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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Dec 31. 2022

익숙하고 낯선

온전한 휴식을 위한 장소.


    섬은 즉흥적 물결을 갖는다. 그래서 몰타에 가기로 했다.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드리드는 내게 번잡스러웠다. 적당히 아는 곳, 적당히 알만한 기분이 드는 곳이라면 좋겠다. 그런 막연함이었다. 실은 순수한 변명이다. 언제 어디서나 글을 쓸 마음으로 돌변할 수 있는 훈련은 지겹게 해 왔으니까. 그저 바다가 보고 싶었다. 나는 너무나도.


    이번 출국 전까지 제주에 살며 지겹게 바다를 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바다가 그립다는 건, 역시 바다를 사랑하는 인간이라 그렇다. 산보다는 바다가 좋다. 헤어질 결심에도 나왔지,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뒤에 나온 대사가 더 무섭다. “저는 어진 사람이 아니에요.” 자신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도, 그녀는 스스로가 어진 사람이 아니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난 과연 지혜로운 사람일까.



    이천 피트 상공부터 몰타의 바다는 끊임없이 블루라군을 쏟아냈다. 착륙 전부터 황홀한 바다, 바다들. 나는 가쁘게 숨을 쉬었다. 비행멀미는 아니었다. 바다멀미일 테지. 섬이고, 바다니까 몰타는 익숙할지도 모른다. 닮은 점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 맞겠다. 이 섬을 사랑할 준비가 듬뿍이었다.


몰디브에 간 적이 있다. 잡지사에서 사진 보조 일을 하며 회사 주최로 갔었다. 일로 휴양지를 간다는 건 꽤 구슬픈 일이라 신난다기보단 싱거웠다. 동료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도착 첫날부터 모델과 합심해 모든 촬영을 바삐 마쳐버렸다. 나머지 사흘을 마음 편히 놀자는 취지로 말이다. 다음 날부터 무섭게 비가 내렸다.

숙소에서 술 시중을 하며 차라리 다행이란 말이 오갔다. 날이 이렇게 엉망이어서야 촬영을 미루기라도 했다면 큰일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냥 편히 비를 보며 술을 마셨던 것 같다. 다음 날, 동료들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싶어 수영을 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이 잔뜩 흐렸기 때문에 나는 근처의 조용한 마을을 혼자 둘러보았다. 해변 끝자락으로 어느 외국인이 선베드를 놓고 누워있었다. 그는 책을 읽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참을 바라보다 내가 물은 것은 ‘왜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였다.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러 왔으니까.’ 몰타에서 그때의 우문현답이 불쑥 떠올랐다.


    몰타는 화려하지 않지만 활기찬 섬이었고, 지중해의 멋진 태양아래 여기저기 술을 마시는 치들이 잔뜩이었다. 흰빛과 흙빛의 건물들이 골목 구석구석 빛을 뿌리고 있었다. 거친 바다와 온화한 바다가 얽힌 곳에서 한참 앉아 낚시꾼을 구경하며 있었다. 줄을 건질 생각이 없는. 오래된 성곽이 갖고 있는 깊은 유서 따위야 전혀 알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냥 햇살 맞으며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먹고 내키면 맥주라도 마셔야지. 예상대로 익숙하고 낯선 곳이었다.



    파라솔이 쭉 늘어진 곳에서도 가급적 파라솔을 걷어달라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침 북마케도니아 친구들을 만났다. 자리가 없어서 조심스레 합석을 묻기에 물론, 앉아도 된다고 말한다. 고마우니 술 한 잔 살게. 그래 이왕 글도 안 읽히는 거 까짓것 마시자고. 


    벌써 20년을 몰타에 살며 건물 짓는 일을 하는 남자 둘은 몰타가 참 마음에 들어 아예 정착했다 한다. 햇볕만 뿌리고 비를 뿌리지 않는다는 게 햇살을 사랑하는 그들에겐 대단한 축복이어서 부쩍 해가 강해진 요즘 더욱 좋다 했다. 쏟아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으며 잔을 부딪치고 담배를 물다 그들이 물어온다. 몰타에 왜 왔느냐고. 난 익숙하고 낯선 섬에 오고 싶었다고, 그저 바다가 보고 싶었다고 했다. 의뭉스러운 표정이 된 그들이 다시 물어온다. 여기서 무얼 할 셈이냐고. 나는 피식피식 웃었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b__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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