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가 된 인연들

by 까미노

종업식 날, 아이들은 이별의 아쉬움을 '서프라이즈'라는 외피에 담아 나를 감동케 했다. '이파리'라는 이름으로 묶인 그들. 교직 생활의 마디마다 마주하던 흔한 풍경이었으나 이번엔 결이 달랐다. 학급 제자도, 동아리 학생도 아닌, 그저 어쩌다 마주친 인연들이 겹겹이 쌓여 일궈낸 무늬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마음이 기특하고 애틋해 요지부동이던 카카오톡 배경화면을 그 아이들이 보내온 영상으로 갈아치웠다. 새로 부임할 학교의 조감도가 차지하고 있던 건조한 자리에 나와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앉힌 것이다.

그 화면 위로 낯선 이니셜의 메시지가 당도했다.


'@@아, 나 누군지 알겠어? 네 목소리가 예전 그대로라 웃음이 나서 연락해.'


글자를 읽는데 오래된 기억의 지층을 뚫고 그녀의 목소리가 만져졌다.

대학 시절, 나는 교사라는 정해진 미래로부터 도망치듯 연극판으로 숨어들었다. 6차 교육과정 발표와 함께 필수에서 선택으로 밀려난 내 전공의 처지가 꼭 내 미래 같아 겁이 났던 시절. 길거리에서 떼어온 신입 단원 모집 포스터를 방에 붙여두고 다리가 저리도록 고민하던 청춘의 밤들. 그때 내 곁엔 그녀가 있었다.


입대 전날, 우리는 그녀의 자취방 싱크대 앞 차가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밤을 지새웠다.


"넌 너무 생각이 많아서 군 생활이 걱정돼."


그 다정한 염려를 듣던 부엌의 공기, 낮은 천장, 어색하게 놓여 있던 그릇들의 침묵. 그것이 우리가 나눈 마지막 밤의 풍경이었다. 사랑이라 부르기엔 조심스럽고 우정이라 하기엔 밀도가 높았던 그 시절의 온기.



모임이 있어 망원동으로 향하던 길, 환승역을 놓쳐 마음이 분주한 와중에 그녀의 메시지를 받았다. 급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나는 그녀의 프로필 화면을 슬쩍 훔쳐보았다. 이름 모를 꽃과 풍경들. 중년의 생을 지탱하는 고요한 이미지들이 그곳에 박제되어 있었다. 나는 더는 사적인 생의 내력을 묻지 않기로 했다.


'잘 살고 있네.'


하지만 그 프로필 뒤편에 얼마나 많은 굴곡과 눈물이 마르고 젖기를 반복했을지, 우리는 이제 묻지 않아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이 보내준 영상 속 내 목소리가 그녀의 오늘을 잠시 웃게 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때 싱크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인생을 가늠하던 소년과 소녀는,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거나 혹은 저무는 꽃을 응시하며 나이 들어간다.


인생은 어차피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한 채 포스터 한 장을 가슴에 품고 무작정 오디션장으로 향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길 위에서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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