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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Jan 26. 2024

친구를 위해 넌 어디까지 할 수 있니?

비닐 봉다리 하나 들고 헝가리 친구집으로 2일 차

이른 아침부터 밖은 분주하다,

아직 알람을 맞춰 놓은 6시 반이 안 되었는데.

남의 집에서 너무 일찍 일어나 돌아다니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침대에 누워서 계속 시간을 보고 있었다. 마침 아래층에서  라시의 가족들 소리가 들려온다. 이젠 나가봐도 되겠지.


둘째 아들 다비드가 이미 씻은 얼굴로 "Good morning"한다. 7시도 안 되었는데 학교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다 아빠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더니 다시 "Good bye" 하고는 간다.

"다비드, 지금 학교 가는 거야?"

그렇단다. 여기는 7시쯤 학교 가는 중학생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의 아내이미 6시에 출근해서 집에 없었다.

첫날 공항에서 시간을 꽤 보내 오후 4시가 넘어 라시의 집으로 향했는데 라시가 차의 시계를 가리키더니 "여기는 5시만 되면 어두워." 한다.

정말 그렇다. 5시 조금 넘어서 그의 집에 도착했는데 조명 없이는 현관문을 열 수가 없을 만큼 금세 어두워졌다. 직장인들도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가장 많이 퇴근을 한다고 하니 여기는 우리보다 2시간 일찍 시작하고 2시간 빨리 하루를 마감하는 거 같다.


오늘 그의 안내로 부다페스트 중심가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시내 대형쇼핑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나중에 그가 시계를 보더니 "오늘도 까미노야. 거의 18km를 걸었어."하며 웃는다.

공항에 어제 못 받은 내 배낭을 찾으러 가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늘 20km는 족히 걸었을 거 같다. 뉴스에서 크게 다룰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어 걷는 게 쉽지 않았다. 배낭없이 걸었는데도 피곤함은 까미노를 마쳤을 때와 비슷하다.

저녁 먹기 전엔 라시의 친구들을 만나 차 마시며 이번 까미노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헝가리 음식도 그의 큰아들과 같이 먹었다. 

"헝가리에 있는 동안  돈은 절대 쓰지마.  손님이니까."

그런데 더 결정적으로 이 글을 쓰게 만든 건 그가 내게 아파트를 통째로 내줬다는 것이다.

"이틀 동안 새 아파트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해줄게."

최근에 그의 아들을 위해 구입했다는데 아직 세간살이가 다 들어온 것은 아니라 깔끔하게 정리되어 마치 팬션에 놀러온 느낌마저 난다.

"우리 집에는 일찍 일 나가는 아내와 학교 가는 아들 때문에 네가 지내기에 불편할 거 같아서."

언젠가는 그의 가족이 우리나라에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오면 어떤 음식을 맛보게 해 주고, 어디를 구경시켜 줄까를 계속 그려본다.

그런데 그처럼 며칠씩 회사에 휴가를 내고 친구위해 들어가는 온갖 비용과 시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까지 온전히  해줄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극진하게 보답할 것이니 그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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