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삶의 모든 변수를 깔끔하게 통제해야만 안심하는 사람이다. 계획의 톱니바퀴가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야 비로소 평화로운 기분을 느낀다. 마치 견고하게 지어진 성벽 안에서 사는 듯. 그런데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사고는, 그 단단히 짜인 내 세계관의 벽을 한순간에 허물어뜨렸다.
수술, 집중 치료, 재활. 예측 불가능한 병원비는 댐이 무너지듯 쏟아져 내렸다. 외벌이 월급과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당으로 반년을 버텼지만, 추석 명절휴가비가 들어오기까지 남은 며칠의 공백은 결국 버팀목이 부러지는 소리처럼 다가왔다.
만기가 다가오는 예ㆍ적금을 깰 것인가, 신용대출을 받을 것인가. 바닥에 내려앉아 막막함을 끌어안고 고민하던 찰나, 아내가 먼저 100만 원을 보내왔다. 코로나 이후 벌이가 시원치 않았던 아내에게 그 돈은 지난 세월 홀로 견뎌낸 시간의 물성(物性)이 응축된 쌈짓돈이었을 것이다. 그 돈이 가진 무게 앞에서 고맙고 미안하여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나 그 돈으로도 남은 며칠의 막막함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었다. 통제를 잃은 삶은 이렇게 매 순간 예측 불가능한 숫자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때, 며칠 전 큰아들이 툭 던졌던 말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엄마, 아빠, 추석 선물로 제가 40만 원씩 드릴게요.”
내년 초로 예정된 한 달간의 일본 자유여행 목표액을 채웠다며 동생 휴대전화 교체 비용까지 일부 지원하겠다 너스레를 떨던 큰아들. 그 기특함과 나의 절박함 사이에서 부모로서의 망설임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가 아닌, 긴급한 상황에 처한 ‘한 경제 주체’가 되어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명절휴가비 들어오면 갚을 테니 100만 원만 빌려줄래?’
‘알겠어요’라는 빠른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집에 가서 이야기해요’라는 짧고 냉정한 답장이 돌아왔다. 순간 서운함이 일었지만, 돈을 대하는 아들의 신중한 태도 앞에서 부끄럽게도 안도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 사실을 안 아내는 “여보, 아무리 그래도 자식한테는 돈 빌리지 맙시다.”라며 강하게 선을 그었다.
“어차피 나중에 손 벌리게 될 텐데 뭘?”
“그건 그때 가서고. 아무튼 지금은 아닌 거 같아.”
그 말속에는 자식에게 짐을 지우지 않으려는 아내의 무거운 의지가 서늘하게 담겨 있었다. 아내는 결국 ‘이게 정말 다야!’라는 침묵의 표정으로 다시 100만 원을 보내주었다. 이제 아들의 돈은 실질적인 필요가 사라졌지만, 나는 이미 던져진 질문처럼 그 100만 원을 기어코 아들에게 빌렸다. 그리고 일주일 후, 명절휴가비가 들어오자 100만 원에 이자 5만 원을 더해 갚았다.
아내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어?”라고 물었다. 나는 조용히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여보, 나도 고민 많이 했어. 나는 이번 거래를 통해 아들이 단순히 돈을 벌고 모으는 것 이상을 배웠기를 바랐어. 가족의 위기 속에서 자산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는 자기 희생과 아버지와의 신용거래를 통해 빚을 지는 것은 단지 돈을 빌리는 행위가 아니라, 신뢰와 시간을 교환하는 일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특히, 내가 돌려준 그 5만 원의 이자가 아들에게는 의미 있는 깨달음이 되었으면 했어. 그것은 돈을 빌려 쓴 대가이기도 했지만, 세상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사는 한 인간이 짊어져야 할 책임감의 최소 단위였으니까. 그 무게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약속된 기한 안에 이행하는 것이 바로 신뢰를 지키는 일임을. 내가 갚은 것은 돈이 아닌 신뢰였다는 것을.’
물론 큰아들이 이런 아비의 마음까지 다 이해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들이 그 5만 원의 무게를 통해, 돈의 흐름 속에 숨겨진 관계의 깊이를 어렴풋이나마 배웠기를 바랐다. 그 100만 원은 단순한 차용액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에게 건넨 첫 번째 성인으로서의 증명서였다. 통제를 잃은 나의 세상 속에서, 나는 가장 확실한 통제인 신뢰를 아들에게 전수하려 했다. 그것이 내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지금으로서는 가장 견고한 유산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