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샌드백

모진 말로 엄마를 두드린 날들.

by 박하


뜻 대로 잘 되지 않는 날이 있다. 그렇게 엉켜버린 날엔 하필이면, 항상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의 샌드백이 되어 내 짜증을 고스란히 견뎌야만 했다. 당신은 그만큼 나의 리듬에 민감했다. 아니, 아무것도 몰랐을 거다 엄마는. 내 앞에서 매진되어버린 버스, 돌연 취소된 공연, 줄을 기다려 계산을 하는데 모자란 백 원 때문에. 이 세상 모든 불행이 나에게는 오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화를 냈다. 내가 만만히 볼 상대가 엄마라는 존재 말고는 어려웠다.


됐어, 끊어.


두 마디의 짧은 말을 남기고 휴대폰을 닫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날들이 엄마에겐 얼마나 무수했을까. 어쩌면 나의 기분을 풀기에 가장 적합했던 폴더형 휴대폰이 사라지고서, 나는 스마트폰의 종료 버튼이 터치라는 것을 한동안 혐오했었다. 탁, 하며 닫히는 폴더의 소리가 크면 클수록 기분은 풀어지고 그 소리가 크면 클수록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엄마는 천식으로 평생을 호흡기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엄마는 참 꾸준히도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라고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가 무색할 정도로 아버지에겐 전화 한 통이 없었는데, 잦은 신경질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득달같이 벨소리를 쫓았다. 밥은 먹었냐, 우산은 챙겼냐는 걱정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묻는 것은 집에 언제쯤 오냐는 말이었다. 에둘러 표현하는 ‘보고 싶다’가 내겐 부담이어서 더 불만스러웠는지 모른다. 자식의 일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쓰는 투가 더욱 부담이었다. 특히나 친구들과 야자를 빼먹고서 노래방 같은 곳에 있으면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이 찔렸을 수도 있다.


걱정을 끼치는 일이 서툴러서 나의 일을 전혀 말하지 않던 나는, 만족스럽지 않은 대학 생활에 말없이 인도로 떠났다. 두 달여의 여정을 동생에게만 살짝 알리고서 위험천만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아무 말도 없던 엄마는 더 이상 나에게 귀찮도록 전화를 걸지 않았다. 동생은 전화를 받지 않는 형이 무얼 하느냐는 엄마의 물음에 나의 인도행을 말했는데, 어른들의 인식으로 그런 위험한 나라에 가며 전화마저 집에 던져 놓고 다녀왔으니 화가 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나의 기우였다. 탈 없이 돌아온 아들을 보고 엄마는 시름을 놓은 것 같았다. 자신의 걱정이 별 반 소용없다고 생각한 건지, 다음 여행을 나갈 땐 그러든말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아들이 새벽일을 해도 두 발 쭉 뻗고 잠을 잤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을 성실히 실천하던 나는 한편으로 엄마가 나의 샌드백이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겼다. 화풀이 없이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은 힘들었으나 점차 익숙해졌고 편리했다. 그러나 가끔, 삭이던 화가 폭발할 땐 내가 나를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 되기도 했다. 적잖이 튀어대는 마음과 씨름을 하며 지내던 무렵, 아버지를 통해 엄마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간호사의 목소리로 엄마가 응급실에서 쉬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가 너무나도 두드리던 샌드백은 터져버려 고장난 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엄습하고 병원으로 가지 못하는 이등병을 저주해야 했다. 피곤에 절어 있던 어느 날, 힘이 들어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연락할 곳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전화를 걸었던 엄마를 나는 샌드백이라 여겼으나, 사실 엄마의 전화는 아들을 지키는 에어백이 맞았다.


내가 누군가의 짜증을 받던 어느 날, 그것이 이렇게 견디기 힘든 것인지 깨닫고서도 여전히 이기적인 나의 날. 여전히 엄마에게 거는 전화는 용건이 없을 때 어색하다.


철없는 자식은 여전히 엄마와의 통화에 멍청한 투정을 부리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