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청소기를 허하라!

- 2020 중학교 교단일기

by 까미노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이었으면 좋겠어.”

“왜?”

“그러면 청소 안 하잖아.”

지난해,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주말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했던 얘기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는 아들 둘은 토, 일요일에 각각 집안 청소를 도맡는다. 고작 일주일에 한 번인데 어떻게든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려 시간을 질질 끈다. 결국 큰 소리가 한 번 나야 입이 한 주먹 정도 튀어나온 상태로 청소를 시작하는데 하는 아들들보다 시키는 부모가 더 힘들 정도다.


우리의 부모 세대에 비해 지금은 가정에서의 남녀 역할이 딱히 구분되지 않듯, 두 아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했을 때는 더욱 그럴 수 있기에 재작년부터 주말마다 두 아들에게 집안일을 시키고 있다. 첫해는 재활용품 분리배출로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집안 청소까지 맡겼다, 내년에는 설거지도 시킬 생각이다. 두 아이는 다 귀찮아했지만, 특히 청소를 싫어했다. 그런데 요즘은 주말이 돼도 궁시렁거리지도, 싫은 내색도 않고 흔쾌히 청소기를 집어 든다. 갑자기 철이 들어 힘든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생겨서도 아니고, 물질적인 대가를 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달라진 원인은 아무리 찾아도 딱 하나다. 도구. 유선에서 무선으로 바꾼 청소기다.



20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학교의 ‘청소함’

올해 7년간 근무한 학교를 떠나 경기 시흥중에 부임하게 됐다. 교사가 된지 21년차인데도 새 학교는 늘 설레고 긴장된다. 코로나19로 세상이 시끄럽지만, 학교는 그리고 교사는 새 학기 준비에 여념이 없다.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는 발표를 듣고, 교실부터 찾았다.

자유학년제로 인해 지필고사 안 보는 1학년, 과정 중심 평가, 학생 중심 수업 등 학교가 예전보다 많이 달라졌지만, 교실은 수십 년째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자태를 뽐내는 것은 교실의 청소함이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교실 뒤편에 여전히 자리한 청소함을 열어 보았다. 1년을 사용한 빗자루의 솔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파마와 염색을 했다가 개학을 앞두고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은 큰 아들의 머리카락보다 더 상해 있었다. 먼지를 쓸고 치우는 용도가 아니라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를 붙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짐작할 정도다. 이 좋지도 않은 빗자루를 올해 우리 반 아이들, 빗자루 질은커녕 방 청소도 ‘엄마 손’에 맡겼을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집어 들고 청소를 한답시고 쓸어댈 것이 아닌가. 운동장, 복도, 교실, 급식실, 화장실 등 교내 곳곳을 뛰어다녔던 신발에서 떨어진 흙가루와 먼지들이 흔들어대는 빗자루에 뿌옇게 일어나 교실을 뒤덮어도 학생들은 교사가 “창문 열고 청소해라”라고 말하지 않으면 자신의 입속으로 그것들이 고스란히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떠들며 청소라는 것을 할 터다. 청소하는 시늉만 겨우 한 교실에서 깔끔한 친구들은 교실이 지저분하다며 투덜거릴 수도 있다.


학생 위한 이 시대의 ‘빗자루’가 필요하다

지금 집안 청소를 위해 빗자루를 둔 집이 얼마나 될까? 당장 우리 집만 해도 20년 넘게 집안 청소할 때 빗자루를 쓴 적이 없다. 그러니 중학교 아이들에게 빗자루는 칼싸움을 할 때 쓰는 장난감으로 익숙하지, 청소도구로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이 어색한 도구인 빗자루가 집안에서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청소에 대한 교육도 시나브로 사라진 듯하다.


“청소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몸을 움직여 주변을 보살피는 배움의 기회를 준다. 나는 학생들이 청소를 통해 자신의 공간을 정돈하는 능력을 키우고, 그 능력이 때로는 가사노동으로 혹은 누군가를 위한 돌봄 노동으로 전환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청소를 놀이처럼>(지은이 이광연) 중 일부 발췌)


청소의 교육적 의미를 되찾기 위해서도 이제 교실에 청소기가 필요한 때다. 아니 진작 들어왔어야 했다. 담임교사가 상주하는 초등학교에는 교실에 청소기를 두고 사용하기도 한다. 중학교에서도 특별실에서 청소기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교실에는 여전히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청소함의 터줏대감이다. 얼마나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일인가.


그렇다고 교실마다 100만 원 넘는 고급 무선청소기를 놓자는 것은 아니다.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고, 담임이 상주하지 않는 중학교 교실은 관리의 어려움도 있다. 자신의 공간을 자신이 정리하는 것을 생활에서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저 5개 반에 한 대 정도의 사무용 대형 청소기가 있으면 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청소기로 묵은 먼지를 빨아들이고, 나머지는 빗자루로 가볍게 쓸어내리는 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 정도의 변화가 무슨 의미가 있냐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겠지만, 당장 모든 교실에 청소기를 비치할 수 없으니 우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청소기의 필요성을 체감하면, 학교 구성원들이 공감하기 시작하고, 이 공감대가 학교 예산을 편성할 때 반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선풍기만 있던 교실에 에어컨이 들어온 것처럼. 온 교실에 청소기가 들어오면 아이들은 지금보다 청소를 덜 어려워하고, 교실은 겨울마다 감기를 옮기는 온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교육이나 제도 이상으로 환경도 중요하다. 그런데 학교, 특히 교실의 환경은 ‘변화’에서 늘 비껴나 있었다. 좀 더 중요한 혹은 거대한 담론에 담기는 작은 것이어서인지, 혹은 한 눈에 보이는 성적이나 성장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매일매일 생활하는 ‘일상’은, 성장기 아이들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친다. 사전은커녕 포털사이트도 아닌 유튜브에서 정보를 찾는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솔 사이사이 먼지 덩어리가 가득한 빗자루는 어울리는 도구도, 꼭 필요한 도구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론 학생들의 건강과 생활교육을 위해 교실 청소는 꼭 필요하다. 다만, 귀찮거나 대강 시늉만 하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지금 시대에 맞는, 2020년의 빗자루를 쥐어 줄 때가 아닐까. 그리고 이제는 교실 속 또 다른 유물들도 바꿀 필요가 없는지 학교 안팎의 어른들이 머리를 맞대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시대에 맞는 학교가 되려면 일상에도 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