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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7일차:순례길, 헤어짐에 익숙해지기

로그로뇨 ~ 나헤라 : 29.6km

by 까미노

어제 저녁 먹기 전부터 프란체스코가 보이지 않았다. 광장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에디타에게 물어보니 “프란체스코 여자 친구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차는 많이 망가졌지만 다행히 여자 친구는 많이 다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며 프란체스코가 자리에 함께 하지 않는 이유를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내일 이탈리아로 갈 거 같다고 했다.


내가 에디타의 얘기를 정확히 이해했는지 몰라 나중에 프란체스코에게 물어보니 여자 친구의 교통사고 얘기를 하면서 아무래도 여자 친구를 만나러 이탈리아로 가야 될 거 같다고 했다. 6일 동안 함께 걸어서 좋았는데 헤어지게 되어 아쉽다고도 했다.


프란체스코가 떠나는 날 아침에 ‘라이스 샌드위치’를 후라이팬에 살짝 구워서 줬더니 ‘한국식 샌드위치냐?’며 묻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맛있다고 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프란체스코가 짐을 싸고 있다. 아직 5시밖에 안 됐는데 그는 우리보다 먼저 나가야 하나 보다. 잠이 덜 깼지만 그를 빈속에 보내기가 서운해서 어제 만들어 놓은 ‘라이스샌드위치’를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구웠다. 접시에 두 개를 담아주며 먹고 가라고 했더니 “한국식 샌드위치냐?”고 물으며 자리에 앉는다. 그가 먹는 것을 보고 출발 준비를 위해 짐을 챙기고 다시 왔더니 그는 빈 접시만 덩그러니 싱크대에 담가 놓고 떠나고 없었다. 가는 모습도 못 봐서 내내 아쉬웠다.


그가 없어서 그런지 출발하고 한참 동안 우리는 조용히 길만 걸었다. 그가 있었으면 휘파람을 불거나 톤이 높은 이탈리아 특유의 억양으로 분명 무슨 말들을 했었을 것이다. 독수리 5남매의 빈자리는 어제부터 동행하게 된 헝가리 여인 아그네스가 채우고 있다.

그녀는 31세, 나이에 비해 조금 들어 보이지만 분위기는 거의 20대만큼 생기발랄하다. 어제 로스 아르코스부터 함께 걷게 됐는데 출발부터 오른쪽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그래서 끝까지 함께 걸을 수 있을까 했는데 절대 뒤쳐지지 않고 오늘도 우리랑 속도를 맞춰 걸었다. 그녀는 모국어 외에도 영어와 스페인어도 잘 해서 외국어에 약한 나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오늘 숙소는 로그로뇨에서 30km쯤 떨어진 나헤라Nájera인데 저 멀리 마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리가 다른 날보다 엄청 무거웠다. 겨우겨우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바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숙소 근처 식당에서 12유로에 ‘순례자 메뉴’를 시키고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2잔 마셨다. 그리고는 저녁과 내일 먹을 식재료를 사기 위해 동네 마트를 찾아갔으나 다들 ‘씨에스타Siesta’로 인해 문이 닫혀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 우리나라는 이런 정책을 정부 주도로 한다고 해도 분명 이 시간에 틈새를 공략하기 위해 문 여는 가게들이 있을 법도 한데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잘도 지키고 있는지 궁금했다. 결국 장 보는 것을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한 잔 더 시켜 먹었다. 그리고는 숙소에서 1시간만 쉬다가 다시 문 여는 6시에 가자고 해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볼라쉬가 아그네스와 얘기 나누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잠깐 잔 거 같은데 밖이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분명 1시간만 쉬다가 장보러 같이 가자고 했으니 나만 빼고 그들만 다녀오지는 않았을 텐데. 느낌이 이상해서 일어나보니 침대 머리맡에 하얀 비닐봉지가 있고 그 안에 바게트 빵과 햄이 들어있다.

'이들이 곤히 자는 나를 깨우기 미안해서 자기들끼리만 다녀왔구나!'


볼라쉬에게 비닐봉지를 들어 보이며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예상과 같은 말이 나온다. 잠시 후 라치도 방에 들어오며 “네가 깊이 자는 거 같아서 우리가 내일 아침에 먹을 거를 사왔어.”라고 말했다.


사실 내일쯤 이들과 헤어지려고 했다. 이들은 나보다 여행 일정이 조금 더 길어서 10월 6일까지 마드리드에 가면 돼 내일도 20km만 걸을 계획인데 그렇게 걸으면 난 이달 안에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 이들이 내게 한 배려를 보니 “내일부터 혼자서 가겠다.”는 말을 못 하겠다.


그런데 에디타가 다가오더니 자기는 내일 일찍 출발해서 40km 정도 갈 거란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하다가 그 생각을 좀 전에 접고 내일까지는 함께 하려고 했는데 에디타가 나보다 먼저 우리 곁을 떠나려나 보다. 그래서 번역기로 내 뜻을 전달했더니 한참 고민하다 “내일 아침에 결정하겠다.”며 잘 자라고 하고는 갔다. 어찌 됐든 독수리 5남매는 곧 각자의 길을 가게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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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7_141830.jpg 하루 종일 걷고 나면 만사가 귀찮아지는데도 팀원들을 위해 자신이 잘 하는 분야로 식사를 준비했다. 단순히 길만 같이 걸었다면 우리는 절대 한 팀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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