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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Apr 15. 2022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우연히 차에서 듣게 된 노래로부터...

"** 아, 일어나! 간단히 과일이라도 먹고 씻어."

"..."

"**아, 이제 진짜 일어나야 해!"

"응..."

"아직도 안 일어났어? 빨리 하라고!!"

"알았다고."


고3, 중3이 있는 우리 집 아침 공기는 무겁다. 딸은 그래도 두 번 정도 말하면 일어나지만 아침잠 많은 아들은 최소 다섯 번 정도 일어나라는 소리를 반복해야 한다. 하기도 싫고 듣기도 싫은 그 말을 몇 번씩 반복하는 동안 처음엔 부드러웠던 내 목소리도 점점 감정을 싣느라 거칠어진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아들이 욕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서야 마음이 놓이는 나... 피곤하고 힘든 걸 모르진 않지만 좀 받아들이고 견뎌주면 좋으련만,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아닌데 이런 사소하고 기본적인 습관으로 실랑이를 할 때마다 내가 너무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 데다, 피곤과 짜증이 뒤섞인 아이들의 아침 표정은 내 마음까지 무겁게 만든다.


또 한편으론, 한참 잠 많은 시기라 그렇지, 유난히 어제 더 힘들어서 그렇겠지라며 간단히 생각할 수도 있는 건데 그런 일에 화내고 심각해지는 내가 솔직히 마음에 안 들 때가 많다. 한 시간 남짓한 아침 준비 시간에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날의 일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진다. 동선상 작은 아이를 먼저 내려주고 큰 아이 학교로 가서 아이를 내려주는 시간은 8시 30분에서 35분 사이... 아이가 내리자마자 클래식 FM 채널을 튼다. 이젠 내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는 시간이므로...


며칠 전에는 라디오를 틀려다가 블루투스를 연결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노래를 틀었다. 첫 번째로 저장되어 있는 곡을 듣고 다시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려고 뒤로 돌리다 보니 실수로 맨 마지막 노래가 나왔다. 디셈버의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이라는 응팔 OST이기도 했던 그 곡이....

tvN 응답하라 1988 중에서

원곡은 변진섭의 1집 앨범, 무려 1988년에 발매되었던 그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홀로 된다는 것', '새들처럼'과 함께... 공부하다 쉴 때 들으라며 엄마가 사주셨던 변진섭 1집 앨범, 요즘은 나오지도 않는 카세트테이프 앨범이었다. 당시엔 수록곡 이외에 필수로 들어가야 했던 건전가요, 종이에 적혀 접힌 가사집까지 같이 들어있었는데, 우연히 듣게 된 그 노래 때문에 지금 우리 딸보다도 더 어렸던 1988년 나의 여중 1학년 시절이 함께 떠올랐다.


1988년, 살던 동네를 떠나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우리 가족의 이사에 근처 여중으로의 배정을 염두에 둔 엄마의 계산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새로운 집과 새로운 학교에서 뭔가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이 굉장히 강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 이유즁 하나는 아마도 너무나 싫었던 6학년의 시간을 벗어났다는 느낌 때문. 졸업과 동시에 이사, 모르는 친구들과의 만남, 낯선 중학교... 변화를 싫어하는 내 성격상 그런 요소들은 하나도 환영받을 게 못 되는데 그땐 그런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6학년 때 원치 않았던 반장을 하느라 은근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어서 빨리 6학년을 끝내고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단 생각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사춘기를 크게 겪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제 보니 그때 이미 사춘기였나 보다.


그렇게 전혀 모르는 친구들과 시작한 여중 1학년... 일단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없어 마음이 편했고 영어를 가르치셨던 중1 때 담임 선생님도 너무 좋았다. 한 달에 한 번 월말고사, 중간과 기말고사, 수시로 보는 쪽지시험이 있었지만 힘들기보다는 재밌었고 예습 복습까지 해가며 참 열심히 했었다. 재수 없게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했고, 집에서도 할 게 있으면 거실에 티브이 소리가 들려도 절대 흔들리지 않았었다 그때의 나는...(여고 진학 후 처참히 무너졌음을 미리 밝힘)


반 친구들이 내 시험지로 정답을 채점하는 일이 당연한 일이 되다니, 스스로도 놀라웠다. 6학년 때까지만 해도 반장임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공부에 별 흥미도 못 느끼던 나였는데, 그때의 나를 지우고 싶기라도 한 듯 공부에 열을 올렸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니 뿌듯했고, 선생님들에게 눈에 띄는 학생이 되었으며 고교 평준화가 없었던 시절, 지역 명문고 입시를 위해 학교에서 따로 편성한 반에도 뽑혀 들어갔다.


일 끝나고 들어온 엄마에게 하루 종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었다. 심지어 화장실 앞에까지 따라다니면서, 선생님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등등 내가 그날 기억하는 모든 일들을 다... 친구들과도 무난하게 지낸 편이긴 했지만 본격적인 친구들과의 갈등은 중2 후반부터였으니, 중1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참 평온했던 것 같다.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가야 하는 아침 등교시간도 물론 괴롭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 아침도 먹고 옷도 깔끔하게 차려입고 기분 좋게 집을 나섰던 여중 1학년 나의 모습, 들고 다녔던 가방 색깔, 아침 시간 동네 풍경, 팬시와 문구가 가득했던 학교 앞 문방구까지 그 시절의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내 중1 시절을 떠올리면 이렇게나 미소가 지어지는데 우리 아이들의 중1 시절, 그리고 지금은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웃음 나는 장면도 떠오르지만 어쩐지 씁쓸해지는 이 기분... 정해진 모습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옛날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 그때의 나와 지금의 아이들의 모습을 같이 놓고 보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엄마로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쯤에서 오해는 금물. '나는 그때 알아서 잘했는데 너희들은 왜 그러니'라는 비난의 말을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게 절대 아니다. 되려, 그런 내가 키운 내 아이들에게서는 내가 느꼈던 '자율'과 '기쁨'이 빠진 것 같다는 생각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라는 자책으로 마음이 복잡해지는 거다.


솔직히,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쏟아부으며 키웠다. 아이들의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종종거렸다. 눈치채지 못하게 뒤에서 알아보고 종교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어도 지혜를 달라고 매일 열심히 기도했다. 관계가 망가지면 그나마도 더 무너지니 아이들 생각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름 소통에도 신경 썼다. 솔직히, 고리타분한 내 방식이 정답도 아닌 데다 개성 강한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힘에 부쳤고, 부딪히기 싫은 마음에 앞에선 "네가 알아서 해, 스스로 선택해, 널 믿어."라는 입에 발린 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건 믿는 척을 한 거지 믿은 게 아니었고 앞에서 했던 말이랑은 다르게 뒤로는 그런 아이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더 불안해했다. 더 비겁한 건, "그것 봐, 너희들 마음대로 그렇게 하니 지금 이렇게 힘든 거야."라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아이들에게 넘겼다. 물론 속엣말이었지만 아이들은 알았겠지. 내 말투와 내 시선으로부터... 답답한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다.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되어 지난 이 시간을 떠올리면 어떤 기억이 떠오를까? 아이를 키우며 그 옛날 나의 모습과 우리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일하시면서 아침마다 도시락 몇 개씩 싸며 나와 내 동생을 키우던 우리 엄마의 모습이 자주 오버랩된다. 그때의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는데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혼자 다 알아서 했을까? 가끔 묻는다 엄마에게... "옛날에 나 키울 때는 어땠어?"라고... "넌 거저 키웠어."라며 말하시지만 그건 엄마의 마음밭이 넓어서라는 거... 내가 더 잘 안다. 힘들었던 기억은 다 솎아내고 좋은 기억만 남긴 엄마의 마음밭.


가끔, 아이들 어릴 때 사진을 본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해맑은 얼굴의 유치원 시절!! 아이들 뒤꽁무니 쫓아다니며 뒷바라지해 줄 그런 시기는 이미 지났고 이젠 정말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그들의 시간이다. 다 말하지 않아도 자기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을 테고, 그런 생각들에 지쳐 힘든 걸 테고... 그래도 풀 데가 없으니 제일 만만한 엄마에게 화내고 짜증내고 징징거리는 것도 안다. 오늘만 살고 말 게 아닌데 더 큰 건 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일들에 대범하지 못하는 내가, 알면서 받아주지 못하는 내 모습에 화나는 것일 뿐...


자꾸 확인하려 하지 말고 지켜보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그 말, 알면서도 지키기 어렵고 정말 그래야 하나 자꾸 의심하게 되는 그 말을 무거워진 가슴에 꾹꾹 눌러 담는다. 노래 제목처럼 지금 이 순간,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인가 보다. 요즘 부쩍 주변 친구들 일로,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여러 가지 준비들로 부쩍 스트레스가 심해진 것 같은 아들, 그리고 고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은 딸... 부정적인 생각들, 무기력한 마음을 떨치고 스트레스도 건강하게 잘 풀어주고 싶은데 엇박자 내지 않고 잘할 수 있을까? 다양한 색깔의 사랑 가운데 이왕이면 반짝거리고 블링블링한 그런 사랑만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어찌 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 쌓여가는 오늘이다.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 변진섭, 디셈버

표정 없는 세월을 보며
흔들리는 너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내가 미웠어

불빛 없는 거릴 걸으며
헤매이는 너에게
꽃 한 송이 주고 싶어
들녘 해바라기를

새들은 왜 날아가나
바람은 왜 불어오나
내 가슴 모두 태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오직 사랑뿐

새들은 왜 날아가나
바람은 왜 불어오나
내 가슴 모두 태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네게 줄 수 있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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