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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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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Mar 19. 2023

벌서는 반장

4학년 선배까지 통틀어 그 후배가 유일했다, 차를 타고 등교하는 우리 과 학생으로는. 수업이 끝나면 가끔 그 후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학교에서 꽤 떨어진 자취방에 놀러 갔었다. 그러다 우연히 책장에 꽂힌 시집을 발견했는데 제목이 ‘벌서는 반장’이었다. 그 후배의 모가 쓴 것이라고 했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반장이 (예전에 교실에서 사용했던) 나무 의자를 들고 교실 한쪽에 무릎 꿇고 벌을 서고 있는 모습이 표지에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해 내려고 해도 제목만 기억날 뿐 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선생님이 잠시 나간 동안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지 않았다며 앞으로 나와 벌을 섰던 초등학교 때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어 시를 읽으며 몹시 안쓰러웠던 마음만 남아 있다.     

 

3월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급 임원 선거(이하 반장선거)가 진행된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그 진행 과정에서 다른 학교와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첫째, 반장선거가 3월 한 달 내내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학기가 시작되면 담임 주도하에 공고가 이루어지고, 1~2주 안에 투표까지 시행하여 반장이 정해진다. 그런데 우리는 3월 말경에 투표를 시행한다. 이것은 내가 학생부장 때부터 달라진 진행방식이다. 새로운 학급이 구성되면 아는 학생들보다 모르는 학생들이 더 많다. 특히 중학교 1학년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서로 어떤 성향이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급히 선거가 치러지다 보니 잘못 뽑은 반장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학급이 꽤 있다. 그래서 최대한 투표 시기를 늦춰서 입후보한 학생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했다. 그리고 정식 후보로 등록하기 전에 예비후보 등록 기간을 두어 ‘임시 반장’의 역할을 미리 경험하는 과정도 있다.   

  

둘째, 선거의 전반적인 진행을 학생자치회의 ‘민주시민위원회’에서 맡고 있다. 물론 학생자치 업무를 맡은 ‘인권자치부’가 학생자치 선거의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가고 있지만, 세세한 것은 민주시민위원회의 학생들이 맡고 있다. 학급 임원 선거를 진행할 선관위 학생들을 소집하여 선거과정에서 등장하는 생소한 용어(러닝메이트, 결선투표제 등)에 대해 교육하고, 학급 임원 선거의 중요성에 대해 콩트 형식의 동영상을 만들어 안내하고 있다.     


셋째, 반장선거가 각 학급의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교육활동의 일환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격주로 있는 학급 자치활동 시간을 활용해 ‘우리 반에 꼭 필요한 반장은 무엇이고, 어떤 반장을 뽑아야 하는지’를 각자 활동지에 적고 이를 공유하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올해도 이 시간에 쓸 활동지를 놓고 고민하던 인권자치부장이 교사들이 있는 대화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동안 했던 활동지는 맨날 뽑아야 하는 친구에 대해서만 하니까 두루뭉술하게 뻔한 이야기만 나오는 거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달라.’     


담임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의견을 낼 것이라 생각해 다른 관점에서 반장선거를 봤으면 좋겠다며 몇 자 적었다.     


우리는 학급 임원 선거가 왜 필요할까?

담임이 생각하는 반장, 부반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혹시 담임 편하려고 반장을 두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물음도 함께 담겨 있었다. 매년 잘못 뽑힌 반장 때문에 본인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담임을 만나게 되니 말이다.  

   

이제는 학급이 교사의 학급경영 능력을 발휘하는 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치에 대해 배워가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작은 3월에 진행되는 반장선거부터다. 그렇다고 선거의 전 과정을 아이들에게만 맡겨 놓자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보고 듣고 배운 대로 행동하기에 초등학교 과정에서 학급자치의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라면 오히려 학생들에게만 맡겨두었을 때 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가끔 역량이 없는데도 달콤한 공약을 내세운 후보가 당선되거나 골탕을 먹이려고 능력도 안 되는 후보를 뽑아놓고 1년 내내 놀리는 학급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교직 10년 차쯤 학생부장을 맡으면서 학생자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학급 임원 선거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학급 임원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학급구성원이 학급 내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활동을 통해 스스로 클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 아이들이 부모와 담임 등 누군가에게 의지해서만 살아갈 수 없으니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학교에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게 자치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올바른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초등학교 교실, 3월의 반장선거에서부터 자치가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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