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둘째, 가' 라면 서럽다.
우리는 어느샌가 한국 고유문화(?)를 이야기할 때 'K'를 붙이기 시작했다. K-드라마, K-디저트, K-좀비 등. 한국인은 하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 온갖 것에 같다 붙이는 재주가 있다. 아무튼 그중 최근 몇 년 사이에 급부상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K-장녀올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K-장녀 이야기가 아니다. 당연하다. 내가 둘째니까. 너도나도 K-장녀를 분석하고 공감을 얻을 때 나는 K-차녀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혹시 '둘째가 뭐 할 이야기가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 등짝을 시원하게 한 대 쳐주면 아주 좋겠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고, 모든 상황이 누구나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내가 괜찮았다고 남도 괜찮게 살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나는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껴서 평생을 살아온 둘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 라면 서럽다.
K-차녀의 설움은 태어나던 시점으로 돌아간다. 아빠는 58년 개띠로, 옛날 사람답게 아들을 선호했다. 안타깝게도 첫째가 딸로 태어났으나 첫 애라는 상징성에 사랑이 더해져 그야말로 애지중지 키웠다. 외갓집에서도 첫 손녀라 종종 보고 싶다고 데려오라면 아빠가 보내지도 않을 정도였다. 아니, 같이 가면 됐잖아? 아무튼 그만큼 본인이 끼고돌았다는 소리다.
그리고 4년 후, 찾아온 둘째가 바로 나. 기 세다는 백마 띠라 여아 출생률이 현저히 낮았던 1990년도. 그때 태어난 게 나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내가 아들이라고 해서, 유산 위험이 있었을 때 비싼 보약 지어서 먹었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딸이었다. '으아니, 또 딸이라니! 의사 양반 그게 무슨 소리요!' 아빠는 기차역에서 산부인과까지 걸어갔다. 무척이나 상심해서. 여기까지 얘기를 꺼내면 아빠는 덧붙인다. '우리 OO이, 물 주면 쪽쪽 빨아먹느라 보조개가 쏙 들어갔어.' 아빠 기억 속 내 첫인상. 떼잉, 이미 틀렸거든요? 저는 뒤에 나올 에피소드 때문에 벌써 서운하거든요?
돌 사진이 없다. 그것도 삼 남매 중 나만. Only Just Me! 언니도 있고 남동생도 있는데 나만 없다. 저도 빨간 한복 입고 방긋방긋 웃으며 사진 잘 찍을 수 있거든요? 이건 둘째 딸로 태어나 서러운 일 꼽으라면 Top 3 안에 들어갈 정도의 에피소드다. 셋 다 안 찍었으면 몰라, 그것도 아니면 언니만 있으면 첫째라는 것 때문에 이해라도 하지. 근데 나만 없어? 이건 명백한 차별이다.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당사자인 내가 서럽다. 하지만, 분명 나만 아닐 게 뻔하다. 둘째라면 돌 사진 없는 사람 수두룩 하다에 100만 원 정도는 기꺼이 걸 수 있다. 오죽했으면 내가 서른 넘어서도 돌 사진 얘기 꺼내겠냐고, 아빠 돌아가셨는데도 이렇게 글로 남기겠냐고…. 안 그래요, 여러분?
혹시 요즘에도 둘째 돌 사진 고민하는 사람 있나요? (탕, 탕, 탕) 또? 설마 2022년에도 그걸 고민이라고 하고 있다고? 정말로 어이없는 소리다. 첫째 찍어줬으면 당연히 찍어줘야 하는 거 아냐?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딸 이하는 짜증 감당할 자신 없으면 더욱더. 그런데 만약 피치 못 할 사정으로 돌 사진을 못 찍었었다면, 어렸을 때! 특히 초등학교 입학 전에 사진 많이 찍어서 앨범 만들어줘야 한다. 첫째랑 비교해서도 부족하지 않도록.
난 둘 다 갖지 못해서 이렇게 2배로 더 서럽다. 돌 사진도 없고, 개인 앨범이 1권도 없어. K-차녀 서러운 거 한 두 개 아니라지만 다 커서 과거 추억할 사진 없는 게 이토록 억울하고, 서럽고, 서운할 줄은 우리 부모님도 몰랐겠지?
하지만, 그걸 박씨네 둘째 딸이 해냅니다. 평생 합니다. 나 죽을 때까지 이 이야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