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비로소 始, 적다 作
글을 써야지 마음을 먹고 나니,
머릿속에 다양한 소재가 팝콘처럼 튀어나온다.
불세출의 명작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작품이 나오리라.
은근한 기대로 마음이 고만 흐뭇해진다.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고 보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한 참을 고민하다 겨우 한 문장을 썼다.
그러나 이내 지웠다.
마음에 차지 않았다.
할 이야기는 많은데,
너무 많아서
도리어 어떻게 꺼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고민 고민하다가, 결국 되는 대로
비로소 始(시)
'딱, 이거다' 싶은 첫 문장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시작은 했다.
그것도 꼴에 시작이라고,
한 글자 적고 나니 제법 술술 내려간다.
그렇게 한참동안 신나게 말들을 쏟아내었는데,
처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아, 어떻게 해야 하나?'
눈물을 머금고 다시 글들을 지운다.
다시 내 눈에는 처음같은 백지만 남아있다.
슬프지만 다시 시작.
비슷한 듯 다르게, 다른 듯 비슷하게.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한참을 그렇게
생각 따라 마음 따라 글자들을 쏟아냈다.
드디어.
마지막 마침표.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조악한 글뿐이지만, 그래도
백지 위,
제 멋대로 그려놓은 복잡한 검은 선 안에
내 생각이 담기고.
내 삶이 담기고..
내 자신이 담기고...
그러고 보면 글자는,
글은 참 신기한 것 같다.
비록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조악한 글뿐이지만,
지금의 내가 그대로 담겨있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느 때든, 어떤 것이든
일단 始(시)
적고 보면 作(작)
제대로 '수지' 맞는다.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de/photos/schreiben-kugelschreiber-ink-pen-4745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