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순례길을 걷지 않아도 되어서 그런지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새벽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래서 늦게 일어났는데도 개운하지 않고 머리가 띵하다.
12월 23일 생장에서 시작한 두 번째 까미노는 해가 바뀐 1월 18일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으로 프랑스길 완주를 했으며 그것을 스페인에서 증명해 주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멈추고 싶지 않아 약 120km를 더 가 묵시아와 피스테라까지 걸었다.
이렇게 걷기를 마치고 오늘은 버스를 타고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왔다. 이곳저곳을 들리는 완행버스라 3시간 정도 걸렸다. 한 달 넘게 두 다리 외의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가볍게 멀미가 일었다.
'완행버스도 3시간이면 오는 길을 3일(Santiago-Fisterra)에 거쳐서 갔었구나!'
지난 1차 산티아고 때는 버스 타고 온 시간이 더 짧았던 거 같아 라시에게 물어보니 직행은 1시간 반이면 온다고 했다.
7.2유로
완행 3시간(직행 1시간 30분)
가끔 구글 지도로 숙소의 위치를 검색하다 보면 '도보'가 아니라 '승용차'의 경로를 보여줄 때가 있다. 어느 날 보니 도보로 7시간 갈 거리를 차로는 20여 분이면 갈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하지만 곧바로 생각을 고쳐 먹었다.
'걸으니 자세하게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아.'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오래 담아둘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 어딨어.'
만약 세 번째 산티아고도 이번처럼 프랑스길을 걷는다면, 짧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평균 걷는 거리 40km.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4시에 출발하면 머리가 벗어질 만큼 뜨거운 스페인 태양에 조금은 덜 노출되고 오후 2시경엔 걷는 것을 마칠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면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20일, 출국과 귀국일을 고려해도 24일 정도만 확보되면 산술적으로는 충분히 완주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너무 늦지 않게 여름까미노를 만나고 싶다. 가을과 겨울에 걸었던 까미노와는 전혀 다른 선물을 받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