 좋은 보조바퀴를 찾으려고 애썼던 것일 수도 있겠다.'


한국의 일반적인 부모들은, (혹은 선생님들도) 우리네 아이들이 가능한 '꽃길'만 걸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가능한 한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은 실패 없이, 빠른 성공의 길로 나아가길 소망하는 듯하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나의 자녀들이 가능한 한 나와 비슷한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부모들은 아이들보다 먼저 앞장서서 장애가 될 만한 것들을 제거하기에 힘쓴다. 학군을 비교하고, 학교와 학원을 선택하고, 최대한 좋은 과외를 찾고, 여유가 된다면 다른 나라에 유학을 보내면서, 최대한 좋은 교육여건을 만들어 주려고 애쓴다.


마치 절대로 넘어지지 않고, 굳건히 서게 해 줄 '보조바퀴'를 찾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부모의 노력은 빛을 발하여, 그들의 자녀들은 실제로도 꼿꼿이 일어선 채로 빠르게 달려 나간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러하다. '쌩쌩' 신이 나게 달리는 자녀들의 '성공적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들은 아주 뿌듯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성공적인 겉모습 이면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망각된 진실이 있다. 그것은 그런 성공은 실은 '아이들이 가진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위기의 순간에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아 준 것은 '아이들의 균형감각'이 아니라 부모가 찾아준 '든든한 보조바퀴'였다. 혹, 이후에 보조바퀴가 힘을 잃고 쓰러지게 된다면, 그때엔 어떻게 할 것인가? 더 튼튼한 보조바퀴를 찾아서 달아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균형감각을 가지도록 미리부터 훈련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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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온아, 언니가 보니까 아빠가 손 놓더라.
아빠, 손만 믿으면 절대로 안돼!


사실 교육이란 넘어지지 않는 성공의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고 넘어질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최대한 안전하게 제공해주는 것이 되어야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서서' 걷고 있지만, 실은 이 '걸음'을 우리 몸에 쌓기 위해서 우리는 대략 2,000번은 넘어지고 쓰러져야만 했다. 무수한 '쓰러짐'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일어섬'을 몸에 익힌 것이다. 복효근은 그의 시 <고전적인 자전거 타기>에서 이 땅의 아비들은 '넘어짐으로 익힌 균형감각'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누구든 일어서기 위해선, 넘어져야 하는 것이다.


'경험 교육'의 사상적인 기반을 마련했던 장 자크 루소는 '교육이란 습관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인 양 착각하며 탄탄대로로 나아가는 것보다, 내 몸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습관들을 몸에 아로새기는 '실패의 경험'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럼 습관들이 몸에 가득 쌓인 사람은 훗날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역경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설혹 넘어진다 하더라도 어떤가? 적어도 크게 다치지 않는, '잘' 넘어지는 방법을 배웠을 것이다.


세상이 발전하고, 문화가 발달하고, 지식이 충만해지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들은 무수히도 많아졌다. 그것은 교육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 우리가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하나뿐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나의 인생을, 내 자녀의 인생을, 그 끝을 장담할 수 있을까? 혹 인생의 마지막 순간 '이 삶은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다시 선택하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결국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인생을 걸고 선택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우리 자녀의 삶을 '그나마' 자기 목숨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진심으로 책임져주고 싶어 하는 것이 부모이겠지만 (사실, 이런 이유로 루소는 부모가 최고의 교사라고 말하였다.) 그런 부모 역시 자녀의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 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정말 책임 있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힘을 다해 전해주어야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누가 교육의 '이상'을 말하는가? 누가 교육의 '정답'을 말하는가? 누가 한 인생의 성공을 예단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


나라고 정답을 알겠는가? 내 자녀의 미래를 내가 장담할 수 있을런가? 오늘 나의 선택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인가? 나라고 어찌 알겠는가? 아니, 정작 나의 현재와 미래조차 나는 스스로 장담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내가 믿는 바대로 살아보는 것이다. 그저 내가 '지금 이 순간' 믿고, 확신한 바를 따라 걸어갈 뿐이다.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결국 내 '말'은 내 '삶'으로 증명해 보여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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